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Law] ‘세기의 이혼’이 남긴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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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이 지난달 24일 9,440억 원의 현금 지급을 명했다. 1심의 위자료 1억 원을 항소심은 20억 원으로 증액했고, 대법원은 재산분할은 파기하면서도 위자료는 상고 기각으로 확정했다. 법원이 2016년 마련한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이 교통사고·명예훼손 등 네 유형만 다루고 이혼 위자료를 비켜 갔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파탄의 경위와 책임, 혼인 기간, 당사자의 연령과 재산 상태 같은 산정 요소를 계량화한 기준에 이혼 위자료까지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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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이 지난달 24일 9,440억 원의 현금 지급을 명했다. 9년을 끈 '세기의 이혼'은 이제 양측의 재상고 여부만 남았다. 세간의 시선은 665억 원, 1조3,808억 원, 9,440억 원으로 요동친 재산분할 액수에 쏠렸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따로 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확정한 위자료 20억 원이다.
위자료(慰藉料)는 다친 마음을 어루만지라는 돈이다. 그러나 우리 법정의 이혼 위자료는 오랫동안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수십 년을 함께한 혼인이 일방의 외도로 무너져도 인정액은 1,000만~3,000만 원 선에 머문다. '불륜의 값이 고작 3,000만 원이냐'는 냉소와 '쥐꼬리 배상'이라는 말이 세간에 도는 이유다. 이 낮은 눈높이는 간통죄 시대의 유산이다. 형벌이 살아 있던 시절 법원은 처벌받는 유책배우자에게 배상 책임까지 무겁게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고 보아 위자료를 낮게 잡았고, 2015년 위헌결정으로 형벌이 사라지면 민사 위자료가 그 공백을 메우리라던 기대와 달리 옛 관행은 그대로 이어졌다. 한 해 9만 건 안팎의 이혼 가운데 다섯 건 중 한 건은 재판을 거친다. 재산분할은 부부 재산의 청산이어서 파탄에 책임 있는 배우자도 제 몫을 받아 가므로, 가정을 무너뜨린 책임을 금전으로 묻는 수단은 사실상 위자료뿐이다. 대법원도 일찍이 위자료는 법관의 자의가 아니라 '시대와 일반적인 법감정에 부합될 수 있는 액수'로 산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해 왔다. 그러나 산정 기준을 정한 법 규정이 없는 탓에 액수는 오롯이 재량에 맡겨졌고, 그 재량의 시계는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다.
이번 사건은 그 관행에 균열을 냈다. 1심의 위자료 1억 원을 항소심은 20억 원으로 증액했고, 대법원은 재산분할은 파기하면서도 위자료는 상고 기각으로 확정했다. 이혼 위자료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같은 재판부가 2023년 당시 최고액인 2억 원을 명한 데 이은 흐름이니, 일회적 파격이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 회장을 유책배우자로 규정하고 그 책임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중대한 유책행위로 가정을 파탄시킨 경우 위자료가 명목적 위로금을 넘어 실질적 전보와 제재·예방의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자, '가정의 파괴'라는 손해에 대한 사법적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문제의식은 법정 밖에서도 무르익어 왔다. 학계에서는 위자료의 본질을 둘러싼 전보배상설과 제재설의 오랜 논쟁 속에 전보를 넘어선 제재·예방 기능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이어졌고, 실무계에서도 산정 기준을 사회·경제적 현실에 맞게 재정립하자는 요구가 꾸준했다. 이제 제도가 응답할 차례다.
법원이 착수한 '위자료 산정방식 개선을 위한 연구'는 판결을 대규모로 정량 분석해 산정 실무를 진단하고 기준금액과 조정 방식을 객관화하려는 시도다. 법학을 넘어 경제학·심리학·뇌과학까지 동원하는 다학제 연구로, 재판의 예측가능성과 사법 신뢰 제고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오는 9월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산정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국회에는 위자료 산정 참고자료의 연구·제공을 양형위원회에 맡기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법원이 2016년 마련한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이 교통사고·명예훼손 등 네 유형만 다루고 이혼 위자료를 비켜 갔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파탄의 경위와 책임, 혼인 기간, 당사자의 연령과 재산 상태 같은 산정 요소를 계량화한 기준에 이혼 위자료까지 담아야 한다. 20억 원이 한 번의 예외로 남을지 위자료 현실화의 이정표가 될지는, 기준의 정비와 주기적 갱신이라는 제도화에 달려 있다.
'세기의 이혼'은 끝나 가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혼은 오늘도 계속된다. 3,000만 원의 벽 앞에 선 이들에게도 같은 저울이 놓여야 한다. 가정 파탄의 값을 묻는 일에, 사법부와 법조계의 계속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최신영 변호사(법무법인 LKB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