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만 물었는데"...치매 전문의가 만든 'AI 아바타', 대화 속 인지 저하 감지

이석호 기자 2026. 8. 4. 20:0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K-디멘시아 유망 기업] ⑨ 리파인 이정재 대표
20년 치매 봐온 정신과 의사...‘내 임상 노하우 담은 AI’ 구상
‘룰베이스’ 대신 ‘생성형 AI’로...10년 전 구상에 날개를 달다
인지변화 가장 먼저 알아챈 아들...어머니의 치매가 남긴 숙제
AI 안부전화 ‘기억샘’...검사 아닌 대화로 기억력 저하 잡아내
공공·민간 아우르는 투트랙 전략...국내 통신사와도 도입 논의
“치매 선별 표준 되고 싶어”...일상 속 스며드는 인지관리 목표
이정재 리파인 대표 / 디멘시아뉴스

대화형 인공지능(AI)을 치매 관리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국내외 학계와 산업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홍콩이공대 연구팀이 최근 국제학술지 '헬스케어(Healthcare)'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공개된 관련 연구 40건 가운데 사회적 보조 로봇을 활용한 사례가 24건으로 가장 많았고, 텍스트 기반 챗봇이 12건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음성 통화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챗봇 연구는 단 1건(2.5%)에 그쳤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뒤 이용자 참여도는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한 장기요양시설 연구에서는 거대언어모델(LLM) 적용 후 평균 대화 시간이 2분 48초에서 53분 50초로 18배 늘었고, 참가자 10명 중 6명이 대화를 더 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인지 기능이나 정서, 보호자 부담까지 개선하는지를 검증한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는 아직 부족하다. 음성 전화만으로 이뤄지는 대화형 개입은 근거가 가장 부족한 영역으로 꼽힌다.

이러한 흐름 속에 국내 스타트업에서도 대화형 AI로 치매 징후를 조기에 찾아내고 관리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정재 대표가 이끄는 리파인(ReifyN)이다. 이 대표는 치매와 노인정신의학을 전공한 단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20년 가까이 치매 환자를 진료해 온 임상 경험을 그대로 사업에 녹여내고 있다.

리파인의 핵심 솔루션은 '기억샘'이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AI가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오늘 산책하셨나요?" 등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AI는 사용자의 기억력과 어휘력, 반응 속도, 발음 패턴 등을 분석한다. 보호자에게는 통화기록과 인지 상태 변화를 종합한 리포트가 정기적으로 전달된다.

리파인은 '일상 대화'를 접점으로 치매 조기 발견과 인지 재활을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비전을 품고 있다. <디멘시아뉴스>는 충남 천안 단국대 산학협력관 리파인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지난 10년간 품어온 구상이 어떻게 창업으로 이어졌는지 들어봤다.

◆ 20년 가까이 치매 현장 지킨 정신과 의사...'내 임상 노하우 담은 AI' 구상

"결국 치매 조기 발견은 병원 검사실에서 이뤄지는 단편적인 평가보다, 일상생활 속 미세한 기억력 저하를 얼마나 빨리 포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 어르신과 일상 대화를 나누고 인지 변화를 조기 감지할 수 있는 'AI 아바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창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2007년부터 노인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한 이후 묵묵히 치매 현장을 지켜온 임상의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거친 뒤,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충남 천안시 치매지원센터장을 맡아 지역사회 치매 관리 최전선에 섰다.

센터장 재직 시절 그는 지역사회에 흩어져 사는 독거노인 약 1,000명을 모아 방문 인지 선별 사업을 진행했다. 혼자서 이들을 다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간호사와 임상심리사 5~6명을 직접 교육해 자신의 방식과 노하우를 익히게 한 뒤 노인들을 찾아가 기억력 검사와 면담을 하도록 했다. 매주 면담 결과를 함께 검토하고 피드백하는 시간도 가졌다. 1년 정도 훈련을 반복하자 이들의 임상적 판단이 자신의 견해와 거의 일치하게 됐다. 이 경험은 훗날 'AI 아바타'를 구상하는 출발점이 됐다.

"당시에는 '룰 베이스(미리 정해진 질문 순서에 따라 답을 이끌어내는 방식)'로 앱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고, 정해진 질문만으로는 미묘한 차이를 포착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 '룰베이스' 대신 '생성형 AI'로...10년 전 구상에 날개를 달다
이정재 리파인 대표 / 디멘시아뉴스

2019년, 미국 플로리다대 노화연구소(Institute on Aging)에 연수를 간 것이 전환점이 됐다. 스마트워치로 노인의 우울감과 수면, 노쇠 등을 관리하는 연구를 접한 그는 "이 정도면 우리나라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적인 뇌 영상·혈액검사 중심 연구에서 디지털 데이터 기반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2020년에는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을 맡아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경험을 쌓았고, 2021년 충남도 메타버스 인지훈련 파일럿 과제를 수행하며 독자적인 연구 기반을 다졌다. 2022년 말, 챗GPT의 등장은 그의 오랜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숙원이었던 '대화형 AI 아바타'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 대표는 2023년 11월 단국대 교원 창업으로 리파인을 설립했다. 그와 함께 창업에 참여한 이일주 최고전략책임자(CSO)는 뇌파(EEG) 데이터를 활용한 초기 인지훈련 연구를 진행해 온 동료로, 현재도 회사의 핵심 축을 맡고 있다.

