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부르는 B형간염… “간수치 정상이어도 선제 치료를” [건강+]

권이선 2026. 8. 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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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군 진료지침 대폭 개정
간경변 등 걸리면 6개월마다 검진
간 효소수치 높을 땐 이미 세포 손상
바이러스 양 많으면 치료… 암 예방
초기 증상 없는 간암, 5년 생존율 40%
“건보기준 손질해 조기 개입 유도를”

간은 상당 부분이 손상될 때까지 좀처럼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간암이 생겨도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없어 황달이나 복수,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암을 일찍 찾아내는 정기검진과 함께 간암의 주요 원인인 만성 B형간염을 더 이른 단계부터 치료해야 하는 이유다.

올해 만성 B형간염 진료지침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간세포 손상을 보여주는 간효소수치(ALT)가 상승해야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혈액 속 B형간염바이러스(HBV DNA)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치료를 권고한다. 간 손상이 나타난 뒤 대응하는 데서 벗어나 바이러스 증식을 미리 억제해 간경변증과 간암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치료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간은 상당 부분이 손상될 때까지 좀처럼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아 황달이나 복수, 체중 감소 등 증상이 나타난 후 암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증상 땐 이미 진행… 간암 고위험군 6달마다 검진

2일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서는 1만4707명의 간암 환자가 새로 발생했다. 전체 암 발생의 5.1%로 7위다. 남성 환자가 1만875명으로 여성의 2.8배에 달했다. 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40.4%로 주요 암 가운데 여전히 낮은 편이다.

간암은 정상적인 간에서 갑자기 생기기보다 오랜 기간 이어진 간 손상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위험요인은 만성 B형·C형간염으로, 이들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 발생이 각각 60%, 10%에 달한다.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간세포의 손상과 재생이 반복되고, 이 과정에서 간섬유화와 간경변증을 거쳐 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간경변증이 생기면 원인과 관계없이 간암 발생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최근에는 과도한 음주와 비만·당뇨병 등에 따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도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간암이 생겨도 초기에는 뚜렷한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간은 일부가 손상돼도 남은 조직이 기능을 대신하기 때문에 피로감이나 식욕 저하, 체중 감소처럼 다른 질환에서도 흔한 증상만 나타나거나 별다른 이상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생기거나 복부에서 덩어리가 만져지고, 황달이나 복수 등이 나타났다면 이미 암이나 기저 간질환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간암은 몸의 이상 신호를 기다렸다가 병원을 찾는 방식으로는 조기에 발견하기 어려운 암인 셈이다.

간암 발병을 피하기 위해서는 B·C형간염과 간경변증 등 원인 질환을 앞선 단계에서 관리해야 한다. C형간염은 항바이러스 치료로 일찍만 발견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고, B형간염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해 간경변증과 간암 위험을 낮추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이에 따라 간경변증 환자와 40세 이상 만성 B형·C형간염 환자는 증상이 없어도 6개월마다 복부초음파와 혈청 알파태아단백(AFP)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간수치 정상이어도 바이러스 많으면 치료

특히 B형간염은 바이러스가 많이 검출돼도 ALT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치료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하는 환자가 적지 않았다. ALT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세포가 손상될 때 혈액으로 빠져나오는 효소로, 간세포 손상과 염증 정도를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ALT는 이미 발생한 간세포 손상을 보여주는 후행 지표다. 바이러스가 계속 증식해도 뚜렷한 염증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정상 범위에 머물 수 있다. 간수치가 정상인 동안에도 간섬유화가 진행되고 간암 위험이 누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쌓이면서 치료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근 진료지침이 치료 판단의 중심을 ALT에서 바이러스 양으로 옮긴 것도 간암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대한간학회는 지난 6월 혈액 1㎖당 HBV DNA가 2000IU 이상 1억IU 이하인 ‘중등도 바이러스혈증’ 환자는 간수치가 정상이어도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하도록 하는 새 진료지침을 내놨다. 환자 분류도 HBV DNA 농도에 따라 고·중등도·저바이러스혈증으로 단순화했다. 기존 분류에 명확히 들어맞지 않아 치료 여부가 불분명했던 ‘회색지대’ 환자를 줄이고, 간암 위험이 높은 환자를 더 일찍 치료하기 위해서다.

간경변증이 있는 환자는 ALT와 관계없이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치료한다. 간경변증이 없는 고바이러스혈증 환자는 30세 이상인지, ALT 상승이나 의미 있는 간섬유화, 간암 가족력 등 위험요인이 있는지를 종합해 치료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새 진료지침과 건강보험 급여기준 사이에는 아직 간극이 있다. 현행 급여기준은 간경변증이 없는 환자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HBV DNA와 함께 AST·ALT 상승이나 중등도 이상의 염증·섬유화가 확인돼야 항바이러스제 급여를 인정한다. 새 지침에 따라 치료가 권고돼도 간수치가 정상인 일부 환자는 약값을 전액 부담해야 할 수 있는 셈이다.

이혜원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기존 기준에서는 상당수 환자가 치료 여부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바이러스 수치를 중심으로 치료 대상을 명확히 하고 필요한 환자에게 더 일찍 개입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환자들이 혜택을 보려면 건강보험 급여기준도 신속히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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