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다 살아나도 책을 지키는 그 남자…“나마저 접으면 대학교 앞 서점은 전멸”

2026. 8. 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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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앞 인문서점 ‘지담’ 김준수 대표 인터뷰
고려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지식을 담다’ 김준수 대표. 김정근 선임기자

한강 작가의 독립서점 ‘책방오늘’이 지난 7월 7일 건물주의 건물 매각 때문에 문을 닫았다. 노벨문학상 작가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하지 못한 속사정은 주간경향 1688호(부동산이 노벨상을 이겼다)의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에서 인문사회과학서점 겸 북카페 ‘지식을 담다’(지담)를 10년째 운영 중인 김준수 대표는 그 소식에 “저렇게 훌륭하고 유명한 분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90학번인 그는 2016년 12월 모교 앞에 ‘지담’을 열었다. 동문 15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장백서원, 황토, 동방서점 등 터줏대감 같았던 서점 14곳이 문을 닫는 등 학교 앞 서점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 지담은 세워졌다. 그는 “정글 같은 경쟁에 뛰어드는 애들에게 잠깐 해방된 공간, 숨통이 트이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서점을 열었다고 했다.

“후배들과의 10년이라는 약속 때문에 버텼다. 많은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거냐고 한다. 그런데 나까지 저버리면 끝이다.”
“한강 책방 폐업 소식에 그분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했구나 싶었다. 한강과 그 서점을 별개로 보는 시선이 문제다. 결국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학생운동으로 1995년 옥살이를 했고,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쭉 진보정당 운동을 해온 그의 이력(현재 정의당 성북구위원회 위원장)들을 보면 그가 책방을 만든 동기가 짐작된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세월은 사투였다. 김 대표는 “여기서 돈 한푼 가져간 적 없다”며 “정치 컨설팅과 여론조사 회사를 따로 운영하는데, 선거 때 번 돈을 이 서점에 쏟아부어왔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이라고 사정이 다를까. 대학가 인문사회과학서점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과 지담 정도만 남았다. 성균관대 앞 ‘풀무질’은 2021년 해방촌으로 자리를 옮겨 명맥을 잇고 있다. 전국 서점은 2005년 3429곳에서 2024년 2484곳으로 28% 줄었고, 연매출 1억원 미만 서점이 절반(49.5%)에 달한다.

2023년엔 건강상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3월 건강검진에서 신장 기능 검사 수치가 안좋아 병원에 입원했던 그는 쓰러져 나흘간 의식을 잃었다. 신장 기능이 급격히 무너진 신부전이었다. 이후 2년 넘게 투석을 받다 지난해 2월 아내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았다. 배우자가 장기를 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내의 혈액형이 맞았다. 수술 뒤 석 달은 집 밖에 나오지도 못했다. 몸의 일부를 아내에게 받아 겨우 살아난 사람이, 회복하자마자 다시 매달 적자가 나는 서점으로 출근한다.

7월 28일 지담에서 만난 김 대표는 “20대 초반에 읽은 책 한권, 시집 한권이 평생 삶의 좌표가 된다”며 “이 공간이 살아남아 선배와 후배가 책으로 소통하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죽다 살아났다. 왜 다시 서점에 나오나.

“책임감이다. 우리가 여기 접으면 이제 고려대 앞에 서점은 없을 것 같다. 아무도 안 한다. 제가 이걸 열 때 후배들한테 ‘내가 10년은 버텨볼 테니 그다음은 너희가 협동조합으로든 물려받아 이어가라’고 약속했다. 그 10년이라는 약속 때문에 버텼다. 많은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거냐고 한다. 그런데 나까지 저버리면 끝이다.”

-아내가 신장을 주겠다고 했을 때 마음이 어땠나.

“사람이 자기 몸을 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 중에도 피가 섞인 사람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내가 다행히 혈액형이 맞았다. 여러 항목이 맞아야 하는데 그게 맞았다. 지금은 많이 건강해진 상태다. 요즘 내가 갱년기가 와서 그런지 무슨 말만 하면 눈물이 난다.”