◆ 인지 변화 가장 먼저 알아챈 아들...어머니의 치매가 남긴 숙제

그가 이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개인적 숙명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어머니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마친 2009년 무렵부터 미세한 인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해 현재는 중증 단계에 이르렀다. 당시 임상 감각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터라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기 어려운 어머니의 사소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했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는데 뭔가 이상했어요. 검사에서는 정상으로 나왔지만, 저는 알았죠. 이게 치매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이때 병원 검사로는 드러나지 않는 일상 속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깨달았다. 일반인에게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며 넘길 일들이, 수천 명의 환자를 본 전문가의 감각에는 치매 조기 징후로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역할을 AI가 각 가정에서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 AI 안부전화 '기억샘'...검사 아닌 대화로 기억력 저하 잡아내

기억샘은 AI가 이용자에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걸어 대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앱을 설치하고 원하는 통화 시간대를 설정해 두면, 이후에는 복잡한 조작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이 대표는 특히 기존 디지털 인지 솔루션과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는 "디지털 인지 솔루션은 대부분 병원에서 쓰던 종이·태블릿 검사를 그대로 옮겨온 경우가 많다"며 "집에서 혼자 하도록 두면 결국 숙제처럼 느껴져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기억샘은 '그림 그리기'나 '단어 맞추기' 같은 과제형 훈련을 배제하고, AI가 이용자의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해 자연스럽게 질문하는 '맥락 기반 대화'를 채택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은 맛있게 드셨어요? 어제 말씀하신 그 메뉴였나요?"처럼 되묻는 식이다.

본인이 직접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방식이어서, 학력이나 교육 수준에 영향을 받는 기존 검사와 달리 별도의 보정이 필요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용자는 검사를 받고 있다는 부담 없이 대화에 응하게 된다.
클리어(기억샘) 서비스 이미지 / 리파인 제공

실제 서비스 화면에서는 흰 가운에 나비넥타이를 맨 의사 이미지의 캐릭터 '아루(남성형)'가 등장한다. 전화 통화 외에 '기억친구'라는 이름의 문자 대화 방식도 제공돼, 이용자가 상황에 따라 통화와 채팅 중 편한 방식을 고를 수 있다. 통화 날짜와 시간, 횟수 등이 캘린더 형태로 자동 기록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리포트에는 회차별 정답률과 위험도 평가 결과가 표시된다.

리파인은 대화형 인지 평가와 일화 기억 관련 국내 특허 6건을 등록한 상태다. 해외 특허협력조약(PCT) 출원 2건도 진행 중이다.

◆ 공공·민간 아우르는 투트랙 전략...국내 통신사와도 도입 논의

리파인은 B2G(공공)와 B2C(보호자)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B2G 부문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치매안심센터를 대상으로 한다. 이 대표는 "치매안심센터에 가기 전 단계에서 위험군을 미리 걸러줄 수 있다면 현장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구 달서구 치매안심센터와 천안시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B2C 영역에서는 자녀·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구독 모델을 검토 중이다. 자녀나 보호자가 대상자의 인지 건강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주·월간 리포트를 제공하고, 필요시 치매안심센터나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방안도 설계해 놓았다.

최근에는 한 국내 대기업에서 기억샘 서비스를 한 달간 직접 사용해 본 뒤 먼저 협업을 제안해 오기도 했다. 리파인은 기업들과 시범사업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B2B 영역까지 시장을 넓혀갈 계획이다.
이정재 리파인 대표 / 디멘시아뉴스

◆ "치매 선별 표준 되고 싶어"...일상 속 스며드는 인지관리 목표

이 대표의 목표는 중앙치매센터의 치매 선별 검사(CIST)처럼 국민 누구나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인지선별 도구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중앙치매센터 선별 도구 개발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며 "그때처럼 근거를 쌓아 우리나라 치매 관리의 가장 앞단에 놓이는 도구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사투리나 특유의 발음 처리 등 일부 발화에서 나타나는 음성 인식 오류를 개선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다. 또 임상적 효과를 검증하려면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필요하다. 이 대표는 "지금은 스크리닝(선별) 도구 수준이지만, 데이터가 쌓여 정확도가 높아지면 언젠가는 진단적 가치도 인정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 진출은 아직 특정 국가를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PCT 출원을 통해 기반을 닦아둔 만큼 언어만 바꾸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이나 웨어러블 기기 등 다양한 폼팩터로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하드웨어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창업 후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연구과제를 수주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책임감이 있다"며 "직원들이 저를 믿고 이 회사에 들어왔기 때문에,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식으로 여길 수가 없다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리파인(ReifyN)'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다'는 뜻의 영어 동사 'reify'에 '내면(IN)'을 결합한 조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주 작은 변화조차 일상 대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포착하겠다는 의지가 회사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리파인의 도전이 일상 대화를 기반으로 한 치매 관리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Copyright © 본 기사의 저작권은 디멘시아뉴스에 있으며, 사전 동의 없는 무단 복제·배포·전송·변형을 일체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