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 골프 오디세이 <284> 시즌 마지막 메이저 디오픈을 빛낸 경쾌한 골프] 망설이지 않은 3.6m, 라이언 폭스가 보여준 챔피언의 본질

민학수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2026. 8. 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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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흔히 스윙의 경기라고 한다. 39세의 라이언 폭스는 7월 19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제154회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이하 디오픈) 에서 그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1963년 디오픈 챔피언이자, 뉴질랜드 최초의 메이저 우승자인 밥 찰스 경도 폭스의 경기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폭스는 찰스 경과 2005년 US오픈 챔피언 마이클 캠벨에 이어 뉴질랜드 출신 세 번째 남자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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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제154회 디오픈 우승자 라이언 폭스가우승컵 '클라레 저그'에 입 맞추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골프는 흔히 스윙의 경기라고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스윙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다. 바로 결단력(decisiveness)이다.

39세의 라이언 폭스는 7월 19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제154회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 오픈·이하 디오픈) 에서 그 사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화려한 기술이나 완벽한 폼보다 중요한 것은 승부처에서 자기 판단을 믿고 실행하는 힘이었다.

우승 장면은 불과 몇 초로 압축된다. 18번 홀. 약 3.6m 버디 퍼트. 넣으면 우승, 놓치면 캐머런 영과 연장전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 메이저 대회 마지막 홀에서 대부분 선수는 라인을 거듭 확인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간을 쓴다. 한 번의 스트로크가 선수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민학수 - 스포츠전문 칼럼니스트, 민학수의 올댓골프 대표, '골프룰 도대체 왜이래' '골프를 찾아서' 저자

그러나 폭스는 달랐다. 공을 내려놓고 라인을 한 번 살핀 뒤 곧바로 스트로크했다. 볼은 홀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그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는 생애 첫 메이저 우승과 클라레 저그를 품었다.

디오픈 우승은 하루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폭스는 우승 상금 320만달러(약 47억원)와 함께 1년 동안 클라레 저그를 보관할 권리를 얻었고, 우승자의 영예를 상징하는 골드 메달과 ‘올해의 챔피언 골퍼(Champion Golfer of the Year)’라는 공식 칭호도 받았다. 만 55세까지 디오픈 출전 자격이 보장되며, 마스터스, PGA 챔피언십, US오픈,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는 향후 5년간 자동 출전한다. PGA투어 시드 역시 5년간 확보했다. 메이저 우승은 트로피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골퍼의 미래를 새로 쓰는 특권이다.

英 가디언 "용기와 침착함이 만든 우승"

영국 가디언은 이를 “용기와 침착함이 만든 우승”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단순히 배짱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폭스의 빠른 스트로크는 성급함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루틴에 대한 신뢰에서 나왔다. 그는 결정을 내리면 흔들리지 않았다. 라인을 읽었으면 그대로 쳤고, 클럽을 골랐으면 그대로 스윙했다. 선택을 마친 뒤 다른 가능성을 계속 떠올리지 않았다.

폭스의 스윙은 교과서적으로 아름답지는 않다. 백스윙은 짧고 다운스윙에는 힘이 실린다. 흔히 말하는 ‘아저씨 스윙’에 가깝다. 하지만 임팩트 순간에는 주저함이 없다. 보기 좋은 스윙보다 자기에게 맞는 동작을 믿고 반복한다.

그 철학은 경기 운영에서도 드러났다. 3라운드에서 메이저 대회 18홀 최소타 타이 기록인 62타를 친 뒤 그는 “오늘 계획은 공격적으로 치는 것이었다. 제대로 실행하면 점수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11번 홀 보기로 흔들렸지만 마지막 여섯 홀에서 버디 네 개를 잡으며 승부를 뒤집었다. 경쟁자의 실수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기회를 만들었다. 마지막 3.6m 퍼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었다.

폭스의 빠른 플레이는 마지막 홀에서 갑자기 꺼내 든 승부수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그의 골프를 설명하는 특징이었다.

그는 우승 뒤 “늘 샷을 보고 곧바로 치는 식이다(see a shot, hit a shot)”라며 “너무 많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좋지 않은 생각이 끼어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반자 샘 번스가 퍼트를 마친 뒤 폭스가 우승 퍼트를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2초였다. 18번 홀 두 번째 샷도 공 앞에 선 지 10초가 채 되지 않아 실행했다.

