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탐구생활]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해주는 시대의 대변자 우표

이한빛 기자 2026. 8. 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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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를 가다
‘태권브이’ 50주년 우표로 의미 극대화
한국 전통·문화 알리면서 저변 확대 나서
“손때 가득한 인간미로 의미 전달 노력”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둘러보고 있다. 이한빛 기자

우표는 대한민국과 함께해왔다. 광복과 정부수립,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비롯해 대통령 취임, 한국에서 열린 국제 행사와 스포츠 대회, 자연·문화유산, 역사 인물, 과학기술, 문화예술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우표들을 출시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생생히 보여줬다.

이처럼 우표는 여러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는 내용의 명언을 남겼을 정도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는 ‘우표, 시대에 퐁당 빠지다’라는 주제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우표의 가치를 보여줬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징표로, 아이들에게는 세대를 공감하는 연결고리로써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50주년 맞은 태권브이와 우편도령… 추억을 소환하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번 우표전시회 개최에 맞춰 올해 개봉 50주년을 맞은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V)’ 기념우표를 출시했다.

태권브이는 ‘태권도를 하는 로봇’이라는 소재로 태권도 선수인 주인공 김훈이 파일럿이 돼 로봇을 조종해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운다는 스토리로 1976년 7월 24일 개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0년까지 총 6편이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틀을 다졌다.

개봉 50주년을 맞아 출시된 ‘로보트 태권브이’ 기념우표. 우정사업본부 제공

2000년대에는 필름 복원 작업을 거쳐 2007년 디지털 복원판이 재개봉했고,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로 시작되는 주제가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밈(Meme)으로 활용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태권브이 우표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원형 딱지 형태로 제작해 딱지놀이를 하면서 자란 중장년층 세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했다. 일부 관람객들은 추억에 젖어 우표를 바라보거나 어린 자녀 또는 손주들에게 알려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었다.

태권브이의 아버지인 김청기 감독도 29일 개막식에 참석해 사인회를 가졌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태권브이 우표를 둘러보고 모형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예전에는 만화라고 하면 나쁜 쪽으로 평가하고 아이들이 사고를 치거나 비행을 저지르면 무조건 만화 탓이라고 몰아가던 시절이 있었다”며 “이렇게 국가에서 만화 캐릭터를 우표로 기획해준 것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청기 ‘로보트 태권브이’ 감독이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태권브이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빛 기자

우체국 상징물의 변천사를 담은 전시물도 눈길을 끌었다. 1970년 7월 우편번호가 대한민국에서 처음 도입됐을 당시 우정사업본부의 전신인 체신부에서는 우편번호 제도의 정착과 사용 안내를 위해 ‘우편도령’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우편도령은 집배원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모자를 쓰고 우편가방을 멘 모습에 몸통은 엽서로 구성돼 우편번호 도입을 홍보하면서 동시에 빠르고 정확하게 우편물을 배달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주제곡인 ‘우편도령의 노래’도 만들어졌으며 기념우표, 우편엽서 등의 모델이자 우편번호부 표지 주인공으로도 활동하며 우편번호 확산에 기여하고 1980년대까지 우체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 우편번호 제도 도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우편도령’. 이한빛 기자

◇K-콘텐츠 전도사 된 우표… BTS·블랙핑크 이어 ‘페이커’ 모델로
1970~80년대 우표는 정부 정책, 국가 행사 등을 홍보하는 역할로 많이 활용됐지만 지금의 우표는 한류의 기반이 되는 K-컬쳐와 K-콘텐츠를 소개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음악, 음식을 비롯해 문학, 영화, 뮤지컬 등 현재 세계에서 인정받는 분야를 소재로 한 우표도 출시된 바 있다.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세계를 휩쓴 K-팝 아티스트를 모델로 하는 우표이다. 2023년 출시된 BTS 우표는 사전판매 3시간 만에 전지 12만장이 모두 팔렸고, 기념우표 패킷 사전물량도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아동용 애니메이션인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캐치 티니핑’ 캐릭터를 소재로 한 우표도 출시 이후 많은 관심을 받으며 판매돼 주 시청자인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관람객이 BTS 우표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0월에는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세계적 선수로 통하는 ‘페이커’ 이상혁이 주인공인 우표가 발행된다. 전시회에는 우표 발행을 홍보하기 위해 페이커의 유니폼과 직접 사용하던 마우스를 전시하고, 관람객들이 직접 LoL을 플레이할 수 있는 체험존을 마련했다.

