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출동 절반이 취객…구급차는 누구를 태우나[영상]
하루 13건 출동 중 대부분이 취객·비응급 신고
골든타임 위협에 타 관할 구급차까지 출동
폭염 속 휴식 없이도 묵묵히 현장 지키는 대원들

"구급 출동! 구급 출동!"
지난달 25일 오전 10시 15분. 정적을 깨는 지령 방송이 동대문소방서 전농119안전센터에 울려 퍼졌다. 출동 지령이 떨어지고 구급차가 차고를 빠져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 덜컹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달려 도착한 현장에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전농119안전센터는 동대문소방서 관내에서 출동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힌다. 주거 밀집 지역에 어르신 환자 비율도 높아 구급대원들 사이에서는 '전청용(전농·청량리·용두)'으로도 통한다. 하루 평균 구급 출동은 12~15건에 달한다.
CBS노컷뉴스 취재진 동행한 1팀은 신현호 구급대장(소방위)과 정보영 구급대원(소방교), 김민성 기동대원(소방사) 등 3인으로 구성된 '특별구급대'다. 응급구조사 1급 자격자 신 대장이 현장을 총괄하고, 간호사 경력 특채 출신인 정 대원이 환자 처치를 주로 맡는다. 심전도 측정이나 약물 투여 등 일반 구급대보다 전문적인 응급처치가 가능한 팀이다.

취재진이 24시간 동안 함께한 현장은 예상과 달랐다. 흔히 떠올리는 심정지나 중증 외상 환자 등 응급 상황과는 거리가 있었다. 총 13건의 출동 가운데 10건이 주취자(酒醉者·취객) 관련 출동이나 비응급 신고였다.
주취와의 전쟁…길바닥 할머니에 만취 할아버지
흥분한 채 상황을 설명하던 여성에게서 구급대가 확인한 외상은 손에 난 작은 찰과상뿐이었다. 그래도 정보영 대원은 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며 "많이 놀라셨나 봐요"라며 차분히 다독였다.

오후 3시 30분. 이번에는 주택가 골목길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도착하자 할머니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지인과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는 경찰의 설명, 또 '취객'이었다.
체온, 맥박, 호흡, 혈압 등 활력징후(Vital Sign) 측정 결과 건강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병원 이송이 불필요한 상황인 데다 집이 바로 코앞 골목이기도 했다.
그러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한 할머니를 길바닥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 대원들은 할머니를 들것에 태워 경찰과 함께 집 안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린 뒤 현장을 떠났다.

주취 신고는 해가 저물어서도 이어졌다. 오후 8시 25분쯤 청량리역 인근 공원 수풀에 한 할아버지가 드러누워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도착하자 할아버지에게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선생님, 약주 얼마나 하셨어요? 저희가 뭘 도와드릴까요?"
신현호 대장이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껄껄 웃음뿐이었다. 담배를 피우려는 행동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팔을 휘두르며 대원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남성은 이날 오전에만 다른 119안전센터가 여러 차례 출동했던 상습 주취 신고 대상자였다. 경찰이 청량리역까지 데려다줬지만 다시 근처에 누워 있었고, 이를 본 시민이 또다시 119를 불렀다. 결국 40분 넘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철수해야 했다.
토사물 닦아주고…비응급에 묶인 구급차
자살 암시 문자를 남긴 후 연락이 끊겼다는 신변 우려 신고도 있었다. 소방 구조대까지 동원돼 오피스텔 문을 강제 개방하기 직전, 만취한 남성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왔다. 연신 "죄송하다"고 읊조리다가 다시 자러 들어가는 남성을 보고 철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같이 주취와 비응급 신고는 구급대원들의 일상이었다. 일부는 119를 일종의 '무료 택시'나 '수발 서비스'로 이용하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제 발로 걸어 나와 들것에 타고, 응급실에 도착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어 들어가는 기이한 풍경도 벌어졌다.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10초 만에 튀어 나가는 대원들에게는 허탈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구급차가 단순 주취자나 비응급 처리에 묶여 있는 사이 정작 죽음의 문턱에 선 진짜 응급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관할 구급차가 이미 출동 중이면 더 먼 거리에 있는 다른 안전센터 구급차가 대신 출동해야 한다. 실제 이날 전농119안전센터 관할에서도 심정지 추정 신고가 접수됐지만, 구급팀이 다른 현장에 나가 있던 탓에 장안119안전센터가 대신 출동했다.
배변 묻은 노숙인 이송까지…현장 지키는 이유

오후 5시 40분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청량리역 인근 편의점 테라스로 출동이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기력이 없다는 경찰의 공동 대응 요청이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성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테이블 밑에는 라면 등 음식물이 쏟아져 있고, 옷에는 토사물과 배변도 묻어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이곳에서 소주를 마셨다는 편의점 사장님의 증언을 들으니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갔다.
"아저씨, 눈 떠보세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대원들과 경찰이 몇 번이고 목소리를 높여 말을 걸었지만, 남성은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했다. 경찰관 2명과 구급대원 3명이 붙어 등줄기에 땀을 흘리며 상태를 살폈다.
신원 조회 결과 해당 남성은 무연고자 노숙인이었다. 단순 주취라기에는 기력 저하 증상이 뚜렷했다. 대원들은 외과용 드레싱복을 입혀 남성을 들것에 태워 시립병원으로 이송했다. 현장 처치부터 병원 인계까지 꼬박 2시간이 걸렸다.

폭염 속에서 주취자와 씨름하고 때로는 환자의 폭언과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구급대원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현장을 지키는 이유는 분명했다.
현장에 도착해 직접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결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 주취자이든, 노숙인이든 신고가 들어온 이상 '모두가 우리가 보호해야 할 환자'라는 마음가짐이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해요. 술에 취해 자는 것 같아도 뇌출혈이 있을 수 있어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환자가 안전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저희의 일이죠." (신현호 구급대장)
"저도 사람이니 폭언을 들으면 감정적으로 지치죠. 그래도 다들 각자의 사연이 있더라고요. 무연고 환자처럼 보호자가 없는 분들도 있고요. 저희라도 그런 분들을 끝까지 살펴야 하잖아요." (정보영 구급대원)
병원 인계를 마친 구급차는 다시 센터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대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또다시 구급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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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ss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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