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들어서 도착하는 곳[김홍의 트루 스토리]
기시 마사히코 지음|정세경 옮김|두번째테제|304쪽|1만6000원

덥다. 너무 덥다. 이 뙤약볕이 누군가에게 해수욕할 명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식염포도당을 씹으며 일할 고난이 된다.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근사한 문장을 떠올린다.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의 말이다. 좋은 말이라 가만히 있다가도 가끔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더우면 심통이 차올라 묻게 되는 거다. 될까요?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게? 처지가 다른데?
기시 마사히코의 <망고와 수류탄>을 꺼낸다. 책의 부제는 ‘생활사 이론’이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듣는 것에 대한 이론이 담겼다. 주로 다루는 대상은 전후 오키나와 생활사다. 류큐 왕국은 1879년 일본에 병합돼 오키나와가 됐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내지(內地)에 의해 타자화됐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가 폭력이 되고 특정 지역이 동질한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사다.
구술자의 이야기에는 신중하게 건너가야 할 굴곡과 공백이 있다. 글에 비해 말은 불분명하게 스쳐 갈 때가 있고, 연루된 사람의 말에는 편향이 개입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는 높은 확률로 고통에 대한 것이다. 떠올리는 것과 말하는 것 심지어 듣는 것까지, 고통에 대한 것은 대개 고통스럽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해석과 상호 작용이 반복된다. 묻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고통에 대해 함께 생각할 것이다. 오래 듣다 보면 상대의 입장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내게는 부족한 경험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래, 깊이, 엄중하고도 엄정하게 듣는 일 말이다. 그러면서도 늘 고통에 관해 쓰려고 안간힘이다. 내가 상상하고 또 상상해서 만들어낸 고통을 이야기에 불러들인다. 만들어냈기 때문에 현실과 무관한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교하게 구성된 고통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문하게 된다. 내가 진짜 고통을 모른 척하고 거기서 달아나기 위해 허구를 방패막이로 쓰는 건 아닌지 말이다.
저자는 칼집을 넣은 망고를 대접받았다. 그 모양은 꼭 수류탄을 떠올리게 했고, 구술자의 아버지는 수십 년 전 일본군이 건넨 수류탄에 폭사했다. 글이 쓰이고 번역되어 나에게까지 닿을 때 우리의 입장은 얼마나 동일해졌을까? 나는 감히 짐작만 할 뿐이다. 다만 분명하게 깨닫는다. 진실한 순간에 도착하려면 계속 묻기, 계속 듣기. 그것 말고는 없다.

김홍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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