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할아버지가 가르친 ‘남자다움’…손자가 옷으로 쓴 ‘존경심’ [따만사]

김영호 기자 2026. 8. 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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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는 말을 옷으로 대신…군인·소방관에게 전한 특별한 하루
패션 브랜드 ‘비디알(VDR)’의 김의정 대표가 자신의 친할아버지인 참전용사 김길호 중령의 사진 옆에 서 있다. 사진=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두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남자다움’이다”

한국의 패션 브랜드 VDR를 이끄는 김의정 대표(37)가 한 말이다. 그가 만드는 옷에는 그를 둘러싼 두 남자가 겹쳐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친할아버지와 바이커(Biker)였던 외할아버지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살롱 VDR’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군인과 소방관 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하고, 한 권의 앨범으로 기록하는 캠페인이다. 2023년 시작해 4회째를 맞았다. 올해는 군인과 소방관 각 1명을 선정했다.

이달 8일 서울 이태원 VDR 쇼룸에서 진행된 캠페인 현장을 찾았다. 바버숍에서 이발을 마친 16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 김우태 씨(43)는 이날 세 벌의 옷을 입었다.
업무 현장에서는 무거운 방화복을 입던 그가 거울 앞에서 연신 미소를 지었다. 김 대표는 옷마다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 첫 번째 옷, 검정 청바지에 남은 군인정신

사진=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하와이안 셔츠에 오래된 컨버스, 여러 실이 섞인 검정 셀비지 데님.

김 대표는 여러 차례 청바지의 밑단을 다듬었다. 착장의 무게를 만들어주는 옷이라는 설명이다. 2차 세계 대전 시기 물자 부족으로 처음 개발된 데님인 만큼, 김 대표에게는 군인정신을 표현한 상품이기도 하다.

그 뿌리는 6·25 전쟁에 참전한 친할아버지 김길호 중령이다. 당시 소대장이었던 그는 최전선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우던 참전용사다. 공로를 인정 받은 그는 을지·충무·화랑 무공훈장에 이어 보국훈장 광복장까지 받았다.

사진=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김 대표가 기억하는 친할아버지의 모습은 존경받는 군인이었다. 점심식사 중이던 어느 날, 김 중령은 불현듯 소대원들에게 참호를 파라고 지시했다. 그저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 직후 포탄이 떨어진 것이다. 소대원 전원이 참호 덕에 목숨을 건졌다.

김 대표는 친할아버지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추는 습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총알이 비껴간 충격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책임감을 갖고 내 소대원들 어떻게든 돌려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그 정신은 김 대표에게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해병대 1094기로 입대했다. “추리닝이 멋있어 보여서”다. 육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까지 더하면, 3대에 걸쳐 쌓인 군의 기억이다.

● 두 번째 옷, 엔진오일 냄새가 밴 외할아버지와의 기억

비디알 제공
보라색 플란넬 셔츠에 검정 엔지니어 부츠, 카우보이 햇.

두 번째 착장의 컨셉은 ‘바이커’였다. 이 착장의 뿌리는 외할아버지다. 김 대표의 외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사냥과 사격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7~8년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속 썩인 남편’으로 기억됐지만 김 대표에게는 아니다.

김 대표는 외할아버지를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베풀길 꺼리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숙자에게 선뜻 옷을 벗어주는가 하면, 갈 곳 없는 사람을 어린이집 원장이나 환경미화원 등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세운 인물이었다. 김 대표는 “지금도 명절이면 할아버지에게 영향받은 분들이 찾아와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전했다.

이때의 영향이 김 대표가 ‘패션’을 선택한 이유였다. 옷이 곧 삶이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탓이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학원비 부담에 마음을 접고 일반 대학에 진학해야만 했던 것이다. 다시 김 대표를 세운 것은 군대였다. 복무 중 우연히 풀어본 언어 영역 문제집이 생각보다 잘 풀려 다시 학업에 도전, 미대에 진학한 것이다.

이후 김 대표는 중소기업청 디자인 공모전을 수상, 2015년 9월 자신의 브랜드 VDR을 열었다. 바이크와 사냥을 즐기던 외할아버지의 취향이 그대로 이어져 ‘남자다움’을 다루는 브랜드가 됐다.

● 마지막 옷, 두 할아버지를 함께 입다

비디알 제공
기름때와 총알자국이 난 검정 티셔츠. 마지막 착장이었다.

김 대표에게는 이 옷이 두 할아버지가 동시에 투영된 옷이었다. 기름때는 오토바이를 타던 외할아버지를, 총알자국은 참호에서 소대원을 살린 친할아버지를 뜻한다.

김 대표에게 옷은 한 사람의 인생과 됨됨이를 담는 그릇이다. 워크웨어와 밀리터리, 바이크 무드로 옷을 만드는 이유도 결국 두 할아버지를 형태로 남기려는 시도다. 김 대표는 이를 짧게 정리했다.

“남자다움은 결국 책임감이다. 책임을 지고 존경을 받는 것”

김 대표가 말한 ‘책임감’은 이날 스타일링을 받은 소방관 김우태 씨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총알자국이 새겨진 마지막 착장을 입은 그는 손끝으로 자국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그는 소방관으로서의 사명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16년 경력의 소방관 김우태 씨(43)의 모습. 비디알 제공
그 책임감은 우태 씨가 현장에서 매일 걸치는 방화복으로도 이어진다. 방화복 역시 동료의 생명과 직결되는 옷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기능이 없는 옷을 입고 일하다 화상을 입은 선배가 많았지만, 지금은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납품조차 안 된다”며 “그 덕에 저희가 화상 없이 근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현장을 찾은 군인 이승빈 씨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군인을 택한 것이 “가족과 연인, 친구를 제 손으로 지키고 싶다는 책임감 때문”이라 답했다. 2023년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이어진 한 달간의 훈련을 이겨낸 것도 그 때문이다. 남자다움을 묻는 질문에 그는 “외적인 강인함이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고 답했다.

왼쪽은 소방관 김우태 씨. 오른쪽은 군인 이승빈 씨. 비디알 제공
김 대표는 “이것이 우리의 코어이자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남기지 않는 헌신에 답례하기 위해, 살롱 VDR은 내년 다섯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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