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 보니, 우리가 됐다” 러닝으로 제주에 새긴 즐거움
제주의소리가 연중기획 제주영감(제주young感)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제주의 창작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이 쌓아낸 꾸준한 노력과 그 안에서 발견한 참신한 지혜를 주목합니다. 이것이 '제주다움'과 '로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처음엔 달리기를 좋아하는 친구 다섯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상상력을 더하다 보니 달리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다. 여럿이 모여 러닝에 소풍을 더하기도 했고, 아침 구보를 하고 모닝 커피를 마시는 이벤트, 밤 시간대 음식과 대화가 곁들여진 비경쟁 트레일러닝, 선수를 초청한 러닝 세션과 토크도 열었다.
자연스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러닝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조금씩 그들의 활동은 그들만의 취미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사라봉 일대에서 친환경 트레일러닝 '무해런'을 개최했고, 밀려들어온 해양쓰레기를 치우는 '뛰멍 치우멍', 한 달 동안 한라산을 달리고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한라산타'는 점점 진화해 제주시 연동 거리 일대로 확산됐다.

달리기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다
구보의 대표 이규호(37)씨는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러닝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지막 여객선이 떠나면 고요해지는 비양도에서 총 48조가 30분마다 출발해 24시간 동안 이어달리는 릴레이 런 프로젝트와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캠프를 진행해 러너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치경찰단과 협업해 제주시 원도심 일대를 함께 달리면서 치안활동을 돕기도 했고, 4.3을 맞아 4.3km를 달리면서 SNS에서 확산을 위한 이벤트를 하고, 광복절에는 태극기 타투를 하고 같이 모여서 8.15km를 달리는 러닝을 이어가고 있다. 연탄봉사를 하고, 티셔츠를 모아 동티모르에 보내는 캠페인도 진행했다.
제주의 관광 분야 공기업과 단체, 제주의 스타트업과 로컬 브랜드, 패션브랜드들과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의미가 컸다.
이런 시도 한 가운데는 지역에서 의미와 재미를 함께 찾으려는 마음이 있다. 구보의 대표인 이규호씨는 그들의 시작은 함께 재미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구보를 만들었을 때 '제주도에서는 할 거 없으니까 우리는 육지로 올라간다' 이런 표현을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 가면 새로운 직업도 있고 재미있는 요소도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주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더 똘똘 뭉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떠나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재미있는 것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경계 허무는 커뮤니티
5명으로 시작한 구보는 이제 5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선주민과 이주민, 여행객이 공존하고, 10대부터 70대까지, 1인가구부터 다둥이 가족까지 함께한다. 달리기와 봉사활동, 여러 이벤트들을 거치면서 이들은 서로의 동료가 되었다.
"제가 육지에서 왔고 이 곳이 원래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엔 조금 외로웠는데, 러닝을 하다보니까 이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요. 육지에서 오신 분들과 제주에서 계속 사시던 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그게 참 보람차요. 처음에는 외로웠는데, 제주 친구들을 사귀고, 육지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고 하면서 화합되면서 재미있게 보내는 것 같아요."
사실, 이규호 구보 대표는 실력이 손꼽히는 트레일러너다. 전국 트레일 레이스 20km, 50km 등 다양한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고,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동시에 엄격한 참가자격을 요구하는 UTMB(Ultra-Trail du Mont-Blanc)에도 참여해 알프 산맥을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홀로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아닌 함께 달리는 것을 우선순위로 뒀다. 구보라는 이름 자체가 군대에서 지구력과 정신력을 위한 훈련 방식으로 속도보다는 지속성, 연결, 공동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제 그와 동료들은 다음 단계로 가족들이 함께 러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어린 아이와 부모가 함께 제주의 자연과 매력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꿈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달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제주 곳곳의 매력을 탐색한다.
"주변 형들이 아이들 때문에 주말에 무얼할까 고민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주에서 다양한 활동에 대해 아쉬웠던 부분을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주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달리기 대회를 만들고 싶어요. 여기에 어린이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키즈 레이스를 넣고 싶거든요. 가족 단위로 와서 행사를 같이 즐기고 함께 할 수 있는 달리기를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