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폭염중대경보 속 소상공인 ‘생계중대경보’
역대 최고 기온 연일 경신
손님 발길 뚝…생수만 벌컥
냉방·얼음값까지 ‘이중고’
"명절까지 버틸 수 있을 지…"

"이 무더위에 전통시장을 오겠어요? 그냥 버틸 뿐이지."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5일 오전 10시께 전남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60대 상인 전모 씨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푸념했다. 손님은 보이지 않았고 가게 앞 선풍기만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날 광주의 기온은 오전부터 30.1도를 기록했고 전날 내린 소나기 탓에 습도까지 높아져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폭염은 이제 단순한 계절 재난이 아니었다. 손님은 사라지고 냉방비는 치솟았다. 상인들은 "폭염중대경보보다 생계중대경보가 더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전 씨는 "손님이 줄어 장사는 안 되는데 냉방은 포기할 수도 없다"며 "매출은 떨어지고 전기요금은 늘어나니 매일이 적자 장사"라고 말했다.
시장 안은 적막했다. 젓갈과 반찬을 파는 초입에만 손님이 드문드문 보였을 뿐 안쪽 골목은 빈 점포처럼 한산했다. 상인들은 "새벽 5시30분 시장이 열리면 손님이 몰렸다가 오전 10시만 넘으면 끊긴다"며 "하루 장사시간이 사실상 네다섯 시간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더운데 물가까지 비싸니 누가 시장까지 오겠어요." 상인들의 말처럼 전통시장은 폭염과 고물가라는 이중고에 갇혀 있었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수산물 점포였다.
손님은 줄었지만 생선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얼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하루 종일 돌려야 한다. 팔리지 않는다고 냉장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수산물을 파는 김모(50대) 씨는 지난달 매출이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냉장고 4대를 돌리는 전기요금은 이달에만 200만원을 넘겼다. 여기에 하루 2만원 상당의 얼음값까지 추가된다.
김 씨는 "갈치 한 마리를 1만2천~1만3천원에 받아 1만5천원에 팔아도 카드 수수료와 운영비를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며 "단골손님이 아니면 버틸 방법이 없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점포 앞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작은 선풍기 앞에서 연신 부채질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띄었다. 제철 목포 먹갈치가 매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발길을 멈추는 손님은 좀처럼 없었다.
그 사이 빨간 오토바이에 얼음을 가득 실은 상인은 시장 골목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손님은 줄었지만 얼음만큼은 끊임없이 팔렸다. 생선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라 생선을 살리기 위한 얼음이 시장을 지키고 있는 풍경이었다.
광주 전통시장은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 상인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60대 이상이고, 시장을 찾는 손님 역시 대부분 고령층이다. 결국 폭염 취약계층이 폭염 취약계층을 상대로 장사하는 구조인 셈이다.
동구 대인시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인 낮 12시.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아 보였다. 일부 점포는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고, 아예 여름휴가에 들어간 곳도 눈에 띄었다. 예산 부족으로 설치된 쿨링포그는 시장 한 골목에서만 물안개를 뿜어낼 뿐이었다.
채소를 판매하는 윤영주(67) 씨는 "예전에는 하루 30만~40만원, 많이 팔면 50만원도 넘게 팔았는데 요즘은 10만원도 못 번다"며 "전기료와 수도요금, 관리비라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장사한다"고 말했다.
과일 상인 박모 씨도 "예전에는 시장 안에 얼음집이 있었지만 장사가 안 되면서 모두 문을 닫았다"며 "지금은 남광주시장까지 가서 얼음을 사와야 한다"고 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온누리상품권 환급행사 등을 통해 전통시장 소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명절 대목에 집중돼 여름철 비수기를 버티는 상인들이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구의 자체 환급행사도 지난 3월 종료됐다.
양동시장의 한 상인은 "명절 대목까지 한 달 가까이 남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지금은 장사보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더 큰 일"이라고 말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