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도 눌러버린 수급 꼬임…중국계 자금의 강제 청산

권순우 기자 2026. 8. 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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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은 여전히 강하다.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 투자 계획도 축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클라우드 매출과 영업이익이 빠르게 늘었고 설비투자 전망은 다시 상향됐다. 그런데 주가는 실적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중국계 자금의 강제 청산과 외국인 리밸런싱과 개인 투자자의 반대매매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펀더멘털이 작동하기 어려운 수급 장세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반도체 주가 하락을 업황 변화보다 수급 구조가 꼬인 결과로 해석했다. 중국의 총수익스와프 규제와 외국인 리밸런싱이 매도 압력을 만들었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가 변동성을 증폭했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의 신용잔고가 강제 청산되면서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구조가 형성됐다.

주가가 실적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 공급 부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7년 공급 부족이 더 심해지고 최소 2028년까지 쇼티지가 지속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글로벌 빅테크 역시 인공지능 인프라에 투입하는 자본을 줄이지 않았다. 시장이 걱정한 인공지능 거품이 실적에서 확인된 것이 아니라 주가에 먼저 반영된 셈이다.

최근 외국인 매도에는 중국계 자금의 총수익스와프 청산이 영향을 줬다. 총수익스와프는 투자자가 증권사를 통해 특정 주식이나 지수의 수익률을 가져가는 파생계약이다. 

실제 주식 매매는 외국계 증권사가 하지만 경제적 이익은 중국 투자자나 중국계 펀드가 가져갈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6월 23일부터 관련 상품을 규제하면서 신규 매수가 중단됐다. 기존 계약은 만기가 도래할 때마다 청산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계약 만기는 통상 한 달에서 석 달 정도다. 만기가 돌아온 상품은 연장되지 못하고 매도 물량으로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매수한 주체는 외국인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자금의 주인은 중국계 투자자였던 거래가 적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중국 정부의 규제로 계약이 강제 청산되자 외국인 순매도로 집계되는 물량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문제는 이 매도가 기업의 실적 전망과 무관하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 추정치가 올라가도 펀드 비중 조절과 파생계약 청산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는 하락할 수 있다. 7월 시장에서 나타난 현상도 실적과 주가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수급 장세에 가까웠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하락폭을 더 크게 만들었다. 레버리지 상품은 기초자산 수익률의 두 배를 추종하기 위해 장중이나 장 마감 무렵 보유 자산과 선물 포지션을 조정한다. 주가가 하락하면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추가 매도가 발생할 수 있다. 상승장에서 레버리지 ETF는 주가를 더 끌어올린다. 반대로 하락장에서는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구조가 된다. 실적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하루 주가 변동폭이 과거보다 훨씬 커진 배경이다.

개인 투자자의 신용잔고도 수급 불안을 키웠다. 반도체 주가가 급락하자 담보비율을 충족하지 못한 계좌에서 반대매매가 발생했다. 개인 투자자가 자발적으로 손절한 물량도 있었지만 상당 부분은 증권사가 강제로 처분한 물량이었다. 월말 신용잔고가 급격히 줄었다는 것은 반대매매와 로스컷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의미다. 개인은 하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섰다가 추가 급락을 견디지 못했고 주가가 바닥권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강제적으로 이탈했다.

반대로 외국인은 월말 일부 순매수로 돌아섰다. 정규장뿐 아니라 대체거래소 거래까지 합산하면 외국인 자금이 상당 규모 유입된 날도 나타났다. 외국인 매도가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연속적인 매도 흐름이 한 차례 끊긴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외국인 매수 전환을 업황 변화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미국 시장에서도 헤지펀드 청산과 포지션 조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하드웨어에 집중 투자했던 한 헤지펀드가 강제 청산됐고 대형 헤지펀드가 해당 포지션을 인수하면서 관련 종목의 매매가 뒤엉켰다. 미국에서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주가가 시장 상승에도 하락한 것도 펀더멘털보다 포지션 정리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특정 펀드의 포지션이 크면 청산이나 인수 과정에서 반대 포지션을 설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적과 무관한 매도가 발생할 수 있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 

국내 시장은 미국 반도체 주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마이크론과 샌디스크가 하락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업황 우려로 해석돼 동반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원인이 개별 헤지펀드의 포지션 조정이어도 국내 투자자는 이를 반도체 업황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다.

