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가 쓰고 일본 톱배우 총출동…'형제복지원' 닮은 잔혹극 '가스인간'

강유빈 2026. 8. 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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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의 이유]
연상호 총괄·각본, 가타야마 신조 연출한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시리즈 '가스인간'
편집자주
매주 뭐 볼까 고민하다 지친 당신에게 한국일보 대중문화팀 기자가 정주행을 부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JNT 방송국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 고노 교코(아오이 유우) 기자가 대학교수를 인터뷰하던 중 정체불명의 증기가 스튜디오에 침투한다. 공격적으로 일렁이던 하얀 연기는 교수의 호흡기로 들어가 몸을 풍선처럼 부풀린다. 공중에 떠서 허우적거리던 교수는 경련 끝에 펑 터져버린다. 의문의 가스 살해 사건과 붉은 피를 뒤집어쓴 고노의 모습이 생중계로 전파를 타면서 일본 전역은 충격에 빠진다. 얼마 뒤 한 젊은 남성이 스스로 테러 주범이라 밝히며 다음 살인을 예고하는데…

지난달 공개된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은 영화 ‘부산행’ ‘군체’, 드라마 ‘지옥’ 등으로 독창적 세계관을 펼쳐온 연상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와 각본을 맡은 초대형 한일 합작 프로젝트다. 일본 최대 영화사 도호(TOHO)가 자사의 여러 작품을 리부트 후보로 제안했고, 연 감독은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전 특수촬영물 ‘가스인간 제1호’(1960)를 택했다. 평소 서브컬처 영화를 좋아해 도호의 1950, 60년대 특촬물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현대적으로 다시 풀어보고 싶었다는 게 연 감독의 설명이다.

‘가스인간’은 공개 직후 일본 넷플릭스 1위로 직행하고, 글로벌에서도 비영어 시리즈 부문 4위까지 올랐다. 독특한 질감의 일본 공상과학(SF) 스릴러에 연 감독 특유의 사회 비판과 군상극 요소가 덧입혀져 익숙하면서 신선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최고의 배우와 스태프가 총출동한 전례 없는 조합도 입소문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스터리 수사극에서 정치 스릴러로

넷플릭스 '가스인간'에서 아침 생방송 인터뷰 중이던 대학교수가 가스인간에게 살해당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당초 영화로 제작하려다 8부작 시리즈로 방향을 튼 이 드라마는 원작과 내용도 인물도 다르다. 가스인간이라는 이름 그대로 신체가 가스화하는 설정, 계획을 공개하는 ‘극장형 살인’ 범죄 스타일, 사랑을 위해 극단적 행동도 마다 않는 비뚤어진 순수함 정도가 뼈대로 남았을 뿐이다.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가 각각의 시점을 쌓아 나가며 하나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군상극 구성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연 감독은 일본 매체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아침방송 사건으로 포문을 연 극은 오카모토 겐지(오구리 슌)와 그의 옛 연인 고노가 각각 형사와 기자의 입장에서 가스인간(우치다 우타)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초반부는 칼과 총탄으로도 멈출 수 없는 가스인간의 기묘한 범죄 행각이 수사극처럼 그려진다. 전 국민적 관심 속 푸른 빛의 정장을 입고 언론 인터뷰를 자청한 가스인간은 ‘화이트센터’ 연루자들의 과거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경고하는데, 속이 텅 빈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이후 화이트센터의 진실과 가스인간의 비극적 과거 서사가 드러나면서 극은 점차 사회 고발적 정치 스릴러로 변모한다. 화이트센터가 사회복지시설의 외피를 쓰고 무연고자와 아이들을 ‘인간 연료’로 착취했던 것. 이곳에서 권력층이 은폐한 운석 사고 정화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유해 물질에 노출돼 끔찍하게 죽어갔다. 국내 시청자 사이에선 ‘사회 정화’를 내세운 국가 폭력, 권력의 편과 약자로 나뉘는 인물들의 모습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마더 조감독 출신' 감독의 유머 한 스푼

2024년 연상호(왼쪽) 감독과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일본 도쿄의 도호 스튜디오에서 '가스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연출을 맡은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특유의 유머를 더해 독특한 호흡과 색깔을 만들었다. 호러 유튜브 채널 운영자 남매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4회가 단적인 예다. ‘지하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보다 가스인간의 단서를 얻는다’는 대본상 간단한 언급을 토대로 ‘드림 서큐버스’라는 가상 그룹을 만들고, B급 감성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엔딩에 풀 버전으로 틀어버린 건 전적으로 가타야마 감독의 작품이다. 도쿄역 앞에서 가스인간이 야쿠자가 탄 차를 날려버릴 때 근처에서 평온하게 요가 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한 컷 비추거나, 경찰서에서 심각하게 움직이는 형사들 뒤로 썸 타는 직원 둘의 모습을 넣는 등 재치 있는 완급 조절도 돋보인다.

영화 ‘실종’(2021),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간니발’(2022, 2025)로 이름을 알린 가타야마 감독은 한국과 인연이 깊은 영화인 중 한 명이다. 봉준호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의 연출부로 참여한 뒤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마더’(2009) 조감독을 맡았던 이력으로 특히 유명하다. 가스인간에게 추격당하는 야쿠자 보스가 차 안에서 “이거 방탄유리야!”라고 외치는, 영화 ‘아저씨’스러운 대사도 의외로 연 감독이 아닌 가타야마 감독이 추가했다고 한다. 드라이아이스로 구현한 60년대 가스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리얼한 시각특수효과(VFX)는 '고질라 마이너스원'으로 아카데미 시각특수효과상을 수상한 프로덕션 시로구미가 맡았다.


교차하는 비극적 사랑의 여운

넷플릭스 '가스인간'에서 방송기자 고노 교코를 연기한 아오이 유우. 넷플릭스 제공

‘가스인간’에는 일본 최정상급 배우가 대거 출연하는데, 고노 역으로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아오이 유우의 연기가 특히 발군이다. 가스인간과 그의 전사까지 사실상 1인 2역을 소화한 우치다 우타(UTA) 역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일본 국민 배우 고(故) 기키 기린의 외손자인 우치다는 그간 해외를 오가며 모델 생활을 했지만, 기존 작품의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은 신선한 얼굴을 찾던 가타야마 감독에게 발탁돼 성공적인 배우 데뷔를 이뤄냈다. 멜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유명한 미남배우 다케노우치 유타카의 파격적인 분장과 악랄한 야쿠자 연기도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 4회에 등장하는 유튜버 후지타와 가호 남매. 넷플릭스 제공

‘누가 괴물인가’를 묻는 메시지보다 오래 남는 건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의 여운이다. 원작 영화가 가스인간이 된 청년과 무용수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렸다면, 드라마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사랑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수사 정보 유출을 계기로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끌리는 고노와 오카모토의 사랑, 궁핍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유튜버 남매의 가족애, 그리고 외로웠던 어린 소녀를 지켜준 아저씨의 부성애가 각 인물을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결정적인 순간 흘러나오는 밴드 ‘사잔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명곡 ‘이토시노 엘리(Ellie My Love)’는 작품의 서사에 정서적 깊이를 더한다. 중반 이후 느려지는 전개와 장르 변환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 노래만큼은 대부분 시청자의 플레이리스트를 한동안 차지할 만하다.

가스인간
장르: SF, 스릴러
감독: 가타야마 신조
각본: 연상호, 류용재
출연: 아오이 유우, 오구리 슌, 우치다 우타 등
구성: 8부작
로튼토마토 평론가 지수: 91%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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