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 예술의 길, 한자로 통했다

서정민 2026. 8. 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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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왼쪽), 김창열
한국 현대미술의 두 거장 이응노(1904~1989)와 김창열(1929~2021)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9월 27일까지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응노·김창열’전이 그 무대다. 이응노미술관(관장 이갑재)과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관장 양은희)이 지난해 11월 MOU를 맺고 공동기획으로 준비한 첫 번째 전시다.

두 기관이 주목한 주제는 ‘문자’다. 올해는 한·불 수교 140주년이 되는 해다. 각각 1958년과 1969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정착했던 두 거장은 ‘재불 작가’라는 점 외에도 한자를 주요 조형 언어로 삼아 각자의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응노의 ‘문자추상’과 ‘군상’ 연작, 김창열은 ‘회귀’ 연작의 출발점이다.

이번 ‘이응노·김창열’전은 두 기관이 소장한 주요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문자를 ‘읽는 언어’에서 ‘보는 예술’로 전환시킨 두 거장의 닮은 듯 다른 작품 세계를 비교해 보는 자리로 기획 됐다.

이응노 미술관의 김지원 학예연구사는 “문자를 회화적으로 활용한 두 화가의 조형적 실험은 ‘한자’를 통해 동양적 사유와 서예적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이응노는 역동성을, 김창열은 정적인 밀도를 추구함으로써 서로 다른 예술을 완성했다”며 “이응노는 한자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획의 운동성을 생명력 넘치는 군상으로 확장했고, 김창열은 천자문과 물방울 모티브의 반복을 통해 정적인 화면 질서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 모두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익혔기에 한자가 익숙하다. 때문에 유럽에서 활동했던 두 사람이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친숙한 한자를 사용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멀리서 보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이, 가까이 가면 해체된 한자의 획들이 노니는 모습이 보인다. 이응노의 ‘군상’(1986). [사진 이응노미술관]
미술사가 김이순은 “이응노의 관심은 한자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문자가 의미를 형성하기 이전의 선과 획, 구조와 리듬이 어떻게 회화가 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며 “따라서 그의 문자 회화는 한자의 의미를 읽게 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한자가 지닌 생성의 원리를 현대 회화 속에서 새롭게 조직하는 작업이었다”고 소개했다. ‘군상’ 연작을 비롯해 이응노의 작품에선 문자인 듯 아닌 듯, 선과 획이 사람처럼 자유롭게 춤추고 서로를 얼싸 안으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간다.
한자를 확대, 굴절시킴으로써 물방울은 더 확고한 존재감을 얻는다. 김창열, ‘회귀’(1992). [사진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반면 김창열에게 한자는 반복과 축적을 통한 수행의 방법이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김창열은 본격적으로 화면에 문자를 도입한다. 그는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는 과정에서 문자와 이미지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주목했고, 이후 천자문을 도입한 ‘회귀’ 원작으로 이어졌다. 미술평론가 심은록의 『‘공’에서 ‘무’로, ‘무’에서 ‘회귀’로』에 따르면 김창열은 물방울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렸고, 글자가 물방울의 투명성을 더욱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문·한글·숫자 등 다양한 문자를 실험한 끝에 “한자 위에 놓았을 때 물방울이 가장 편안해 보였다”고 회고했다.

김이순은 “화면 위에 놓인 물방울은 한자를 단순히 덮는 것이 아니라 일부를 확대하고 굴절시키며, 관람자의 읽기를 순간적으로 멈추게 만든다”며 “문자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에 머물지 않고, 보는 행위를 유도하는 시각적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물방울은 문자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언어성과 조형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했다.

이응노·김창열 두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함께 배치된 3개의 전시 공간을 둘러보면 앞에서 말한 이응노와 김창열의 서로 다른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 쉽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가 모두 종이와 캔버스를 넘어 신문지·지도·목판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새로운 텍스트의 조형성을 다각도로 실험했다는 점이다.

금속 활자로 프린트된 반듯 반듯한 알파벳 위에서 한자가 선과 획으로 해체되어 노닐고, 물방울 아래 고요히 응축된 모습을 보니 각각의 언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의미는 몰라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힘이 넘친다. 회화인지 서예인지 장르를 떠나 두 거장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대전=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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