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주저앉은 집, 엿가락된 전선…일 폭염에 애태우는 ‘느린 구조’
주민 1만여명 대피소로 뿔뿔이

거대한 굴뚝은 끄트머리가 부러진 채 흉물스러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30일 일본 구마모토현 일본제지 야쓰시로 공장 주변에는 소방차 10여대가 늘어섰고, 경찰과 소방, 자위대 인력들이 거대한 보일러 굴뚝 주변을 분주히 오갔다. 경찰 관계자들은 주민들이나 취재진이 다가오면 “통제선을 넘어오면 안 된다”며 강한 어조로 접근을 차단했다.
지난 28일 일본 구마모토현 7.1 규모 강진 발생 당시 이곳에선 100여m 높이 보일러용 대형 굴뚝 꼭대기 부분이 떨어져 나가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덮쳤다. 직원들 일부가 잔해 더미에 깔려 30일 현재 확인된 희생자만 8명에 이른다. 이날 찾은 공장 정문 쪽에도 단층 건물 하나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주저앉아 지진의 충격을 실감하게 했다.
사고 당일만 해도 잔해 더미에 깔렸던 50대 직원이 극적으로 구조돼 생존자들이 여럿 확인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일본 구마모토신문에 따르면, 사고 당일 선발대로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들이 잔해 더미 사이에서 생존자를 발견했다. 구조대원들이 좁은 틈새로 “괜찮냐”고 말을 건네자, 이 남성은 “힘을 낼 테니 (도와달라)”는 말을 힘겹게 내뱉었다. 구조대는 손과 쇠지렛대로 철근과 콘크리트를 제거하며 현장을 파 내려갔다. 건물이 추가 붕괴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사고 발생 1시간여 만에 이 남성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이후 소방·경찰·자위대 200여명으로 꾸려진 구조대가 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추가 생존자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구마모토 지진 발생 사흘째인 이날 여진은 일단 잠잠해졌지만, 한낮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피해 복구와 구조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최대 진도 7 안팎의 흔들림이 있었던 야쓰시로시, 히카와초, 우키시는 거리 곳곳에서 강진의 짙은 상흔을 찾아볼 수 있었다. 차량을 타고 둘러본 현장은 땅이 파이거나 솟구쳐 올라 통행이 차단된 도로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자동차로 이 지역을 빠져나가려는 주민이나, ‘재해파견’이라는 펼침막을 걸고 구호 작업에 나선 자위대 차량들도 극심한 정체로 어려움을 겪었다.

일부 주택은 더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고 아예 폭삭 무너져 내린 곳들도 많았다. 철로 주변 전신주가 열차 쪽으로 쓰러지거나, 공동묘지 비석들이 강진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거리에 나뒹굴기도 했다. 야쓰시로에서 만난 한 주민은 “구마모토가 지진이 잦은 곳이지만, 이렇게 크게 흔들린 건 10년 만에 처음”이라며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사고 위험에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구마모토 공항에서 만난 일본항공(JAL) 관계자는 “지진 발생 뒤, 다른 지방에서 급히 집으로 돌아오려는 분들과 여름휴가를 떠나려다가 취소하는 이들로 예약 변경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희생자는 늘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현재 지진 관련 사망자 수가 30명이라고 밝혔다. 구마모토현은 같은 날 오후 3시 기준으로 사망자가 34명이라고 발표했는데 집계 시각과 심정지 등의 판단 방식에 따라 일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무라 다카시 구마모토현 지사는 “희생자가 늘어나 너무 안타깝다”며 “인명을 최우선으로 구조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구마모토에선 대피소 410여곳에 주민 1만여명이 대피했다. 정전 2만여가구, 단수 7만여가구 등 일상생활의 불편함도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피해 주민들의 지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날 일본제지 공장과 가까운 야쓰시로시청에 대피소와 함께 마련한 ‘구마모토 지진 피해 시민상담실’의 한 직원은 상담실을 찾은 주민에게 “지진 발생 당시 살고 있던 집에서 피해를 입었으면 누구나 관련 지원금 대상이 된다”며 필요한 서류를 건넸다.
이날도 구마모토 지역엔 50여차례 여진이 이어졌다. 진도 3~4 지진이 네차례 있었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여진은 일단 발생하지 않았다.

구마모토/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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