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인에서 한옥 장인으로" 코나아이, 그리고 영월 ‘더한옥헤리티지’

신혜영 기자 2026. 8. 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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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끌어들인 건축 미학… 영월에 펼쳐진 100년을 향한 한옥
K컬처 다음 단계는 ‘경험’, 해외 고액 자산가 사로잡는 전략

한 가지 길을 오래 걸은 사람은 대개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남들이 못 보는 차이를 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그 차이를 무시하고 '대충하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0아니면 1 이진법. 중간 지대는 없는 셈이다. 자신의 고집을 밀고 나갔을 때, 그리고 그 결과물을 세상에 펼쳐 보였을 때 문화적 유산이라 할 만한 걸작이 우리를 압도한다. 사소해 보였던 차이가 사실은 전부였기 때문이다.

감동은 그런 곳에서 온다.

벤처 1세대로 평생 디지털 외길을 걸어온 디지털 장인이 10여 년 전부터 한옥 장인이 됐다. 디지털과 한옥, 극과 극처럼 보이지만 장인정신은 장르를 넘나든다.

디지털에서 수십 년간 발휘된 장인정신이 한옥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목재에 관한 문헌이란 문헌은 다 찾아봤다. 공장을 빌려 직접 연구하고 실험까지 했다. 그렇게 강원도 영월군 신선이 노닐 듯한 선돌을 마주한 터에 2016년 첫 삽을 뜨고 지난해 9월 '더한옥헤리티지'를 세상에 선보였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전통을 과학으로 풀다
지난달 30일 더한옥헤리티지 곳곳이 오전부터 분주해졌다. 이곳을 운영하는 코나아이가 한옥 투어, 티타임, 발표 세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코나아이 필드 트립 2026'을 개최했기 때문이다. 행사에는 취재진과 투자자 등이 참석했다.

하이라이트는 소그룹으로 운영된 한옥 투어와 조정일 코나아이 회장과의 담화 시간이었다.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좌측으로는 넓은 잔디밭과 정갈한 한옥이, 우측으로는 우뚝 솟은 선돌이 한눈에 들어오는 누각 별재에서 조정일 회장을 만났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조 회장은 나무 본연의 색이 그대로 드러난 서까래를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한옥을 지을 때 나무 색깔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4년, 5년 정도 관리를 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곰팡이가 슨다"며 "인공 건조하고 나서 자연 건조를 최소 2년 이상, 그러니까 사계절을 두 번 이상은 봐야 나무가 적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재 건조하고 관리하는 비용이 목재비의 서너 배"라고 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모든 노하우는 조 회장의 수년에 걸친 연구와 실험에서 비롯됐다. 한옥을 짓는 것은 주재료인 나무를 제대로 건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건조가 허술하면 한옥에 대한 선입견들, 가령 '우풍이 심하다', '유지가 어렵다' 같은 문제가 현실화되기 일쑤다. 이 문제점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 나무가 틀어지면서 발생한다.

조 회장은 한옥을 지으려다 나무를 건조하는 기술과 기계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보통 문화재 복원에 쓰이는 나무의 함수율 기준치가 24%인데 더한옥헤리티지 목재의 함수율은 15%다.

목재 건조를 감에 의존하는 대신 과학적으로 접근한 데는 그가 물리학도인 영향도 컸다. 물리학은 세상을 숫자로 잘게 쪼개고 설명 가능한 토대를 만들어 다시 세우는 학문이다. 조 회장은 한옥의 토대인 목재를 과학의 틀 안에서 철저히 해체하고 분석한 뒤 답을 찾았다. 과학적 통찰과 집념 없이는 불가능한 과정이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제대로 건조된 목재를 사용하다 보니 여기서 파생되는 건축 공법들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일반적인 한옥은 기와와 서까래 사이에 진흙을 바르는 습식 공법을 많이 사용한다. 나무의 틀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잘 건조된 목재는 그런 리스크가 없다. 굳이 습식 공법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건식 공법을 적용하고 그 안에 단열재나 에어컨, 전선 등 각종 설비를 매립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옥 내부를 둘러보면 에어컨과 전선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광의 중심지 서울에서 떨어진 이곳에 터 잡은 이유도 밝혔다. 조 회장은 선돌 전망대에서 당시 공터였던 이 부지를 바라보고 '여기다가 한옥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대한민국 어디를 돌아봐도 이렇게 풍광이 열린 곳이 없었다"며 "서울에 가까울수록 접근성은 좋지만 한옥이라는 컨셉과는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영월 삼척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 동해안까지 30~35분 정도면 갈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기본으로 완성한 한옥의 품격
조 회장과의 티타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한옥 투어가 시작됐다.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든 법이 없는 공간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특히 한옥은 더 그렇다. 건축 공법상 건물의 뼈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건물처럼 벽지나 페인트로 엉성함을 감출 수도 없다. 꼼수를 썼다간 바로 들통나는 것이다.

반대로 잘 지었다고 해서 잘 지은 티가 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 역시 뼈대를 드러내고 장식은 덜어내는 한옥의 특성 때문이다. 결국 한옥 건축은 기본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고난도 영역이다. 잘 지은 한옥은 그래서 보기 편하고 머물기 편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슴슴한 매력이 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곳 역시 럭셔리 한옥 호텔이라는 이유로 건물 외양에 과하게 힘주는 대신 기본에 충실했다. 한옥 특유의 절제된 아름다움이 용마루에서 처마, 그리고 벽을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외부의 미학은 내부로도 이어졌다. 목재가 주는 편안함까지 더해져 낯선 공간임에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나무의 고유한 향이 공간을 가득 채워 마치 소나무 숲에 온 듯했다.