T1 소속인 페이커는 2013년 데뷔 이후 LoL 월드 챔피언십 통산 6회 우승을 이뤄내고 국내 리그인 LCK 10회 우승,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등 독보적인 기록을 가진 플레이어로, 2024년 ‘LoL 전설의 전당’에 1호로 헌액됐고 올해 1월에는 e스포츠 선수로는 최초로 체육훈장 최고등급인 청룡장을 수훈했다.

페이커 우표 발행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한민국 우표 규정’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국위 선양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생존 인물을 기념우표로 내지 않는다. 이로 인해 그동안 대통령,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을 제외하면 살아있는 인물을 주제로 한 우표는 나온 사례가 없었다.

BTS와 블랙핑크에 이어 페이커도 국위 선양의 공로를 인정받아 e스포츠 선수 최초의 기념우표 모델이 됐다. 우표에는 페이커의 우승·헌정 챔피언 스킨이 담길 예정이다.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 오는 10월 발행을 앞둔 ‘페이커’ 우표를 홍보하는 전시관이 마련돼있다. 이한빛 기자

한편 내년에는 K-팝과 한국 전통문화를 녹여내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소재로 한 우표도 출시될 예정이다.

박인환 우정사업본부장은 “우표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들이 공감하고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자 한다”며 “케데헌 우표와 더불어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교황 레오 14세 기념우표도 발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AI 시대에도 변치 않을 우표… “사람이 만들어서 더 가치 있어”
이번 전시회에서는 드로잉 로봇이 우표 모양의 캐리커처 엽서를 그려주고, 터치스크린에 그린 그림을 인공지능(AI)으로 변환해 홀로그램으로 전환해주는 체험 행사와 집배원 복장을 한 로봇이 춤을 추는 무대 등이 부대행사로 진행됐다.

이처럼 AI, 로봇 등 기술의 변화를 우표전시회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우표를 직접 기획·제작하는 디자이너들은 AI가 확산해도 따라할 수 없는 영역이 우표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 마련된 드로잉봇이 캐리커처 엽서를 그리고 있는 모습. 이한빛 기자

올해 6·7년차인 김미화·정은영 우표 디자이너는 우표의 매력은 ‘인간미’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미화 디자이너는 “요즘은 사림이 그리지 않아도 실현 가능한 그림들이 많은데 사람이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건 우편과 편지밖에 없는 것 같다”며 “그래서 우표를 디자인 할 때도 사람 손때가 묻은 표현법을 더 쓰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은영 디자이너는 “우표 한 장을 위해 현장을 누비는 것은 물론 디자인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메시지를 극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며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에 실크 소재를 사용하고 천상열차분야지도 우표는 밤하늘의 별 느낌을 위해 은박 소재 위에 인쇄를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3cm 크기에 구상한 내용을 모두 담아야 하는 만큼 작업한 디자인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거나 포인트가 사라지는 경우도 발생해 세심하게 살피면서 제작을 하게 된다는 고충도 전했다.

정은영 우표 디자이너(왼쪽)과 김미화 디자이너가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26 대한민국 우표전시회’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우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빛 기자

그래서일까. AI가 우표 제작을 대신해도 사람이 하는 만큼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 디자이너는 “사람이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유일무이하다”고, 김 디자이너는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높은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디자이너는 우표 소재의 다양화에 맞춰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 디자이너는 “스포츠와 관련된 우표는 해본 적이 없었는데 다른 우표와 표현 방법이 다른 만큼 한번 해보고 싶다”이라고 전했다.

정 디자이너는 “그동안 디자인한 우표들이 주제는 비슷했지만 한 번도 디자인이 겹친 적이 없었다”며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들을 새롭게 직업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한빛 기자 hble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