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더 강해진 도시 마케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나는 산을 타고 사람을 이끄는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이자 아웃도어 강사,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터다. 누군가의 도전 의욕을 자극하고,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전파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때로는 강사가 일부러 캠프 사이트를 잘못 안내해 5km 이상을 다시 걷게 하거나, 겨우 잠든 참가자들에게 불침번을 세우기도 했다.
내가 21km를 뛸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1일간 배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달한다"는 단순한 진리 덕분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산을 타고 사람을 이끄는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이자 아웃도어 강사,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터다. 누군가의 도전 의욕을 자극하고,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전파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나의 한계를 마주해 본 적이 있는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낯선 이들 사이에서, 지금껏 살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 속에서도 나는 리더일 수 있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2026년 4월, 싱가포르의 작은 섬 '풀라우 우빈(Pulau Ubin)'으로 향했다. OBS(Outward Bound Singapore)가 운영하는 '21일 클래식 챌린지 코스(21D CCC)'에 나의 시간과 모든 에너지를 던져보았다.
아웃워드바운드(Outward Bound)는 1941년 독일계 영국인 커트 한(Kurt Hahn)이 설립한 아웃도어 체험교육 전문 기관으로 전 세계 33개국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Outward Bound Korea, 교장 유한규)은 2003년에 발족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직접 조직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OBS(Outward Bound Singapore)다. 싱가포르 정부 기관인 NYC(National Youth Council)에서 직접 운영하며, 풀라우 우빈 섬 전체가 OBS의 캠퍼스이자 교육장이다.

21일 클래식 챌린지 코스(이하 21D CCC)는 OBS에서 운영하는 가장 긴 프로그램으로, 연 2회(4월, 11월) 열린다. 특히 4월은 해외 참가자들에게 개방되어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 된다. 이 과정은 OBS 정규 강사가 되기 위한 필수 인턴십 코스이자, 아웃도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졸업 학위를 따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기도 하다.
이번 과정에는 나를 포함해 아시아 전역(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일본, 한국)에서 모인 31명의 참가자가 함께했다. 18세 청년부터 58세 장년층까지, 살아온 환경도 언어도 달랐지만 우리는 단 하나의 목표를 공유했다. '끝까지 살아남아 함께 돌아가는 것'. 첫날 휴대전화를 반납하며 시작된 이 여정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마케터 주성미'가 아닌, 인간 '주성미'의 밑바닥을 마주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첫 시작은 자기소개와 미니 게임으로 포문을 열었다. 2층 침대가 놓인 생활관에서 수칙과 루틴을 정하며 낯선 환경에 점차 적응해 나갔다.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쉼 없는 훈련이 이어졌는데, 아침 체조와 2.5km 달리기, 100m 수영을 시작으로 점점 거리를 늘려 나가며 체력 향상을 몸소 체험했다.

또한 매일 'I.C(In Charge)'라 불리는 당번을 정해 리더 역할을 수행했다. OBS 강사들은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지 않고 이 I.C를 통해 미션을 부여한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OBS의 핵심 가치는 'EGOS'로 요약된다. Essential(아웃도어 교육의 본질), Group(단체 생활을 통한 협동), Other people(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Self reflection(자기 성찰)이 그것이다.
15kg의 배낭, 그리고 언어를 넘어선 보폭

둘째 날 밤, 15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육상 원정을 시작했다. 29°C가 넘는 기온의 싱가포르의 무덥고 습한 환경 속에서 1:10,000 축척 지도와 나침반만으로 섬을 횡단하며 매일 6~9곳의 CP(Check Point)를 찾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스콜(소나기)이 일상인 환경에서 3일간 55km를 걷는 동안 내 발바닥엔 물집이 잡혔고, 각종 벌레는 친구가 되었다.
때로는 강사가 일부러 캠프 사이트를 잘못 안내해 5km 이상을 다시 걷게 하거나, 겨우 잠든 참가자들에게 불침번을 세우기도 했다. 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고난을 수용하고 극복하는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과정이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컸던 것은 '소통'에 대한 고민이었다. 영어로 나의 의사를 전달하기 어려운 순간마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눈을 마주쳤을 때, 표정과 눈빛만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외국인 친구의 말 한마디, 그리고 늘 곁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격려하던 순간들을 통해 깨달았다. 배려와 존중은 유창한 언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에 내 보폭을 맞추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바람을 이용하는 법, 그리고 동료라는 돛

큰 바다로 나아가는 선박의 출항 구호인 '아웃워드 바운드'. 그 이름에 걸맞게 돛과 바람만을 이용한 세일링 교육이 시작됐다. 이는 단순한 레저가 아닌, 자연을 이해하고 팀워크를 배우는 본격적인 해양 리더십 훈련이었다.