고려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 ‘지식을 담다’ 김준수 대표가 신장이식 수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무엇이 이 서점을 시작하게 만들었나.

“같이 만든 친구 중 한 명이 학교 다닐 때 일찍 결혼해 딸이 13학번으로 고려대에 들어왔다. 친구가 ‘학교 앞 서점 가서 이런 책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딸이 ‘학교 앞에 서점이 없다’고 하더란다. 그 얘기를 술자리에서 듣고 ‘이게 말이 되냐’며 스토리가 시작됐다. 교수인 선후배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하지 말라고 했다. ‘요새 누가 그런 걸 읽느냐, 수업 교재도 안 읽는다’고. 그럴수록 이런 세상도 있다고 알려주는 게 선배의 몫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운영을 맡게 됐나.

“동기들 중에 그나마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자유업이었고, 대학 졸업하고도 이 동네를 안 떠나 서점에서 가장 가까이 살고 있었다. 지역 활동도 성북에서 해왔으니, 매일 문을 열고 지킬 사람은 결국 나였던 셈이다.”

-수험서나 베스트셀러를 아예 들이지 않고 인문사회과학 책으로만 서가를 채웠다.

“나는 대학생 때 <태백산맥>을 열세 번 읽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세대로서, 정글 같은 경쟁에 뛰어드는 애들에게 영어책이나 자격증 책, 자기계발서를 파는 건 우리 취지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삶에서 잠깐 해방된 공간,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봤다. 돈 벌 거면 딴 장사를 하지 왜 이걸 하겠나.”

-그렇게 버틴 10년,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

“졸업한 후배들이 학교에 오면 꼭 들르는 공간으로 여겨줄 때다. 군대 간 후배가 휴가 나오며 인삼 말린 거라도 사 들고 오고, 장문의 편지를 주고 간다. 여기서 박사를 따고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 늦게 공부해 로스쿨 가서 변호사가 된 친구도 있다. 그들이 지금도 월 만원씩 후원 회원을 해준다. 얼마 전엔 유학 가는 후배가 ‘이 공간이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며 후원하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럴 때 지난 10년이 의미가 있었구나 싶어 뭉클하다.”

-대학가 서점이 안 되는 이유를 구조적으로 짚어달라.

“두 가지다. 하나는 이용률이 너무 낮다. 만원짜리 책이 예스24엔 정가의 50%에 들어가 10% 할인이 가능하지만, 우리한테는 7500~8000원에 들어온다. 소매점 평균 이윤율이 22% 정도인데, 여기서 인건비·전기료·임대료를 다 빼야 한다. 남는 게 없다. 우리는 정가에 파는 대신 책을 사면 아메리카노를 공짜로 준다. 그래도 경쟁이 안 된다. 둘째, 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 릴스로 세상을 배우고, 전공책조차 서너 명이 돈을 모아 한권 사서 PDF로 돌려본다.”

-임대료 부담은 어떻게 감당하나.

“월 250만원, 부가세까지 275만원인데 건물 주인이 2016년부터 한 번도 안 올렸다. 이 건물 위층이 다 학생 자취방이라, 부모들이 방을 보러 와서 ‘선배들이 만든 서점이 아래 있다’는 걸 보면 좋아한다. 주인 입장에선 다른 거로 몇십만원 더 버는 것보다 만실 유지가 이득인 셈이다. 그나마 큰 다행이다. 처음 얻을 때 이 근처 비슷한 평수가 보증금 1억원에 월 800만원이었는데, 거긴 9년간 주인이 네다섯 번 바뀌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들어온 자리는 다 그렇게 업종이 계속 바뀐다.”

‘지식을 담다’ 서가에 과거 문예지가 진열돼 있다. 박효재 기자

-코로나19 때가 가장 힘들었겠다.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 학교가 2년을 문 닫았으니 학교 앞 장사가 무너졌다. 코로나 대출을 받고, 그 대출을 갚으려 또 대출을 받는 악순환에 빠졌다. 보증금까지 다 까먹었다.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우울증이 왔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하면 그냥 끝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지난해 8월 고대 선배들이 3000만원을 다시 모아줘서 겨우 재계약을 했다. 사실 나는 여기서 돈 한푼 가져간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 컨설팅과 여론조사 회사를 따로 운영하는데, 선거 때 번 돈을 이 서점에 쏟아부어왔다. 이번 선거에서 번 돈으로도 지금 적자를 메우고 있다.”

