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무대에 올라가 건반에 손을 얹는 순간, 불길한 확신 하나가 엄습한다. 오늘 그 악절(樂節)에서 반드시 실수를 저지르리라. 연습실에선 수백 번 매끄럽게 흘러가던 악절이 무대에만 오르면 삐걱거리며 낭떠러지로 치닫는다. 악보를 놓치진 않을까, 손가락이 엉키면 어떡하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수를 기다리느라 정작 흐르고 있는 음악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틀린 음을 고칠 수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할 수도 없다. 그러니 몸이 먼저 반응한다. 팔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져 속이 울렁거린다. 사람들은 적당한 긴장이 연주에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스스로에게 집중하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오히려 자의식이 고개를 든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도리어 나를 막아서는 셈이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떠올리는 순간, 음악의 흐름에서 미끄러진다. 한때 분명히 가지고 있던 것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도 이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쇼팽은 “청중의 숨결은 나를 질식시키고, 호기심 어린 시선은 몸을 마비시킨다”며 대중 공연을 기피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시벨리우스는 끝내 무대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해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가로 돌아섰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은 것은 두려움을 이기려 애쓸수록 공포는 비대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달래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을 내려놓는 데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무대에 오르기 전, ‘최선을 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실력을 증명하거나 공들여 쌓아온 것을 지키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음악이 나를 통과해 스스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무엇이 다가올지 알고 그 앎을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무대에서 할 수 있는 전부일지 모른다.
연주자에게 단 한 번뿐인 무대는 공포의 근원이지만, 청중에겐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란 희소성을 선사한다. 나의 두려움과 누군가의 기대가 같은 시공간 속에서 만나는 것이다. 다음 무대에서도 여전히 같은 공포를 마주하겠지만, 떨림과 몰입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공존이야말로 살아 있는 음악을 일깨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伊 축구 ‘빗장 수비’ 전설 저물었다… 프랑코 바레시 별세
- 정성호 장관 “이제 검사는 수사 못해…부작용 생기면 신속히 보완해야”
- [만물상] 레버리지로 추락한 AI천재
- ‘가성비 워터밤’ 한강 수영장... 음주·흡연·성추행에 몸살
- 중동發 LNG 충격 본격화?… 7월 전력 도매가 kWh당 133.8원 ‘껑충’
- 경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안병윤 예천군수 구속영장 신청
- KBS 새 이사장에 정재권 ‘임시’ 선출…“미임명 이사 7명 조속히 추천돼야”
- 여성단체 “피해자 외면한 형소법 통과 유감”
- 경산 아파트 방화로 화상 입은 50대女 숨져… 희생자 2명으로 늘어
- 대프리카 더위, “대구 제2빙상장에서 쫓아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