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통을 영감으로… 천재들 뇌의 ‘회복탄력성’
프리다 칼로도 트라우마 겪어
신체적-정신적 한계 회피 않고, 창작을 통해 개인의 고통 극복
◇뇌가 만든 천재들/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성소희 옮김/304쪽·2만2000원·흐름출판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치료할 수 없던 질병인 뇌전증을 앓았다. 심지어 그 아들은 뇌전증 지속증(발작이 30분 이상 지속되거나, 의식 회복 없이 반복되는 상태)으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여섯 명이 뇌전증을 앓는 것으로 묘사됐다.
뇌전증은 뇌 전기 신호의 이상으로 발작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편지에서 발작 증상에 대해 “몇 순간 동안 평상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복을 경험하고, 세상과 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경험한다. 이때 나는 세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경험한다”고 털어놓았다. 저자는 행복감과 자기 인식 향상이 전조 증상인 ‘황홀경 뇌전증’을 그가 앓았을 것으로 추측했다.
20세기 영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츠, 앤 섹스턴의 사례도 소개된다. 세 사람은 좌절과 상실, 가족과의 갈등, 여성으로서의 억압과 단절을 겪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염증을 유발했고, 이것이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를 어렵도록 만들었으며, 결국 자기 파괴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됐다고 저자는 봤다.
이 밖에도 책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교통사고나 여러 질병으로 고통과 트라우마를 겪었음에도 이를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을 ‘회복탄력성’으로 설명한다. 또 1930년대 무의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초현실주의 예술이 탄생하게 된 과정, 음악가인 프란츠 리스트와 미술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가졌던 공감각적 능력을 조명한다.
멕시코 출신인 저자는 의학과 신경과학을 공부한 의사이자, 대중을 상대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조현병, 자폐 스펙트럼, 양극성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예술가들의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하는 데 집중한다.
다만 예술가들이 ‘그러한 질병을 앓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질환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흔한 현상이며, 양극성 장애나 우울 장애 등은 인구의 최대 10%, 세계적으로 보면 수억 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저자는 짚는다. 불안 장애, 인격 장애, 자폐 스펙트럼, 조현병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사람 대다수는 정신적인 질환을 앓지 않는다.
책은 도스토옙스키나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현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 한계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한다. 그런 한계를 창작을 통해 극복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가 남긴 글은 인상적이다.
“광기는 비정상이 아닌 인간 조건의 양상이다. 자기 광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보통 사람이다. 자기 광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 광인이다. 자기 광기를 인식하면서 그것을 나타낸다면 천재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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