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막고 사람 품었네…세월이 만든 녹색지대

2026. 8. 1. 01: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위 피해 걷는 네 곳의 숲
약 2㎞에 이르는 관방제림은 여름이면 시원한 녹색 터널을 이룬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햇살이 뜨겁다. 숲의 초록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옛사람들은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숲을 일궜다. 마을 어귀에도, 개울가에도, 강둑과 백사장과 바닷가에도 나무를 심어 키웠다. 마을 풍수의 허한 자리를 메우고, 물과 모래바람을 막으며, 보금자리를 지키려고 심은 그 숲은 긴 세월 지나며 문화 자산으로 남았다.
#고창 하고리 삼태마을숲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창 하고리 삼태마을숲. [사진 국가유산청]
지난해 전북 고창 하고리 삼태마을이라는 아늑한 마을 앞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개울을 따라 늘어선 숲이다. 왕버들이 줄지어 선 사이에 소나무·느티나무·팽나무·벚나무 등 12종류 90여 그루의 나무가 어울려 큰 숲을 이뤘다. 대략 200년에서 300년쯤 된 나무들이다.

큰 나무의 나무높이가 8m 정도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대개의 왕버들이 그렇듯이 나무줄기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풍진은 신비로울 만큼 오묘하다. 개울을 따라 걸으며 한 그루 한 그루 짚어보는 재미가 크다. 어떤 왕버들은 줄기를 아예 수평으로 뻗으며 개울 건너편으로 나뭇가지를 펼쳐 냈고, 꿈틀거리는 줄기를 수직으로 곧추세우며 하늘 위로 솟아오른 나무도 있다.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뭇가지를 펼치며 개울 숲 그늘의 운치를 더해준다.

예로부터 개울가에는 왕버들을 많이 심어 키웠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홍수가 닥칠 때 개울 둑을 지켜주는 나무여서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고마운 나무이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이 마을에는 남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이 마을의 지형은 한 척의 배 모양이라고 한다. 이 배를 단단히 매어두지 않으면 큰비가 내릴 때 마을이 떠내려갈 수 있어서, 단단히 묶어둘 말뚝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마을 말뚝’ 구실을 위해 나무를 심고 지켜온 것이 이 숲이다. 2014년 산림청이 주관하는 ‘제1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담양 관방제림
개울이 흘러 강을 이루면 그 곁 숲의 청량감은 배가 되고, 더위는 단박에 물러간다. 기온을 낮추는 나무 그늘에 더해 강바람에 든 찬 기운은 체감 온도를 한 번 더 떨어뜨린다. 에어컨 바람과는 결이 다른 원초적 서늘함이다.

전남 담양의 관방제림이 그렇다. 이 숲은 숲 바깥의 뙤약볕에서 땀을 줄줄 흘리다가도 숲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신비롭다. 약 2㎞에 이르는 관방제림은 푸조나무 1백 여 그루를 중심으로 팽나무·벚나무·음나무·개서어나무·갈참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오래된 나무가 숲을 이뤘다.

숲을 처음 조성한 건 1648년 담양부사로 부임한 성이성(1595~1664)이었다. 그는 조선 중기에 암행어사로도 활동했던 청백리이며, ‘춘향전’의 주인공인 이몽룡의 실제 모델로 밝혀진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사재를 털어 관방제림을 조성할 정도로 백성의 살림살이에 최선을 다한 어진 관리였다는 점도 담양 사람들이 오래 기억하는 이야기다. 그는 홍수 때마다 담양천이 범람해 농토를 휩쓸고 인명을 앗아가던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둑을 쌓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를 심어 둑을 견고하게 보강했다. 말 그대로 ‘치산치수’라는 행정의 지혜로 이룬 숲이다.

#하동 송림
축구장 10개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는 하동 송림. [사진 고규홍]
강물은 하구에 이르면 더 넓어지면서 모래사장을 이룬다. 그 곁으로는 모래바람이 불어온다. 바라보는 풍경이 멋스러운 것과 달리 사람살이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 모래 강변에 조성된 큰 숲이 있다. 경남의 하동 송림이다.

