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더 힘든 사람들 위해"…나누며 살아온 '6·25 소년병'

이상엽 기자 2026. 8. 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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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선풍기만 놔도 꽉차는 비좁은 집에 94세, 6.25 참전유공자가 살고 있습니다. 열일곱, 책 대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지켰던 할아버지는 이젠 매달 나오는 참전수당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쓰고 있었습니다.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입니다.

[기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94살 함성환 씨는 매일 누군가를 찾아 길을 나섭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다른 후배들은 다 세상을 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지금 더 사는지 모르겠어요.]

16살 중학생 나이에 소년병으로 6.25 전쟁터로 갔습니다.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과 끔찍했던 기억이 뒤섞였습니다.

그 감정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상화/월남 참전유공자 : {가족이…} 가족이 없어요. 나는 3살 먹어서 엄마 잃고. 8살 6·25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83살 한상화 씨, 비슷하고도 다른 사연을 가졌습니다.

[한상화/월남 참전유공자 : 베트남 전쟁에서 맹호부대라고 하면 알아주는 부대예요. {맹호부대 사령관이 채명신 아니었어요?} 네. 채명신.]

모르는 사이지만 이 순간 같이 울다 웃고 공감합니다.

[한상화/월남 참전유공자 : 숲이 우거지니까 보이지 않아요. 총소리 한번 나면 하나 쓰러져요.]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서야 10평 남짓 단칸방으로 돌아갑니다.

혼자 기억을 더듬으며 시를 씁니다.

칙칙폭폭 연탄 때는 기차를 탔다.

내 나이 열일곱 소년병이었다.

"성환아 나라를 위해 싸워라"

"네 아버지"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6사단 2연대 2대대 5중대 1소대로 '0158537' 군번을 받고. 총만 쏘는 식만 배우고서는 일선에 갔거든요.]

가방 메고 학교 다녀야 할 나이였습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나이 17살에 만 16살이죠. 내가 얼굴도 예쁘고 이러니까. 사단장이고 연대장이고 '얼굴이 고운 놈을 일선에 보내기 아깝다' 그러는 거지.]

얼굴 고왔던 어린 아이는 매일 삶과 죽음을 오갔습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머리를 들고 싸웠는지 철모를 뚫고 나갔어요. 피가 조르르 흐르니까.]

전쟁이 끝난 뒤 소년병의 삶은 더 고달팠습니다.

부모님은 세상을 떠났고 혼자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장례도 못 치렀어요. 뼈만 남은 걸로다 빻아서 한강에 뿌린 것밖에 없어요.]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고 어느새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쩌면 사회와 이웃을 원망할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길거리에 앉아서 손 벌리고 깡통 들고 있으면 가다가 돈이라도 조금 넣어주고. 어려운 사람도 보태주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매달 나오는 참전수당 64만원과 기초연금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지금 삶이 많이 힘드시진 않으세요?} 힘들죠. 그저 먹고살다가 가는 수밖에 없지. 혼자만 돈 많다고 혼자만 다니면서 먹고. 그럼 못 써요.]

힘들어도 살아볼 만한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힘을 내야 합니다.

[함성환/6·25 참전유공자 : 좋은 일 많이 하세요. 밀착카메라 함성환입니다. 충성!]

[영상취재 박재현 영상편집 이지혜 취재지원 이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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