그의 속도는 서두름과는 달랐다. 샷을 대충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끝낸 뒤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지 않은 것이다. 생각을 거듭한다고 반드시 더 좋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심이 끼어들어 몸의 반응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폭스는 오래 재는 대신 자기가 처음 읽은 바람과 거리, 라인을 믿었다.

1963년 디오픈 챔피언이자, 뉴질랜드 최초의 메이저 우승자인 밥 찰스 경도 폭스의 경기 방식을 높이 평가했다. 폭스가 골프를 원래 치러져야 할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그의 빠른 경기 운영을 반겼다.

느린 플레이가 프로 골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시대에 폭스의 간결한 루틴은 더욱 돋보였다. 준비는 충분히 하되, 결정이 끝난 뒤에는 곧바로 실행하는 골프였다.

반면 54홀 선두 번스는 최종 라운드에서72타에 그쳤고, 영은 64타를 몰아치고도 한 타가 부족했다. 김시우는 전반 한때 단독 선두에 올랐지만 후반 들어 보기로 흐름을 잃었다.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도 마지막까지 추격했으나 공동 4위에 머물렀다.

7월 19일 영국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154회 디오픈 넷째 날 18번 홀 페어웨이에서 라이언 폭스가 어프로치 샷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부친은 뉴질랜드 럭비 레전드

그의 이력도 흥미롭다. 아버지 그랜트 폭스는 뉴질랜드 럭비 국가대표 올블랙스의 전설적인 플라이하프였다. 플라이하프는 공격 방향과 경기 속도를 조율하는 사령탑이다. 그랜트 폭스는 1987년 초대 럭비 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정확한 킥과 냉정한 경기 운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한 스타였다.

그러나 폭스는 아버지의 명성에 기대기보다 골프를 자신의 길로 선택했다. 그는 세계적인 주니어 대회와 미국 대학 무대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은 전형적인 엘리트 선수도 아니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출발해 남태평양과 아시아의 여러 대회를 돌며 경력을 쌓았다. 한국의 매경오픈과 한국오픈에도 여러 차례 출전했고, 2015년 매경오픈에서는 공동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유럽 2부 투어를 거쳐 DP월드투어, 다시 PGA투어까지 한 단계씩 올라왔다.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출전할 수 있는 대회를 찾아다니며 더 높은 무대로 이동했다. 지난해에는 PGA투어 머틀비치 클래식과 RBC 캐나다오픈을 모두 연장전에서 제패했다. 압박이 가장 커지는 순간에도 자기 샷을 믿고 실행하는 능력을 이미 두 차례 증명한 셈이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신데렐라가 아니다. 여러 투어를 돌며 오랜 시간 준비한 선수다. 젊은 장타자가 투어의 중심을 차지한 시대에 39세의 폭스는 경험과 판단력으로 골프의 가장 오래된 메이저 정상에 올랐다. 이번 우승은 뉴질랜드 골프에도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찰스 경이 1963년 디오픈을 제패한 이후 63년 만에 다시 뉴질랜드 선수가 클라레 저그를 들어 올렸다. 폭스는 찰스 경과 2005년 US오픈 챔피언 마이클 캠벨에 이어 뉴질랜드 출신 세 번째 남자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우승 다음 날의 모습도 그다운 장면이었다. 폭스는 클라레 저그를 들고 이코노미석에 올라 미국으로 이동했다. 메이저 챔피언에게 어울릴 법한 전용기나 특별한 좌석 대신 평소처럼 일반석을 택했다. 공항과 비행기에서도 그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챔피언이라기보다 늘 하던 방식대로 움직이는 폭스에 가까웠다. 샷 앞에서도, 이동할 때도 불필요하게 자기를 꾸미지 않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우승 퍼트를 고민한 시간이 내가 트리플 보기 퍼트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짧다’ ‘플레이 속도의 교과서’ ‘얼음 같은 담력’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골프는 자신감의 게임”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은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막연히 믿는 마음만을 뜻하지 않는다. 충분히 준비한 뒤 내린 결정을 압박 속에서도 실제 동작으로 옮기는 능력에 가깝다.

폭스는 로열 버크데일에서 그 차이를 보여주었다.

골프는 자신감을 갖는 데서 끝나는 경기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 자기 판단을 믿고실행하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폭스가 망설이지 않고 굴린 3.6m 퍼트는 그 단순한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한 번의 스트로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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