담양에 성이성이 있었던 것처럼, 하동에는 전천상(1705~1751)이 있었다. 섬진강변 백사장의 고운 모래가 강바람에 섞여서 날아오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1745년 하동에 부임한 전천상이 처음 숲을 조성했다.

그때 전천상이 심어 키운 소나무는 1500그루나 됐다고 한다. 그로부터 280년이 흐르는 동안 1500그루의 절반에 가까운 900여 그루가 살아있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한 소나무 숲이다. 숲 안에는 옛날에 활 쏘는 연습을 하는 자리도 있었는데, 그 흔적으로 남은 게 ‘하상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다.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갈한 숲이다. 숲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의 길이가 무려 2㎞나 되고, 면적으로 따지면 7만2200㎡에 이른다. 축구장 10개 정도의 규모다. 백사장과 강물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빛이 솔숲 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해질녘 풍경은 장관이다.

담양관방제림이나 하동송림은 모두 백성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려는 어질고 슬기로운 관리들이 이룬 치산치수의 결과다. 세월이 지나며 홍수와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실용적 기능의 절박함은 옅어졌지만, 영원히 지켜야 할 최고의 문화자산이다.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마을 어부들이 생계를 위해 겨울철에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바닷물을 따뜻하게 할 방도를 찾아 일군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 [사진 국가유산청]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 아름다운 숲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바닷가 숲이 있다.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이다. 이 숲은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뤄내고 대를 이어 지켜왔다. 이 아름다운 숲에는 갯마을 어부들의 간절함이 절절히 배어 있다.

바닷가를 따라 30m 폭으로 약 1.5㎞ 길이에 펼쳐진 이 숲은 300년 전에 처음 조성했다. 천연의 숲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팽나무·푸조나무·참느릅나무를 비롯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나무가 자연스레 어울려 자랐다. 나무들이 이룬 우듬지는 10~15m 수준에서 거의 비슷하게 숲 전체로 이어진다. 나무 종류가 다양해서 찾아갈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도 이 숲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다. 나무들이 제가끔 꽃 피고 단풍 드는 시기가 서로 달라 언제 찾아가도 새로운 느낌을 준다.

‘방조어부림(防潮魚付林)’이라는 이름도 특별하다. 그저 ‘방풍림’처럼 보이는 이 숲도 바닷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 먼바다에 나갈 큰 배를 만들 여력이 없던 그 시절에 날씨가 추워지면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마을 어부들은 바닷물을 따뜻하게 할 방도를 찾던 끝에 바닷가에 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기로 했다. 그래서 일군 숲이다. 숲의 이름을 ‘방조어부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원시 어업의 지혜가 담긴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마을 앞 개울, 크고 작은 강, 바다에 이르기까지, 그 곁에 숲을 일군 옛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무엇보다 사람살이를 더 평안하게 지키기 위한 절박함이었다. 시작이 무엇이었든 그들이 후손에게 남긴 것은 이 여름의 폭염을 피할 지상 최고의 그늘이다. 왕버들 아래 개울에 발을 담그고, 강변 그늘을 걷고, 백사장에서 뒹굴다 솔숲에서 쉬고, 몽돌 해변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옛사람들의 지혜를 돌아보는 여름이라면 이 폭염의 기세도 마음으로나마 이겨낼 수 있지 싶다.

숲은 한 세대가 누리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건네는 큰 배려다. 오래된 숲을 찾아간다면 그늘의 서늘함만 느끼고 돌아올 일은 아니다. 나무 아래 잠시 서서 누가 무엇을 지키려고 이 숲을 심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얻는 서늘함은 오래전 누군가가 미래를 향해 심어 둔 그늘이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나무 칼럼니스트이자 나무 인문학자다. 그가 발굴하고 세상에 알린 의령 백곡리 감나무, 정선 봉양리 뽕나무 등 여러 노거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다. 『이 땅의 큰 나무』 『도시의 나무 산책기』 『고규홍의 나무』 등을 썼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