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팬 꺼지는 순간 모두 죽습니다"…극한 폭염에 가축들 ‘비명’
환풍기 24시간 가동에도 축사 33도
물 채우고 순찰 돌아도 오리는 헐떡
폐사·전기료·화재 위험 ‘삼중고’
폭염 장기화에 축산농가 비상

"오리 한 마리라도 더 살려야죠. 팬이 멈추는 순간 끝입니다."
4일 오전 전남광주특별시 나주시 세지면 죽동리의 한 오리농장. 축사 문이 열리자 뜨거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천장과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 환기팬 130여 대가 쉼 없이 돌아가며 굉음을 냈지만 열기를 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축사 한쪽 온도계는 이미 32~3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습기를 머금은 열기가 온몸을 감쌌고, 잠시만 서 있어도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반면 하루 전 입식한 생후 이틀 된 새끼 오리들은 비교적 활발하게 움직였다. 어린 개체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몸집이 커질수록 체열이 많아져 폭염을 견디기 어려워진다.
34년째 오리를 키우고 있는 임종근(59)씨는 축사 안을 쉴 새 없이 오갔다. 오리들이 한곳에 몰리면 손짓으로 흩어놓고, 급수기를 살피며 물을 다시 채웠다.
임씨는 "밖이 38도면 축사 안은 금세 40도 가까이 올라간다. 머리를 들 힘도 없이 그대로 쓰러지는 오리들을 보면 속이 타들어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임씨 농장에서는 올해 폭염 등으로 약 1천500마리가 폐사했다. 인근 농가에서는 하루에 200여 마리가 한꺼번에 죽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농민들은 하루 종일 하늘만 바라본다. 비가 와도 걱정이고, 해가 쨍쨍 내려도 걱정이다.
팬은 단 한순간도 끌 수 없다. 임씨 농장의 최근 한 달 전기요금만 약 1천만원. 전기료 부담이 커도 환풍기를 멈출 수는 없다. 장시간 가동으로 전선이 과열돼 화재가 날까 노심초사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임씨는 "예전에는 며칠만 버티면 지나갔는데 이제는 폭염이 몇 주씩 이어진다"며 "가축도 힘들지만 사람도 버티기 어려운 여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폭염과의 사투는 오리농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축장으로 향하는 운송 과정도 또 다른 고비다. 외부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면 운송차 내부 온도는 급격히 치솟는다. 최근 황 이사의 농장에서도 운송 중 돼지 1~2마리가 폐사했고, 다른 농가에서는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목숨을 잃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부터 3일까지 19개 시·군에서 돼지와 닭·오리 등 가금류 7만4천296마리가 폐사했다. 이 가운데 닭이 5만8천203마리로 가장 많았고, 오리 1만1천152마리, 돼지 4천941마리로 집계됐다.
이 같은 피해에 특별시는 가축재해보험과 폭염 대응 시설·장비 지원 등 7개 사업에 218억원을 투입하고, 축사 냉방시설과 급수 지원, 고온 스트레스 완화제 보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농민들은 "폭염이 이제는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임씨는 축사 문을 다시 닫으며 마지막으로 환기팬을 한 번 더 올려다봤다.
그는 "올해만 특별히 더운 게 아닐거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럴 텐데 농가 힘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면서 "이제는 폭염을 자연재해가 아니라 축산을 위협하는 상시 재난으로 보고 지원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번 시작된 폭염은 열흘을 넘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전기요금과 시설비를 농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만큼 냉방시설과 전기료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