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할수록 인간 전문성은 더 중요해진다
AI 덕분에 희망을 보고 AI 때문에 절망을 봅니다. 지도 없이 AI 시대를 걷는 이들의 시행착오와 모색을 기록합니다. ‘with AI’는 장밋빛 미래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현재진행형인 AI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칼질을 인공지능(AI)이 대신해주는 이른바 '바이브코딩' 시대엔 전자가 낫다. 생선을 아는 셰프는 칼질이 서툴러도 최상의 한 점을 찾아내지만, 생선을 모르는 칼잡이는 살점을 그저 갈라놓기만 할 뿐이다. 6월 미국 AI 개발사 앤트로픽이 내놓은 보고서가 실증적인 답을 제시한다.
전문성 가치는 지속된다
‘에이전틱 코딩 시대에도 지속되는 전문성의 가치(Agentic Coding and Persistent Returns to Expertise)'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2025년 10월부터 6개월간 약 23만5000명이 AI 코딩 어시스턴트 '클로드 코드'로 생성한 40만 건의 세션(첫 프롬프트 입력부터 최종 결과물까지 요청과 응답을 주고받는 전 과정)을 분석했다. 결론은 AI의 능력을 끌어내는 열쇠가 코딩 기술이 아니라 업무 전문성이라는 것이다. 자기 업무를 깊이 이해하면 코딩을 몰라도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고, 코딩에 능한 개발자라도 해당 영역의 지식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얘기다.연구팀은 프롬프트(사용자가 AI에게 하는 요청)를 근거로 사용자의 업무 전문성을 5단계로 나눴다. "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차트 만들어줘"처럼 도메인 지식 없는 일반적인 프롬프트는 초보자의 것으로, "하드 리프레시를 '관리형'과 '비관리형' 슬롯으로 세분화해야 해. 관리형 슬롯은 30분마다 리프레시하고 나머지는 하루에 한 번이면 돼"처럼 전문 용어와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가 담긴 프롬프트는 전문가의 것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이렇게 나눈 뒤 세션의 진행을 살펴봤더니 3가지 뚜렷한 차이가 드러났다. 우선 전문가는 한 번의 지시로 AI에게 훨씬 많은 일을 시켰다. 초보자가 프롬프트 하나로 약 5개의 작업과 600단어의 출력을 얻는 데 그친 반면, 전문가는 12개의 작업과 3200단어를 끌어냈다. 성공률 격차도 컸다. 초보자 세션의 업무 성공률(부분 성공 포함)이 77%인 데 비해 중급 이상은 91~92%에 달했다.
전문성이 진가를 발휘한 지점은 일이 꼬였을 때였다. 난관에 부딪힌 세션을 성공으로 마무리한 비율은 초보자가 4%, 전문가는 15%였다. 도중에 포기한 비율은 초보자가 19%에 이른 반면, 중급 이상은 5~7%에 그쳤다.

축적된 지식, 더블체킹 습관도 전문성 영역
AI가 똑같은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을 만들어내도 초보자는 이를 판별하지 못해 그대로 받아들여 일을 그르치거나 작업을 중단했지만, 전문가는 오류를 즉각 알아채고 수정 방향을 제시해 세션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연구진은 "전문성의 가치는 AI 에이전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능력에 있다"고 짚었다.이는 코딩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적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AI가 만들어낸 할루시네이션을 잡아내지 못하고 호주 정부에 용역 보고서를 제출했다가 큰코다친 사례가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의 지난해 10월 보도에 따르면 딜로이트 호주법인은 호주 정부의 의뢰로 복지 시스템에 관한 237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보고서는 정부 웹사이트에 게재됐는데 한 보건·복지법 연구자가 해당 보고서를 보다가 존재하지도 않는 논문이 인용된 사실을 발견했다. 그의 지적에 따라 보고서를 재검토한 딜로이트는 참고 문헌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고 수정본을 조용히 다시 게재하는 한편, 용역비 일부를 반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컨설팅펌도 AI 오류를 잡아내지 못했다. 오류는 그 분야를 아는 연구자의 눈에만 보였다. 축적된 지식도, 더블체킹 습관도 전문성의 영역이다. 딜로이트는 사람의 도메인 전문성이 마지막 안전판이라는 사실을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배운 셈이다.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업무에 AI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절대 잃어서는 안 될 역량이 결국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AI 확산과 함께 직원 1000명 이상인 정보기술(IT) 기업 11곳의 지난해 20대 신입 사원 수는 2년 전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다(그래프 참조). SK텔레콤의 20대 신규 입사자는 218명에서 108명으로, LG유플러스는 280명에서 96명으로 급감했다.
이렇게 신입 자리를 AI로 채워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아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조직 경쟁력을 정체시키고 도태를 부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에이미 에드먼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고문 'AI를 활용해 초급 일자리를 대체할 때의 위험성(The Perils of Using AI to Replace Entry-Level Jobs)'을 통해 신입 직원을 AI로 대체하는 것은 직원이 의사결정자로 성장하는 파이프라인 자체를 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정의되는 AI 시대 신입 사원

IBM은 신입의 역할도 다시 정의했다. 개발 업무와 관련해 반복 코딩, 데이터 정리는 AI에게 맡기고 신입 개발자는 첫해부터 AI를 도구 삼아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비즈니스 솔루션을 도출하도록 유도했다. 인사 부서 신입은 모든 질문에 일일이 답하는 대신 HR 챗봇이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 산출물을 바로잡고 관리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맡았다.
회사는 차별화와 혁신으로 생존하고 성장한다. 그러려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 일은 AI가 아닌 사람의 몫이다. 신입을 뽑아 일을 가르치며 시행착오를 감내하는 과정이 당장은 더디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져도 그런 역량 개발에 투자하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경쟁 우위를 차지한다. 앤트로픽의 데이터가, 딜로이트의 수업료가, IBM의 채용 확대 결정이 보여주는 공통된 결론이다.
김현지 동아일보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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