8월에도 변동성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수익스와프 만기가 남아 있고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ETF와 신용거래가 확대된 시장 구조도 하루 변동폭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7월과 같은 강도의 매도가 계속될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판단이다. 중국계 총수익스와프 청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잔여 물량이 줄어든다. 신용잔고도 한 차례 크게 감소했다. 개인 투자자의 강제 청산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면 같은 규모의 반대매매가 반복될 가능성도 낮아진다.

반도체 펀더멘털은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의 클라우드 사업 매출은 전년보다 40%에서 80%가량 증가했다. 영업이익률도 35%에서 40% 수준을 기록했다. 인공지능 인프라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우려와 달리 클라우드 사업이 높은 수익성을 보인 것이다.

빅테크의 설비투자 전망도 일제히 상향됐다. 시장은 인공지능 투자가 과도하고 현금흐름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빅테크 기업들은 실적 발표에서 투자 확대 계획을 유지했다.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와 서버와 반도체 투자를 더 늘리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2028년까지 빅테크의 인공지능 설비투자가 증가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단기적인 분기 변동은 나타날 수 있지만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는 전략적 이유가 투자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체의 공급 부족 전망도 유지됐다. 삼성전자는 2027년 공급 부족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봤다.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신규 공장을 짓고 장비를 반입해 실제 양산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가 장기적으로 위협이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를 올해나 내년의 실적 위험으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판단이다. 실질적인 위협 여부를 평가할 시점은 2028년 이후에 더 가깝다는 설명이다. 중국 반도체의 추격 가능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 기업도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과 서버용 D램과 첨단 공정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경쟁자의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선두업체도 다음 세대로 이동한다.

투자 전략은 결국 공급 부족 전망을 신뢰하는지에 달렸다. 2027년 쇼티지가 더 심해지고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 반도체 주가의 단기 하락은 매도 이유보다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 다만 주가의 단기 방향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수급 매도는 기업의 실적과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인 매도가 하루 더 이어질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대규모 매수로 전환될 수도 있다.

지난주 대형 반도체 종목이 하루 20% 이상 반등한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하락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처럼 급반등 시점도 맞히기 어렵다. 수급이 정상화된 뒤 매수하려고 기다리다가 가장 큰 반등 구간을 놓칠 수 있다. 반도체를 보유한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 주가보다 투자 시계다. 다음 달 주가를 맞히는 접근보다 내년 상반기 실적과 2027년 공급 부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포트폴리오에서는 반도체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익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고 예상 실적 대비 밸류에이션도 낮기 때문이다. 시장이 반등할 때도 자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먼저 몰릴 가능성이 높다. 개인 투자자의 거래대금 상위 종목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관련 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돼 있다. 수급 집중이 하락장에서 변동성을 키우지만 반등장에서는 상승 탄력을 높이는 구조다.

8월 시장의 핵심 변수는 외국인 매도 강도다. 외국인 매도가 진정되면 그동안 눌려 있던 실적과 공급 부족 전망이 다시 주가에 반영될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 매도가 계속되면 펀더멘털과 주가의 괴리는 더 길어질 수 있다. 그러나 수급 꼬임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총수익스와프 계약은 만기가 지나면 청산이 끝난다. 리밸런싱도 목표 비중 조정이 완료되면 매도가 줄어든다. 신용계좌의 반대매매 역시 담보 부족 계좌가 정리되면 강도가 약해진다.

실적이 소용없어 보였던 7월은 실적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실적보다 큰 매도 물량이 시장을 눌렀던 시기였다. 펀더멘털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격 결정권을 잠시 수급이 가져간 것이다. 수급의 정점이 지나가면 다시 숫자의 시간이 온다. 빅테크의 클라우드 매출과 영업이익과 설비투자가 증가하고 메모리 공급 부족이 이어진다면 반도체 주가는 결국 실적 방향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투자에서 가장 큰 위험은 변동성 자체보다 변동성을 업황 변화로 오해하는 것이다. 공급 부족과 설비투자 확대라는 큰 흐름이 유지되는 동안 수급 충격은 기간 조정의 성격이 강하다. 7월이 보여준 것은 실적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실적도 수급이 무너지면 단기적으로 주가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수급이 정상화되면 가장 강한 실적을 가진 기업이 가장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