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여성 출산율, 中企 여성의 4배… ‘특권’ 된 출산

황지윤 기자 2026. 8. 1. 00: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거·사교육 능력이 ‘정상’ 부모 기준
육아휴직 사용률도 대기업에 집중
저소득층은 출산 연기하거나 포기
“구조적 우생학, 사회 다양성 해쳐”

저출생 우생학 사회

이주희 지음|은행나무|392쪽|2만2000원

국가가 저출생을 극복하겠다며 지난 20년간 쏟아부은 예산은 700조원에 달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6년부터 4차례 수립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 계획에 투입된 재정은 총 69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자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80명을 기록해 2023년 기록된 역대 최저치(0.72명)에 비해 약간 반등했으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1.0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초저출생국인 한국의 현실이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 “누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걸까?” 책은 이런 물음을 던지며, 합계출산율 이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추적한다. 저자인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저출생의 핵심은 합계출산율이라는 단일한 평균값에 있지 않다”며 “출산 가능성이 인구 집단별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고, 그 분포가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더 불평등해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꾸준히 ‘부모 자격’의 문턱을 높여 ‘정상’ 부모를 선별해왔다”고 지적하며, 이런 사회 구조를 일컬어 ‘구조적 우생학’이라 칭한다. 인종 선별·강제 불임 등은 없지만, 출산이 선별된 소수의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출생은 구조적 우생학이 축적된 결과”라고 말한다. 도발적인 표현이지만, 책을 따라가다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언뜻 출산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조건을 충족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다. 저자는 “한국에서 인정받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좋은 주거 환경, 사교육 지원, 문화 경험 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서 제공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로 정착됐다”고 쓴다. 이에 따라 부부가 경제적 여력·고용 안정성·적절한 주거 환경·양육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 등을 갖췄을 때에야 비로소 출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 그 결과, 저소득층은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책에 인용된 여러 통계로 확인 가능하다. 2005~2017년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살핀 연구(문영만)에 따르면, 상용직(계약 기간이 1년 이상) 여성의 출산율은 임시·일용직 여성보다 무려 4배 높았다. 대기업 종사 여성 노동자의 출산율도 중소기업 종사 여성 노동자보다 4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육아휴직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2024년 기준, 전체 노동자의 15% 안팎만을 고용하고 있는 300인 이상 대기업에 아버지 육아휴직 사용자의 67.9%, 어머니 육아휴직 사용자의 57.7%가 집중돼 있다는 통계도 시사점을 준다.

저자는 정부의 현금 지원 정책에도 비판적이다. 적지 않은 이가 ‘구조적 우생학’에 의해 탈락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가 개별 가정에 수당만 지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차라리 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양질의 보편적 보육 서비스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고, 한부모나 취약 계층 아동에 대해 특별 지원을 추가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혼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청약 제도 등 혼인을 전제로 모든 가족 정책이 만들어진 것도 문제다. 변화하는,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혼인 중심의 가족제도를 완화하고,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처럼 생활동반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동 정책으로의 전환도 요구된다.

누군가는 ‘구조적 우생학’이라는 개념에 반기를 들며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더 잘 적응하고, 더 우수한 사람들만 태어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우수함’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다”라며 “구조적 우생학이 만들어내는 것은 더 나은 인간이 아니라, 더 좁은 기준에 맞추어 선별된 인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생태계의 작동 방식에 빗대 “유사한 교육, 자원, 가치관을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만 인구가 재생산될 경우, 사회는 인지적·경험적 다양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마치 생태계에서 단일 종이 외부 충격에 취약한 것처럼, 사회적 다양성이 사회의 유지에 꼭 필요한 조건임을 강조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