-한강 작가의 ‘책방오늘’이 문을 닫았다.

“한강과 그 서점을 별개로 보는 시선이 문제다. 한강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일종의 공공재인데, 정작 그가 하던 서점은 떠밀려 나가는 순간 그저 한 상가 세입자로 취급됐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적자를 감수하며 공간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판시장의 불합리한 이윤 구조, 반짝하고 끝나는 독서 문화, 젠트리피케이션이 겹친 복합적 문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5월 도서정가제 개선 토론회는 어떻게 봤나.

“하던 얘기를 똑같이 하더라. 대형 서점의 10% 할인을 아예 없애는 완전정가제로 가지 않는 이상 다 피해갈 구멍이 있다. 그렇다고 완전정가제만으로 중소 서점이 사는 것도 아니다. 대형·온라인 서점은 정가의 절반 값에 책을 떼 와서 10%를 깎아줄 수 있지만, 우리는 정가의 75~80%에 떼오니 그만큼 못 깎는다. 그러니 공공기관이나 대학·중고등학교 도서관이 지역 서점을 통해 책을 사되, 대형서점 할인가와 지역서점 판매가의 차액만큼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반대다. 고려대 도서관만 해도 책을 몇천권 단위로 사면서 예스24를 통한다. 담당자 입장에선 한곳에서 대량으로, 최저가로 사는 게 행정적으로 편하고 예산도 아끼는 길이다. 굳이 더 비싸고 손 많이 가는 동네서점을 여러 곳 상대할 이유가 없는 거다. 관행처럼 굳어져 있기도 하다. 그 몇천권 중 일부만 여기로 돌려줘도 우리는 사는데, 학교에 몇번 건의했지만 안 됐다.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

‘지식을 담다’ 서가에 여러 서적이 진열돼 있다. 박효재 기자

-지역 서점 수의계약 제도는 혜택을 받아봤나.

“아직 없다. 해보려는데 여러 문제가 있더라. 지역 서점끼리 서로 물량을 따내려 다투기도 하고, 아주 작은 공간에 책 몇권 붙여놓고 서점으로 신고한 유령업체가 납품을 노리기도 한다. 그런 사례를 실제로 들었다. 서점 지원사업도 인건비나 임대료는 못 쓰게 하고 행사비만 준다. 서류가 복잡해서 받은 돈 일부를 서류 미비로 토해낸 적도 있다. 정작 문제인 임대료·인건비엔 손을 못 댄다.”

-대학가 인문서점을 공공 문화재처럼 지정해 지원하는 방안은 왜 안 나올까.

“정부가 대학가 서점을 공공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경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기조에서 이건 그냥 자영업으로 보일 뿐이다. 지켜야 할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재벌에게 90도로 인사하는 시대다. 소위 진보 정권조차 이 문제 앞에선 ‘어쩔 수 없다’는 태도라고 느낀다. 지켜야 할 가치는 결국 나 같은 사람이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거다.”

-지담의 마지막 모습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

“돈 많은 후배가 갑자기 나타나 ‘저희가 하겠다’고 하진 않을 거다. 가장 좋은 건 고려대 졸업생 100명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인수하고, 그들이 책을 사고 함께 운영하는 공동체 운동으로 가는 거다. 그렇게 다수가 나서면 학교도 이 공간을 파트너로 인정해줄지 모른다. 거기까지 가는 중간 다리라도 됐으면 좋겠다. 우리가 데모할 때 부르던 노래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대목이 있다. 거창하게 이름을 남기려는 게 아니다. 이 공간이 살아남아 선배와 후배가 책으로 소통하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10주년까지 가서 계속하자는 마음이 들면 5년쯤 더할 것 같다. 그러면 예순이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도 그쯤 은퇴하지 않나. 그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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