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회사원도 '엄지 척'… 아프리카 최초 모노레일 타보니 [살람! 중동·아프리카]
6월 운영 시작한 카이로 동나일 노선 타보니
22개 역에 한 시간 걸려… 교통체증에서 해방
일회성 이용객 다수, 출퇴근용으론 부담
요금 반값 할인 혜택에도 갈 길 먼 대중화
편집자주
'살람(Salam)'은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인사말입니다. 김소희 카이로 특파원이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과 갈등은 물론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도시·산업의 변화도 함께 전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이집트 카이로를 거점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이 지역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 담아봅니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나스르시티에 있는 스타디움역. 모노레일 열차가 미끄러지듯 승강장에 들어서자 승객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연신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들의 얼굴엔 설렘이 가득했다.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쇼핑몰에 간다는 엔지니어 누란(24)은 "평소엔 버스를 타는데 오늘은 특별히 모노레일을 처음으로 타봤다"며 미소를 지었다. 좌석에서 일어나 창문에 코를 바짝 붙인 어린이들은 열차가 움직이자 옅은 환호성을 내뱉기도 했다.
'아프리카 최초'를 자랑하는 카이로 모노레일 동나일(East of Nile) 노선의 풍경이다. 3월 개통식을 거쳐 6월 22개 역 모든 구간이 일반에 전면 개방됐다. 카이로 옛 도심과 맞닿은 나스르시티에서 신행정수도까지 총 56㎞를 잇는 노선으로, 첫 출발지인 스타디움역에서 종점인 저스티스 시티역까지 약 1시간 15분이 소요된다.
최첨단 교통수단에 자부심

운영한 지 한 달이 지난 이 '신상 교통수단'에 올라타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휑한 운전석이었다. 기관차가 없는 무인 전동차로, 신호에 맞춰 달리는 열차 내부에는 4량의 객차마다 한 명씩 배치된 안전요원이 전부였다. 모노레일은 지상 5층 높이의 고가 선로 위를 시원하게 내달렸다. 발아래 복잡하게 뒤엉킨 미니버스(카이로 시민들이 일반 버스 대신 이용하는 저렴한 승합차형 교통수단)와 자가용이 내려다보였다. 카이로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압둘팟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주도하는 국가 현대화 사업의 일환이다. 개통식 당시 엘시시 대통령은 "카이로 모노레일은 이집트가 추진하는 '신공화국' 건설의 핵심 축이자 대중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꿀 친환경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10월 6일 시'와 피라미드가 위치한 기자를 연결하는 서나일 노선(42km)까지 완공되면 전체 길이가 약 100㎞에 달하는 세계 최장 모노레일 네트워크가 구축된다.

최첨단 인프라를 접한 시민들은 자부심도 상당했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탑승을 인증하는 이집트 MZ세대의 영상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회사원 모스타파(35)는 "이집트가 갈수록 편리해진다"며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이집트의 메트로(지하철)에서는 구간마다 휴대폰 데이터 신호가 끊기기 일쑤인데, 모노레일에선 그럴 걱정이 없었다. 메트로와 달리 승강장마다 스크린 도어도 설치됐다.
정차역을 지날 때마다 창밖 풍경은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바뀌었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부 좌석은 객차를 가로길러 배치돼 있었다. 카이로 도심의 빛바랜 건물들을 벗어나면 깔끔하게 구획된 신도시 '뉴카이로'로 연결된다. 신행정수도에 들어서니 이집트 최대 규모인 알 파타 알 알림 모스크와 아프리카 최고층(394m) 아이코닉 타워 등 현대식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에는 마천루가 웅장하게 서 있는 한편, 반대편에는 흙먼지 날리는 미완의 도시가 공존하는 묘한 광경이였다.

썰렁한 객차… 서민 발목 잡는 가격
하지만 열차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 썰렁한 기운이 감돈다. 야심 찬 프로젝트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용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서다. 모노레일은 시간당 최대 4만5,000명, 하루 최대 50만~60만 명을 수송할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평일 오후 기자가 탑승한 객차 안 승객은 단 6명뿐이었다.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출퇴근객보다는 한 번 타보러 온 가족 단위 이용객이나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다. 카이로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 하닌(20)은 "출퇴근 시간에도 붐비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제 타든 항상 앉아서 간다"고 전했다.

이용률이 저조한 가장 큰 원인은 높은 요금 때문이다. 편도 10개 역 기준 40이집트파운드(약 1,200원), 전 구간 이용료는 80이집트파운드(약 2,400원)이다. 구간별로 차이가 있지만 메트로보다 2~4배 비싸다. 이집트 최저임금이 월 8,000이집트파운드 수준임을 감안하면 정기권(전 구간 이용 시 2,400파운드)을 끊더라도 월급의 약 30% 이상을 교통비로만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서민들에게는 넘기 힘든 문턱이다.
이에 이집트 교통부는 이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평일에는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반값 할인이 적용되지만, 주말에는 모든 승객에게 기본 요금 할인을 제공한다. 실제 요금 할인이 적용된 주말 이용객이 평일보다 1.5배 정도 많았다.
주변 인프라 미비도 발목을 잡는다. 일부 역은 건물만 완공됐을 뿐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라 유동인구를 찾기 어려웠다. 승객 역시 출발지와 신행정수도 중심부 등 일부 주요 역에만 몰렸다. 안전요원 아흐마드는 "주로 신행정수도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이용한다"고 했지만, 역에서 주요 청사 건물까지 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 공무원들조차 모노레일에서 내린 뒤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집트 터널청(NAT)이 2019년 착공한 이 대형 프로젝트에는 총사업비 28억 달러(운영·유지보수 포함 약 45억 달러)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프랑스 알스톰(Alstom) 컨소시엄이 사업을 주도했고, 한국의 LS일렉트릭도 철도 전력 공급 시스템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해외 차입금에 의존해 건설하고도 정작 실질적인 수요와 도시 개발 속도가 어긋나는 실정이다. 특정 계층만 이용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국가 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모노레일이 이집트 서민들의 실질적인 대중교통으로 안착하기까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카이로=김소희 특파원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샀다 팔았다 말라"던 최태원, SK하닉 주식 샀다… 급락장 속 48억어치 매수-경제ㅣ한국일보
- "상폐 아닌 자연사시켜야"… ETF 아버지, 단일 레버리지 또 경고했다-경제ㅣ한국일보
- 열 손가락으로 쓰레기봉투 묶었다... 구글 '제미나이 로보틱스 2' 공개-경제ㅣ한국일보
- "14팀 면접, 애 안 낳겠다 약속도" 보유세 개편 앞둔 세입자 '속앓이'-경제ㅣ한국일보
- 딸 장윤정 내세워 수천만 원 사기… 모친 육모씨 구속 기소-사회ㅣ한국일보
- 홍명보 "손흥민·이재성 남아공전 선발 제외, 인터뷰 보이콧 때문 아니다"-사회ㅣ한국일보
- 정몽규, 청문회 참석한 野 의원과 문자 "신경 써 주셔서 감사"-사회ㅣ한국일보
- 배우 전승재, 2년 투병 끝 별세… 향년 47세-문화ㅣ한국일보
- 고지용, 2년 전 아내 허양임과 이혼… "아들 승재 위한 선택"-문화ㅣ한국일보
- 부동산 잔금까지 '탈탈'... 56조 날린 개미들 '국장 탈출 선언'-경제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