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이슬기 칼럼니스트 2026. 8. 1. 15:2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혐오라는 진단' 자체에 관한 집단반발이 있기까지, 문제적인 주장들을 부지런히 옮겨 담은 언론의 원죄가 있다. 기사가 주지하듯 온라인 상의 논쟁들에 '논란'자를 붙여 새겨 들을 만한 의견인양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광주 출신의 지역지 기자로서 호남 혐오라는 이슈에 기자는 단순 관찰자일 수 없고, 그 바람에 기사는 생동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미디어오늘 이슬기 칼럼니스트]

▲ 2026년 7월1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 앞에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이 6월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광주제일고와 경기 중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구호를 외쳤다. 이 구호는 지난 달 스타벅스 코리아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 할인 이벤트를 하며 '5·18 탱크데이'라고 홍보했던 사건을 연상케 해 공분을 샀다. ⓒ연합뉴스

미디어오늘의 기사 <'논란'으로 지워진 배재고 혐오발언, 언론은 혐오를 제대로 규정했나>에 달린 네이버 댓글을 봤다. “도대체 누구의 기준으로 혐오를 정의합니까?”라는 항변과 함께 “내로남불이다”, “'일베', '극우' 같은 정의는 낙인이다” 등의 댓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다. 거칠게 요약하면 “'혐오'를 말하는 자가 바로 '혐오론자'”라는 논지였다. 배재고 지역혐오 응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일인데도 그랬다. '혐오'를 논하는 사람에게 붙는 '낙인 찍지 말라', '성역이냐' 같은 반발들은 고착화 됐고, 이는 때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바꿀 만치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혐오라는 진단' 자체에 관한 집단반발이 있기까지, 문제적인 주장들을 부지런히 옮겨 담은 언론의 원죄가 있다. 기사가 주지하듯 온라인 상의 논쟁들에 '논란'자를 붙여 새겨 들을 만한 의견인양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 언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덧 가장 손쉽게, 조회수가 높은 기사를 뽑아내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논란' 기사들은 어마어마한 공급량을 자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이를 부지런히 클릭한 손가락들이 있었다.

혐오를 혐오라 말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오늘날, 기사 제목처럼 언론이 혐오를 제대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이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혐오라는 집단적 멸시에 대항해 대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사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무등일보의 <전라도 혐오 보고서> 시리즈는 이와 관련된 모범 사례다. 배재고 사태 이후 대다수 언론들이 배재고와 배재고 앞 근조화환 등의 동태를 주목한 사이, 무등일보는 피해자인 광주제일고를 위시한 지역민들의 반응부터 그렸다.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응원 구호보다 댓글이 더 충격적이었다”는 게 광주제일고 학생들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배재고 사태라는 이름의 호남 혐오가 광주 지역 다른 고교 학생들이나 5·18 민주화운동 참가자, 전교조 광주지부 같은 교육 관계자들에 미치는 영향도 담았다. 여기에는 지역민인 무등일보 기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리즈의 프롤로그는 기자의 자기 고백으로 시작한다. 예순 평생 전라도 사람으로 살았던 기자가 군대에서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참들에게 “너희 동네 놈들은 다 폭도냐”며 심한 구타를 당한 기억, 서울에서 취업을 하고서도 번번이 “전라도 출신 때문”이라는 수군거림 끝 승진에서 미끄러져 고향으로 내려온 일 등을 절절히 담았다.

해당 기사는 또 하나의 사례자인 기자의 경험을 십분 살려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활용해 작성됐다. 광주 출신의 지역지 기자로서 호남 혐오라는 이슈에 기자는 단순 관찰자일 수 없고, 그 바람에 기사는 생동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후 시리즈는 전라도 토박이지만 '일베 12년차'인 일베 유저를 인터뷰하고, 광주 지역 대학들과 함께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 10만 여개를 수집해 전라도 혐오 표현의 발생 빈도와 유형을 심층 분석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베 유저 인터뷰는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단순한 요구를 넘어선다. 혐오를 양산하는 가해자의 얘기를 듣기에 앞서 피해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며, 시리즈 전체가 '전라도 혐오'를 충실히 해부해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목적성을 띠기 때문이다. 일베에 동조하게 된 시점, 일베를 계속 이용하는 이유와 더불어 결국 자신과 가족을 향하는 전라도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질문 문항 또한 가해자의 서사를 들여다보기에 다층적이다.

서울에서는 청소년 언론 토끼풀이 가장 의미 있는 기사를 썼다. 지난 23일자 기사 <[단독] 배재고 학생 “2시간짜리 민주시민교육, 다 잤다”>는 배재고 재학생의 증언을 통해 지역혐오 응원 이후 실시된 배재고의 민주시민교육에서 서른 명 넘는 학급 학생들 대부분이 잠을 잤다고 전했다. 강연을 맡은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자도 상관 없는데 들을 사람은 확실히 들으라”고 했다는 얘기도 함께였다. 기성 언론 가운데 배재고 내부 분위기를 이토록 투명하게 담은 보도는 없었다. 혐오가 횡행하는 교실에 대한 위험성을 논하는 기사는 많아도 교실 안 분위기에 대해서는 교사나 교원단체 등을 통해 전하거나, 학생을 직접 취재했더라도 직접적인 '속내'에 가까운 멘트는 부재한 경우가 많았다. 토끼풀의 단독 기사에는 청소년 기자들이 또래 취재에 갖는 강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당사자성에 기반한 기사가 그렇듯 학생들을 타자화하지 않았다.

대혐오의 시대에 혐오에 선을 긋는 일은 틀림없는 언론의 의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규명하려는 시도가 먼저다. 혐오를 자행하는 이들에 관한 타자화나 악마화는 가장 쉽고 빠르며 게으른 진단이다. 이 관성적 게으름을 넘어서는 일을 <무등일보>와 <토끼풀>의 보도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