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말리아-이집트 붕괴… 평민에겐 축복이었다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 분산… 대중의 삶 더 나아지는 결과
◇골리앗의 저주/루크 켐프 지음·박수철 옮김/744쪽·4만2000원·까치

그러나 붕괴가 언제나 비극이었을까. 역사학자인 저자는 “소말리아가 붕괴해 사라진 것은 소말리아 국민에겐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붕괴 후 10년이 지난 뒤 소말리아의 거의 모든 지표가 바레 정권 치하에 비해 개선됐다. 영아 사망률은 24% 감소했고, 극빈 상태는 20% 낮아졌다. 언론 검열이나 해외여행 제한처럼 수치화하기 어려운 생활의 여러 여건도 현격히 나아졌다.
이 책은 ‘문명과 발전’이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설명하던 역사관을 과감히 뒤집고, ‘붕괴’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기존의 역사는 궁전이나 상류층의 무덤 등 ‘승자들의 기록’에 의존했다며 “1%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그런 뒤 하위 99%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국가나 문명의 ‘붕괴’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복원한다.
역사적으로 국가 붕괴가 오히려 다수의 시민에게 순이익이 된 사례는 소말리아 외에도 여럿 있다. 기원전 2181년경 멸망한 이집트 고왕국이 그렇다. 멸망 후 이집트의 정부 권한은 지방으로 분산됐다.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부장품과 기념물이 상류층이 아닌 이들의 무덤에도 쓰였다. 귀족들은 더 가난해진 반면 평민들은 더 부유해졌다. 이는 당시 문학작품이었던 ‘이푸웨르의 훈계’에서도 드러난다.
“벽에 기대서라도 잠을 청할 수 없던 사람이 이제 침대를 가진 자가 되었다. 하인은 자유롭게 말했다. 귀족은 한탄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기뻐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배경에는 국가(제국)의 권력 구조가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약탈적 위계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 국가의 멸망이 오히려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대중의 삶을 개선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붕괴’가 오히려 문화와 공동체의 회복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붕괴한 국가의 사람들과 문화는 그 이후에도 대부분 존속한다. 로마가 멸망했음에도 로마의 언어, 관습, 문화는 새로운 게르만 통치자들을 통해 살아남았고, 오늘날에도 로마의 언어 라틴어가 쓰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강력한 무기는 소수의 사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5000년에 걸쳐 존재했던 300여 개국의 사례를 통해 역사적 기록이 전하는 교훈을 도출해 낸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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