나무와 어우러진 대리석 장식들도 이곳의 매력이다. 조명은 따뜻한 목재와 차가운 대리석의 완벽한 이음새가 됐다. 백라이트를 이용해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대리석 본연의 결을 부각해 고급스러움을 극대화했다. 한지를 이용한 조명에 종이 특유의 질감이 드러나듯, 소재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습이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좀 더 과감한 해석을 시도한 공간도 있다. 독채로 구성된 영월종택 1층에는 마치 고급 갤러리와 같은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기존의 한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설계로, 도포 속에 감춘 수트처럼 반전매력이 돋보였다. 조 회장이 직접 설계한 스피커까지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조남희 더한옥헤리티지 사업 총괄 실장은 "2층은 전통적인 한옥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살렸다면 1층은 좀 더 현대적인 공간과 편의 시설을 갖춰 한옥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보완했다"며 "기존의 한옥 구조를 다 따르면 규모가 작아질 수 있는데 이곳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재해석한 한옥인 만큼 공간이 넓고 층고도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누각 별재를 마주한 'ㄷ'자 형태의 호텔에 들어서자 85m에 달하는 회랑이 양쪽으로 길게 펼쳐졌다. 편안한 차림의 투숙객들이 회랑을 지나 마당과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객실은 창밖의 자연과 하나가 된 듯 어우러졌다. "한옥의 핵심은 풍경을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조 회장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결국 목재도, 공간 설계도, 인테리어도 자연과의 조화라는 기본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걸음마다 감탄을 내뱉으면서도 내내 편안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방이 아닌 문화를 팝니다"
행사에서는 더한옥헤리티지의 철학과 장기 비전에 대한 소개도 이어졌다.

조남희 실장은 "업을 정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정의에 따라 조직부터 상품,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라며 "저희는 한옥 사업을 방을 파는 사업이 아닌 문화를 파는 사업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일례로 더한옥헤리티지 기획, 세일즈, 마케팅 담당 직원 중에서 호텔 관련 직무 경험이 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며 "저희 업을 스스로 문화를 파는 사업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한 콘텐츠를 다뤘던 구성원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잘 지어놓고 투숙객을 받으며 수익을 창출하는 보통의 호텔 사업에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도 확실히 전했다. 조 실장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경험이라는 요소를 한옥 사업에 더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고급화 전략의 이유도 공개했다. 조 실장은 "고급 문화에서 출발한 것이 시대가 지나 하나의 유산이 되기도 한다"며 "한옥을 짓고 경험을 설계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의 기준을 갖고 만들어야 100년, 200년이 지나도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단 공간뿐만 아니라 모든 경험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조남희 더한옥헤리티지 사업 총괄 실장.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는 K컬처가 추구해야 할 다음 단계와도 맞닿아 있다. 조 실장은 "작년에 방한 외국인 수가 1870만 명으로 역대 최고를 달성했고 2030년에는 3000만 명까지 목표로 하고 있지만 1인당 지출 금액을 보면 평균 1023불에 불과하다"며 "K컬처가 고액 자산가 중심 시장보다 대중 시장 중심으로 형성돼 있어서 고액 자산가를 타깃할 수 있는 호텔과 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더한옥헤리티지는 방한 외국인이 증가하는 추세와 고액 자산가의 여행 수요를 겨냥해 방한 고액 자산가를 집중 타깃으로 하고 있다. 조 실장은 "고액 자산가의 경우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하는 니즈가 1차적으로 굉장히 크고, 추가적으로 아주 프라이빗한 환경에서 경험하기를 원한다"며 "또 세계적으로 웰니스 키워드가 급부상하고 있어 자연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 수요의 교차점에 더한옥헤리티지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의 가치는 광고 없이도 글로벌 시장에서 입증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입소문과 SNS 후기만으로 전체 예약의 30%를 외국인 고객이 차지하고 있다. 해외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트래블 어드바이저를 통한 예약 역시 70%가 외국인이다. 세계적 수준의 호텔에만 수여되는 인증도 차근차근 확보하고 있다.
더한옥헤리티지에서 진행하는 민화 체험.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더한옥헤리티지는 이제 본격적으로 문화를 파는 사업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조 실장은 "해외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고객분들이 도착하기 전에 프로그램을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같이 설계하기도 한다"고 했다. 풍부한 경험 덕분에 하루 묵을 것을 3일로 연장하는 등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최근 K뷰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 서울 유명 피부과와 제휴해 뷰티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조 실장은 "서울에서 3일 트리트먼트를 받은 뒤 이곳에서 이틀간 쉬면서 추가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제휴 패키지도 구성했다"고 했다.

서울과 떨어져 있는 지리적 한계를 오히려 경쟁력으로 바꾸는 경험도 설계했다. 바로 슈퍼카 패키지다. 서울에 도착한 고객에게 람보르기니를 대여해 이곳까지 직접 드라이브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에서 영월까지의 여정을 단순한 이동이 아닌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만든 것이다.

조 실장은 "지난 10년 동안 K컬처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아 왔지만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경험하는 방식은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형태에 머물러 있었다"며 "이제는 한국에 방문해 문화를 직접 경험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 경험을 한옥이라는 중요한 자산을 바탕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제공할지 계속 연구하고 있다"며 "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선도자로서 앞으로 관광 산업 자체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조정일 코나아이 회장. 사진=신혜영 이코노믹리뷰 기자

조정일 회장은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하면서 성장해 온 기업인 만큼 우리가 하고 있는 문화 경제 사업도 2~3년 후면 회사의 좋은 수익 모델이 될 것"이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확신을 이곳에서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