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실업 48만명.. 청년 첫 취업 '비상'
AI 확산에 초급 일자리 감소…청년 부담 가중
교육·채용 엇박자…고학력 실업 구조화 우려
[지데일리] 졸업장은 더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는 증표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수년간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지만 취업 문은 더욱 좁아졌고, 첫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구직 기간만 길어지는 청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기업은 경력을 원하고, 청년은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모순이 반복되면서 고학력 청년 실업이 코로나19 초기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 4년제 대학 및 전문대 졸업 이상의 실업자는 48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9000명 증가한 규모이며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1년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은 수준이다. 전체 실업자 증가폭보다 대졸 이상 실업자 증가가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면서 고학력 인력의 고용 불안이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졸 이상 실업률 역시 지난해 2.8%에서 올해 3.0%로 상승했다. 특히 청년층의 어려움이 두드러졌다. 20대 대졸 이상 실업자는 17만900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30대는 13만 명으로 뒤를 이었다. 두 연령대를 합하면 전체 대졸 이상 실업자의 64.2%를 차지한다. 20대 대졸 이상 실업률은 8.3%까지 상승하며 청년층의 고용 충격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청년들이 취업 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실업자 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첫 구직' 실업자는 올해 2분기 5만6000명으로 늘어났으며 대부분이 20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취업 문턱에서 장기간 머무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빠르게 달라진 영향이 크다. 경기 둔화와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신규 인력을 교육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입 공채를 축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대신 일정한 실무 경험을 갖춘 경력직이나 이른바 '중고 신입'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중고 신입은 입사 경험은 있지만 경력이 길지 않은 지원자를 뜻하며 기업 입장에서는 교육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채용 플랫폼들이 발표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많은 기업이 공개채용보다 수시채용을 확대하고 있으며, 직무 수행 경험과 프로젝트 이력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점이나 자격증보다 인턴십과 현장 경험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확산도 채용 시장 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생성형 AI와 자동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회계, 법률, 번역, 사무 행정 등 전문직에서도 반복적인 초급 업무가 줄어들고 있다. 과거 신입사원이 담당했던 자료 정리나 문서 작성, 기초 분석 업무 상당수가 AI로 대체되면서 기업들은 초급 인력 채용 규모를 줄이는 사례를 늘리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AI와 자동화가 새로운 직무를 만들기도 하지만 일부 사무·행정 직무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생성형 AI가 사무직과 전문 서비스 분야의 업무 구조를 변화시킬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AI를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인재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AI 활용 능력을 갖춘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채용 기회가 늘고 있지만 일반 전공 졸업생들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의 요구가 빠르게 달라지는 기술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고학력 실업 증가는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청년들이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이 늦어질수록 결혼과 출산, 주택 마련 등 생애 전반의 계획도 함께 지연된다.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오랜 구직 기간은 자신감 저하와 정신적 스트레스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기업 역시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신입 채용이 감소하면 향후 숙련 인력을 육성할 기반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재 공급이 끊기면서 기술 전수와 조직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돕는 정책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년 인턴십 확대와 채용 연계형 직무교육, 산학협력 프로그램 강화, AI 시대에 맞는 디지털 교육 확대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업에도 신입 채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과 고용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대학 교육도 변화가 요구된다. 산업 현장과 연계한 프로젝트 수업과 현장실습을 확대하고 AI 활용 능력과 데이터 분석 역량을 교육과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위 취득보다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실무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인 만큼 교육과 고용 정책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한 취업 컨설턴트는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기대했던 청년 고용시장은 다시 거센 한파를 맞고 있다"며 "대졸자 수는 늘었지만 이들이 사회에서 역량을 펼칠 기회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이 첫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사다리를 복원하지 못한다면 고학력 실업 증가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우리 노동시장의 구조적 위기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