중동 전쟁 속 이스라엘에 모인 한인들 "우리는 최전방 민간 외교관"

김소희 2026. 8. 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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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에서 출발해 타바 국경을 거친 뒤 이스라엘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데 총 15시간이 걸렸다. 분쟁의 땅, 중동 한복판인 레반트 지역에 뿌리를 내린 5개국(이스라엘·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 한인 교민 20여 명이 올해 2월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경수 이집트 한인회 부회장은 "2014년 타바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한국인들이 다쳤을 때 이스라엘에서 부상자 이송을 도왔던 기억이 있다"면서 "그때 구축한 비상연락망과 소통 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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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 피난길 오가며 소통한 5개국
이스라엘 예루살렘서 위기 대응책 논의
"공적 영역 넘어 민간에서 안전망 보완"
3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열린 '레반트 지역 한인 리더스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예루살렘=김소희 특파원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발해 타바 국경을 거친 뒤 이스라엘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데 총 15시간이 걸렸다. 요르단 암만에서 예루살렘은 직선 거리로 70㎞ 떨어져 있지만 국경을 돌고 돌아 반나절이 소요됐다. 분쟁의 땅, 중동 한복판인 레반트 지역에 뿌리를 내린 5개국(이스라엘·이집트·시리아·요르단·레바논) 한인 교민 20여 명이 올해 2월 미국·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교전과 휴전을 반복하는 국면에서 언제 항공길이 막힐지 몰라 육로로 이동하다 보니 이들이 모이는 것만 해도 큰일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모여 앉은 목적은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한 연대'다. 중동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주변에선 "위험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크지만, 이들에게는 20여 년간 지켜온 삶의 터전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위기 대응책이 절실하다. 3일(현지시간) 예루살렘에서 열린 '레반트 지역 한인 리더스 포럼'에서 이강근(61) 이스라엘 한인회장은 "전쟁으로 나뉜 땅에 사는 한국인들이 국경을 넘어 하나의 협력 체계를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레반트 지역 연합회가 3일부터 5일까지 주최한 이번 포럼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박재원(60) 이집트 한인회장, 장한주(60) 요르단 한인회장, 김성국(58) 전 레바논 한인회장, 안주현(60) 시리아 교민대표 등이 참석했다. 시리아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대부분의 교민이 철수하면서 현재는 상주 교민이 없지만, 향후 국경이 열리면 한인 공동체가 복원될 상황에 대비해 과거 시리아에 거주했던 안주현 요르단 한인회 총무가 교민대표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스라엘 교민들이 지난 3월 이집트로 피난했던 당시의 모습. 페이스북 캡처

왜 이런 연대가 필요할까. 이들은 먼저 긴박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올 2월 개전 초기 이스라엘에선 수시로 사이렌이 울려 방공호로 피신해야 했고, 요르단에선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다녔다. 요르단 암만에 머물던 안주현 대표는 "처음엔 이란의 요격 미사일을 구경하러 나왔던 아이들이 화염처럼 쏟아지는 불빛에 놀라 패닉 상태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요격 순간에는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레바논에선 이스라엘이 저공 비행을 하면서 위협을 가하거나 무인기(드론)가 배회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위기 상황에서 한인 간의 협력이 빛을 발했다. 이강근 회장의 제안으로 교민 피란이 시작됐고, 이스라엘과 레바논에 있던 교민들은 요르단과 이집트 등으로 이동했다. 박재원 회장은 피란길에 오른 교민들을 마중 나가 김치 20㎏과 과일을 전달하며 힘을 보탰다. 이경수 이집트 한인회 부회장은 "2014년 타바 국경에서 버스 폭탄테러로 한국인들이 다쳤을 때 이스라엘에서 부상자 이송을 도왔던 기억이 있다"면서 "그때 구축한 비상연락망과 소통 경험이 밑거름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3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하성백 이집트 한글학교 선임교사, 박재원 이집트 한인회장, 안주현 시리아 교민대표, 장한주 요르단 한인회장, 이강근 이스라엘 한인회장, 김성국 전 레바논 한인회장, 이경수 이집트 한인회 부회장. 페이스북 캡처

전쟁은 기약 없이 길어지고 분쟁은 이미 일상이 됐다. 장한주 회장은 "지정학적으로 이스라엘과 인접한 요르단은 미사일과 드론의 주요 통로가 되는 데다 미군 부대가 많아 늘 긴장 상태"라며 "이스라엘 정세가 흔들리면 곧바로 영향을 받는다"고 전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박재원 회장 역시 "주변국들의 전쟁으로 관광객이 끊기면서 이집트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안주현 대표는 "위기 이전의 삶은 대부분 예상이 가능했지만, 위기가 일상화된 지금은 미래의 위험을 세분화하고 세밀하게 예측해 대처해야 하는 난제가 있다"고 말했다.

교민들은 최대한 삶의 공간을 유지하면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성국 전 회장은 "레바논 베이루트가 공격받았을 때 이집트로 피신한 것처럼 각국 교민 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유사시 불필요한 소모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짚었다. 이들은 공적 영역에서 미처 놓친 빈자리를 민간 차원에서 보완해 나가겠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이강근 회장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인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한국을 알리는 일"이라며 "우리는 최전방에 있는 민간 외교관"이라고 자부했다.

예루살렘= 김소희 특파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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