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며 아름다웠던 결혼 44년… “손잡아줘 행복했습니다”[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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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신앙의 길을 가던 젊은 시절의 풍경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김장용 고추를 교구에서 취합해 제공하던 때, 단체장의 직분을 맡았던지라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지요.
아마도 병원 일정에서 그대가 잠시 집에 머물던 때였나 봅니다.
그로부터 넉 달 후 그대가 떠났으니 차마 그것이 내게 준 마지막 글이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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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만 보고 신앙의 길을 가던 젊은 시절의 풍경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김장용 고추를 교구에서 취합해 제공하던 때, 단체장의 직분을 맡았던지라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지요. 백몇 군데의 성당에서 주문받은 고추를 배송하는 것은 마땅히 인부가 맡아야 했거늘 경비 절감을 위해 어리석게도 그대와 직접 도맡아 했으니 얼마나 이기적이고 모자란 일이었던지요.
마침 장마철이라 땀과 빗물과 흙탕에 온몸이 젖은 채 우리 본당에 고추 자루를 어깨에 메고 온 그대를 보고 친구였던 사무장이 놀라서 한마디했습니다. “바렌티노는 참으로 성인이야. 본인 일도 아니고 옆 지기가 가톨릭 여성연합회 회장을 맡은 게 뭐라고….” 고생시킨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송구함에 고개가 숙어집니다.
아이들도 훌쩍 자라 장성한 어느 가을날, 결혼 44주년 기념일이었던가요. 부부는 갈대숲이 바람에 하늘대는 강변을 드라이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병원 일정에서 그대가 잠시 집에 머물던 때였나 봅니다. 마음이 착잡해진 나는 내키는 대로 졸시 하나를 적었습니다.
‘서른넷 서른 살 / 다소 늦었던 만혼 부부 / 함께한 세월 / 어언 사십사 년 / 돌아보니
한바탕 / 꿈이었네 / 이제 황혼에 선 / 두 그루 은행나무 / 제발 아프지만 말기를 /
손잡고 마주 선 연민의 눈동자 / 살아온 세월은 / 성전의 아름다운 두 기둥이었네.’
이튿날 그대가 보내준 답글은 동아대 병실에서였습니다.
‘돌아보면 먼 길 / 굴곡진 산마루 / 지날 때마다 손잡아 줘서 고맙소
황혼이 옅어지는 언덕에 마주 서서 / 옛날 곱던 당신 얼굴
바라보니 행복합니다 / 고맙구려 고맙소.’
그로부터 넉 달 후 그대가 떠났으니 차마 그것이 내게 준 마지막 글이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니 그것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세상에 보낸 고별사였습니다.
살다 보면 사람의 마음에 더러는 커다란 한으로 남아오는 게 있습니다. 떠나기 전 그대의 병원 생활 시 그때는 나 또한 허리 수술 후 거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인지라 손수 간병하지 못했음이 미안한 자책감의 돌덩이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한 몸으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운전 길 더듬어 수척해진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음이 또한 작은 위안으로 남았습니다.
이제는 낯선 시간 속으로 떠나간 당신. 나는 지금 당신 없이도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거기도 별이 뜨고 달이 지나요. 서로 다른 세상이 참으로 낯설기만 합니다. 나날이 기도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 이제는 부디 영면하십시오.
김양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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