이론 교육 후 실전 훈련이 이어졌다. 바람의 방향을 읽고 세일의 각도를 조정하며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팀원 간 호흡을 맞추는 법을 익혔다. 바람이 멈추면 10kg이 넘는 노를 직접 저어야 했는데, 팔과 어깨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잠과 식사조차 배 위에서 빵으로 허겁지겁 해결해야 했지만, 그 작은 탄수화물이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바다 한가운데 사다리에 의지해 용변을 해결하며 민망함보다는 자연 속 인간의 단순한 생존 방식을 체감하기도 했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지만, 신뢰로 뭉친 팀은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단순한 전우애를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다양한 언어의 각국 노래를 함께 부르며 우리는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바람의 흐름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나'라는 개인은 '우리'라는 단단한 팀이 되었다.
내면의 울림

가장 인상적이었던 '솔로 타임'은 숲속에서 2박 3일간 홀로 지내는 프로그램이다.
철저한 '침묵'이 규칙이며, 시간의 흐름조차 잊도록 시계와 랜턴도 압수된다.
최소한의 식량과 타프, 나이프와 끈 조금, 판초우의, 휴지 15칸과 종이접기, 읽을거리 등 한정된 물품만 지급된 채 숲속에 고립된다.
처음에는 평화로웠다. 도시의 소음과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오자 어둠은 공포로 변했다. 멧돼지의 묵직한 발소리에 숨을 죽이고, 밤새 이어지는 모기와의 전쟁은 처절했다. 그러나 그 단절된 환경 속에서 바쁜 일상에 치여 살아온 나는 비로소 진정한 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를 견뎌내며 내가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도시에서 마케터로 살며 쏟아냈던 수많은 말과 글 대신, 오로지 침묵 속에서 나 자신과 대면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털어내고 기대를 채울 수 있었다. 솔로 타임은 단순히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잠시 물러나 진정한 자신과 대면하는 귀중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바다 위에서 배우는 협동과 인내

2인 1조로 카약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이 훈련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다. 엔진 없는 카약에 몸을 싣고 오로지 패들링만으로 20km를 6시간 동안 이동했다.
16대의 카약이 다이아몬드 대열을 이루어 리듬을 맞출 때, 고통은 묘한 몰입감과 자유로움으로 변했다. 다음 날 극심한 근육통과 쓸린 상처로 고생했지만, 이는 성장을 위한 훈장과도 같았다. 현대 사회의 편리함 대신 몸과 팀워크로 목적지에 도달하며, 동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휴대전화 없이 생활하니, 날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나눠준 수첩에 날짜를 적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날짜를 셌다. 동료들이 내 수첩을 보더니 웃으며 자기도 날짜를 세고 있다고 했다. 언어는 달라도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같았다. 마치 전역을 기다리는 말년 병장처럼 그렇게 2주 차가 흘러 마지막 3주 차가 되었다.
함께한 바다

모든 훈련은 이 마지막 여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직접 식량 계획을 짜고 예산에 맞춰 장을 본 뒤, 5일간 싱가포르 해안 반 바퀴(약 140km)를 항해하는 장거리 원정에 나섰다. 강한 햇빛 아래 탈진과 멀미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저녁마다 팀원들과 함께 준비해 먹는 따뜻한 한 끼가 큰 위로가 되었다.



특히 매일 바뀌는 캡틴은 조류와 날씨를 고려해 팀을 이끌어야 했다.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비바람이 어느덧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을 때, 자연을 이기려 하기보다 그 흐름을 이용하는 법을 배웠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친구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과정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다.

일정 막바지에는 '풀라우 우빈 자원봉사 허브'와 함께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방치된 자전거와 가구들을 수리하며 아웃워드바운드의 철학인 신체 건강, 자기 신뢰, 숙련, 연민을 실천했다. 누군가의 삶이 담긴 물건을 고치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 진행된 21km 하프 마라톤은 이번 코스의 압권이었다. 6km 이상 달려본 적 없던 내게 하프 마라톤은 거대한 벽 같았지만, 2시간 49분이라는 기록으로 17위로 완주했다. 내가 21km를 뛸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1일간 배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달한다"는 단순한 진리 덕분이었다. 1km가 하루의 배움을 상징한다면, 21km는 그 모든 성장을 증명하는 길이었다.
귀로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어떻게 존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극한의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몸소 체험했다. 진짜 성장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뎌내며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태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제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강사로, 가이드로, 마케터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내 안에는 싱가포르의 거친 파도를 함께 넘었던 동료들의 응원과, 숲속의 고독을 견뎌낸 단단한 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아웃도어 체험 교육에 대한 인식이 싱가포르만큼 높지 않지만 그 가치가 더 널리 알려져, 더 많은 이들이 이런 눈부신 성장을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한마음으로 21일간 함께 땀 흘리며 서로를 북돋아 준 동료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