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춤으로 시작된 인연… 당신은 평생 우직하게 내 뒷받침만[그립습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나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운 건지 내키지 않는 마음의 색깔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퇴근 후 버스에 앉아 신호대기 중이라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마침 길을 걸어가고 있던 그대와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무엇이 그대 마음을 움직였는지 질주하는 버스를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운 건지 내키지 않는 마음의 색깔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합니다. 문갑 서랍만 열면 선연히 숨 쉬고 있는 그대 흔적이 나를 더 망설이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기에는 인쇄체를 닮은 그 정갈한 필적과 손때 묻은 수첩들, 그리고 동그랗고 가느다란 금속성의 날렵한 금테안경과 그대 몸을 감쌌던 가죽 벨트의 체취도 함께 있습니다. 하긴 모르지요. 그대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가 수년이 지났는데도 현관에서 치우지 못하고 있는 그 등산화의 존재와는 어떤 모순된 상관관계가 있는지요.
고요히 앉아 성서를 필사하던 그 많은 분량의 필사본에는 단정하고 정제된 모습의 정신이 묻어 있으며, 오랜 세월 낯익은 수첩과 핸드폰에는 그대 목소리와 일상의 반경이 담겨 있지요. 그 우직하고 올곧은 시선이 묻어 있어서 나는 아직도 선뜻 문갑 서랍을 열어보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아쉬움인지 회한인지 미련인지 아마도 그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사람의 생애란 참 신비인 것이 분명합니다. 태어남은 무엇이며 연기처럼 소멸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지, 허망이나 무상이란 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무한한 신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기나 물, 태양이나 자연 등이 없으면 우리는 살지 못함에도 그것들은 모두 공짜고 받고 있음이 신비이듯이 그대 또한 내 인생에선 한없이 신비한 존재이기만 합니다. 지나간 모든 것이 꿈결이나 바람처럼 느껴지는 지금에 와서는.
생각해 보면 우리 만남 자체가 우주의 신비에 비하면 아주 작은 하나의 점과 같은 신비 자체인지 모릅니다. 꼭 한순간, 길 위에서의 그 시선의 마주침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생애를 다해 모르는 사람으로 살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십 대 후반의 어느 날 퇴근 후 버스에 앉아 신호대기 중이라 무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마침 길을 걸어가고 있던 그대와 눈길이 마주쳤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신호가 바뀐 버스는 앞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순간 무엇이 그대 마음을 움직였는지 질주하는 버스를 향해 사력을 다해 달려오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놀라운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바로 그 한순간의 감동이 한 여자의 마음을 움직여 한사코 외면해오던 그대와의 인연에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게 되었지요. 사람의 운명이란 게 이렇게 결정적인 한순간이 모티브가 되어서 우리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기만 했지 결코 다른 욕심도 변수도 생각할 줄 몰랐던 사람, 때로는 그 단순하고 우직한 결곡함이 그대 주변을 외롭게도 했지만 그 외골수의 집념이 오히려 일생 제 옆 지기만 생각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면 제 삶은 참 이기적이고 독단적이었습니다. 신앙과 문학이란 두 가지 기둥을 잡고 오롯이 앞으로만 정진할 수 있었음도 그대의 한결같이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오로지 우리 가정의 모든 해시계는 이 못난 아내 위주로 돌게 해준 그 뒷받침을 너무 늦게 깨닫는 내가 참으로 못난이입니다.
김양희(수필가)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라이프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해병대 간부숙소서 총기 사고…1명 사망
- [속보]‘실탄 미장착’, ‘美 무인기 오인’ 책임, 한기성 1군단장 직무배제
- [속보]카페 주차장서 후진하던 SUV, 울타리 뚫고 10m 아래로 추락
- “방시혁 1조 증발” 41만원 주식이 17만원된 사연
- 한강수영장 ‘女원피스수영복’ 입은 남성 정체
- 이준석 “연산군, 2년 뒤 쫓겨나” 李에 거부권행사 촉구
- 조갑제 “李, 보완수사권 거부권쓰면 ‘영웅’…연임·공소취소도 없다하면 인기 폭발”
- 서장훈·이찬원, ‘상속’ 소재 예능 MC 발탁
- 골드만삭스 “삼성전자, 49만원 간다”…APAC 최선호주에 편입
- “출근 첫주에 4번 지각해 해고하자, 엄마가 항의”…미국도 ‘헬리콥터 부모’에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