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사드 자료 가장 좋다”…軍기밀 노린 中 첩보조직원, 징역 5년 확정
방첩사 위장수사 끝에 체포

중국 정보 조직의 지시를 받아 현역 군인에게 접근하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한미연합훈련 등 우리 군사기밀을 빼돌리려 한 중국인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칭모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457만7230원을 추징한 원심을 지난 16일 확정했다.
◇“미군이나 사드 자료 가장 좋다”
칭씨가 가담한 조직은 중국 인민해방군 연합참모부 정보국 소속 첩보 조직인 이른바 ‘켄 제이크(Ken Jake)’였다. 중국 연합참모부는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격이다.
중국 산둥성 출신인 칭씨는 국내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영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중국의 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첩보 활동에 발을 들인 것은 2022년. 대만 유학 중 알게 된 켄 제이크 조직원 A의 지시로 반중·대만 독립 단체의 동향을 보고하고, 정치인을 포섭하기 위해 해당 정치인이 활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켄 제이크 조직이 한국군을 상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해 말이었다. A는 카카오톡 군 관련 오픈채팅방에서 자신을 ‘군사연구원’ ‘싱가포르 국제연구소 연구원’ 등으로 소개하며 현역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2023년 7월, 현역 군인으로 위장한 방첩사 수사관에게 A는 “중국 방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며 “내부 자료라면 3급은 200만원 이상, 2급은 400만원 이상 현금으로 주겠다”고 했다. 먼저 350만원을 입금해 신뢰를 샀다.
이후 요구는 노골적으로 변했다. A는 “공개 자료는 필요 없다”며 한미 연합작전과 훈련 평가, 미군과 일본 자위대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특히 “미군 관련된 거 가장 좋다” “작계 등 민감한 거 있나” “사드 자료가 좋다”라며 2·3급 자료를 달라고 했다. 위장 수사관은 현금 500만원을 받고 가짜 군사기밀 4건을 건넸다.

◇제주서 접선…아내에겐 “우리 애국하는 거예요”
켄 제이크는 장기간 거래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조직원을 한국에 직접 보내기로 했다. 한국어와 한국 사정에 밝은 칭씨가 낙점됐다.
칭씨는 2024년 5월 “상대 군인과 신뢰를 쌓으라”는 지시를 받고 제주도로 입국했다. 당시 아내가 한국에서 유학 중이었지만 만나러 가지 않았다. 아내가 걱정하자 칭씨는 “임무하러 가는 거지 뭐” “안심해요, 우리 애국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칭씨는 제주시의 한 펜션에서 위장 수사관을 만나 “A와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며 “놀거나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비용을 계산해줄 수 있다”고 했다. 위장 수사관은 원하는 자료의 목록과 가격표를 요구했고 중국 정부 차원의 신분 보호 등도 요구했다. 칭씨는 이를 A에게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뒤 조직의 다른 전달책은 펜션에 숨겨진 USB를 회수했다. 안에는 북한 전략무기 개발 수준 분석 등 가짜 군사기밀 5건이 들어 있었다. 전달책은 같은 자리에 미화 5000달러와 다음 거래에 사용할 USB를 남겼다.
조직은 거래 규모를 키웠다. 칭씨는 2024년 7월 다시 제주도로 입국해 공작금 5000달러와 전용 연락 수단으로 쓸 보안 휴대전화를 철제 금고에 넣었다. 그러나 위장 수사관이 거래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료를 보내지 않자, 조직은 매달 고정급을 지급할 방법을 찾았다. 칭씨는 중국에서 돈을 충전할 수 있는 카드를 한국에 보내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국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인출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칭씨의 세 번째 한국 입국은 2025년 3월이었다. 그는 제주도 내 시설의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넓이와 변기 칸 수를 확인해 A에게 보고했다. 자료를 전달할 은밀한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며칠 뒤 제주시의 한 건물에서 위장 수사관을 만나 ‘북한의 신형 유도미사일 개발 수준 및 위협 분석’ 등 가짜 군사기밀 2건이 든 USB를 받고, 갤럭시 태블릿PC 등이 든 선물 가방을 건넸다. 칭씨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방첩사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그해 4월 칭씨를 구속기소했다.
◇“보이스피싱 수사인 줄 알았다” 주장
재판 과정에서 칭씨는 방첩사가 처음부터 위장 수사를 했기 때문에 실제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중국 조직이 상대를 실제 현역 군인으로 믿고 2·3급 기밀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면서 돈과 장비까지 제공한 만큼, 객관적으로 기밀 유출 위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1심은 “대한민국의 국가 안전에 중대한 위협을 가져오는 범행”이라며 칭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실제 기밀이 넘어가지는 않았고 칭씨가 조직 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도 않은 점을 형량에 반영했다.
칭씨는 2심에서 중국인 보이스피싱 조직을 수사하는 일인 줄 알았다고도 주장했다. 이를 입증한다며 중국인민무장경찰부대 명의의 협조 공문과 중국 대학의 출장 확인서도 제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민간인이 보이스피싱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해 현역 군인을 비밀리에 만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켄 제이크가 중국 정부 산하 첩보조직인 만큼 관련 기관 명의의 공문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봤다. 2심은 칭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고,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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