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緣)을 찾아서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2026. 8. 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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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 사과가 왜 떨어졌을까? 뉴턴은 지구와 사과 사이에 서로를 당기는 힘이 있어서 사과가 지구로 떨어진 거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서 세상의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판단을 내린다. 요걸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理由)를 찾아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와 다르게 사과나무를 발로 차서 사과가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 사건은 사과나무를 발로 찬 사건이 원인이 돼서 일어난 사건(결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 사람은 현재 일어난 사건의 원인(原因)을 찾았다고 말한다. 
이유를 찾는 것과 원인을 찾는 게 어떻게 다를까? 이유는 생각이나 이치(理致)에서 찾아지고 원인은 대체로 같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에서 찾아진다. 이유를 찾는 대표적인 학문이 수학이고 원인을 찾는 일은 세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진찰을 하고 처방을 내리는 게 원인을 찾는 대표적 사례이고, 아이가 칭얼대는 걸 보고 잠을 재우거나 젖을 물리는 것도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운 것이다. 이유 찾는 일과 원인 찾는 일을 적절하게 아주 정교하게 결합하면 과학이 된다. 요걸 세속적 합리성의 표본이라고 한다.
어떤 사건이 말미암은(由) 곳을 원인도 아니고 이유도 아닌 데에서 찾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인연(因緣)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찾는 수도 있다. 사실 인연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연(緣)이 맞다. 저 인간들끼리 어떻게 만나서 살게 되었을까? 나는 왜 이 부모에게서 태어났을까? 이런 의문들은 말미암는(由) 연(緣), 곧 연유(緣由)를 찾는 질문들이다. 
장작이 타고 있다고 하자. 장작불의 이유를 찾는다면 열과 빛의 이론이 필요할 것이고, 장작불의 원인을 찾는다면 누군가가 추워했다거나, 성냥불을 그어댔다는 사례를 들이댈 것이다. 그런데 장작불의 연유는 불에 초점이 있지 않고 장작에 있다. 곧 장작불의 연유는 성냥도, 열과 빛도 아니고 장작이다. 사실 불에 주목을 하면 그게 장작이든, 가스든, 성냥이든, 초든 상관없이 열과 빛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내가 화가 났다면 화가 났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떻게 무엇에 연해서 화가 났는 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가 난 걸 당연시하는 사람은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장작불의 연유가 장작에서 찾아진다면 장작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불을 꺼야 한다. 화를 내고 있는 상태에서는 화의 뿌리를 차분하게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처럼 장작불이 타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연유인 장작을 찾을 수 없다. 장작불의 연유를 장작에서 찾는 건 불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장작이 있는 한 장작불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장작이 없다면 장작불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장작불에 물을 뿌리거나 모래를 덮어서 끈다면 불이 일어날 소지를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다. 화를 억지로 참는다고 해서 화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다. 장작이 있는 한 장작불은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마음에 미움이나 경계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화를 낼 가능성은 살아 있다. 장작불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장작을 찾아 없애야 한다. 화가 났을 때 그 연유인 미움이나 경계심을 제거해야 화의 뿌리가 뽑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연유를 찾는다는 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을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고통스러운가? 고통의 연유를 찾아보라. 불행한가? 불행의 연유를 찾아보라. 행복한가? 행복한 연유를 찾아보라. 화가 나는가? 화가 난 연유를 찾아보라. 불안한가? 불안한 연유를 찾아보라. 태어났다고? 태어난 연유를 찾아야지. 태어난 연유를 찾아내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안 불행하고 안 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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