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빅터 프랭클을 읽으며- 좇지 않을 때 돈이 따라온다 - 오연석 (더벤처캐피탈㈜ 대표이사 전국대학생가치투자대회 추진위원장)

한여름의 무더운 아침이다. 어제 도착한 특별한 책 한 권을 펼쳤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처음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가 아우슈비츠 이후 남긴 기고 글과 강의를 모아 엮은 새 책 〈죽음의 수용소 이후〉였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 청년들의 지난한 삶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벼랑 끝에 서는 것일까, 왜 이토록 힘겹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가. 그런 면에서 유난히 한 대목이 이번 독서에서 투자자의 눈으로 다르게 읽혔다.
프랭클은 “행복을 정면으로 겨냥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어떤 과제,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 혹은 타인을 향한 헌신이 남긴 부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 자체를 목표로 삼아 내달리는 순간, 그것은 손아귀를 빠져나가 버린다. 그는 이 역설을 성 심리학의 사례로 설명한다. 자신의 성적 능력을 증명하려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역설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잊고 상대에게, 혹은 어떤 일에 스스로를 내어줄 때 사람은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 의식적으로 행복을 정면으로 겨냥하지 않을 때 행복은 저절로 온다.
이 대목에서 오랫동안 품어온 생각 하나가 선명해졌다. 돈도 똑같다. 정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재산은 그 몰두의 부산물로 불어난다. 반대로 돈 그 자체를 정면으로 겨냥해서 발버둥 칠수록, 남는 것은 부작용뿐인 경우를 시장에서 숱하게 보았다. 레버리지 투자로 돈을 벌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다. 수익 그 자체를 겨냥한 베팅은 구조적으로 불안을 키우고, 불안은 판단을 무너뜨린다. 오늘 몇 퍼센트를 벌었는지에 온 신경이 쏠려 있는 사람은, 정작 그 기업이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산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쏟을 여력을 잃는다. 결국 그는 시장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싸우게 된다.
기업을 보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저평가된 좋은 기업을 오래 들여다보고,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는 일 자체에 몰입하는 투자자는 결과적으로 좋은 수익을 얻는다. 반면 오직 수익률이라는 숫자만을 정면으로 겨냥해 단기 시세를 좇는 투자자는, 프랭클이 말한 실패의 회로를 그대로 반복한다. 좇을수록 달아나는 것이 바로 돈이다. 시세 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며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투자자와, 기업의 사업보고서와 산업의 흐름을 꾸준히 읽고 고민하는 투자자의 수년 뒤 성적표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자는 결과에 매달리고, 후자는 과정에 몰입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벌어진다.
프랭클의 표현을 빌리면, 눈이 자기 자신을 볼 때는 정상적인 시야를 잃은 상태, 즉 병든 상태다. 눈은 세계를 볼 때 가장 온전하게 기능한다. 투자자의 시선도 마찬가지여서, 시세 창의 등락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과 시대의 흐름을 향해 있을 때 가장 온전하게 작동한다. 자신의 수익률에만 붙들린 시선은, 정확히 그만큼 시장 전체를 읽는 능력을 잃는다.
이것은 필자가 늘 이야기하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의 다른 표현이며 재구성이다. 비록 맹자는 ‘항산이라야 항심’이라는 명제를 강조했지만, 투자에서는 그 순서를 뒤튼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즉 투자의 세계에서 항산은 항심의 결과가 된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는 안목을 갈고닦는 일, 냉정한 분석에 대한 몰입과 헌신이 먼저이고, 항산은 투자자의 몰입이 시간을 두고 남기는 부산물이다. 배당을 재투자하며 수십 년을 버틴 투자자들의 계좌가 결국 증명하는 것도 이 원리다.
그래서 후배 투자자들에게, 또 가치투자 대회의 참가자들에게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수익률을 정면으로 겨냥하지 말고, 기업을 이해하는 분석과 산업의 흐름을 읽는 안목의 양성에 몰두하라고, 돈은 그 몰입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지, 쫓아가서 붙잡는 것이 아니라고. 프랭클이 반세기 전 진료실에서 발견한 역설은, 지금, 이 순간 여의도의 책상 위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 좋은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돈에서 잠시 눈을 떼야 한다. 매일 아침 수익률 창을 열기 전에, 오늘 하루 어떤 기업을, 어떤 산업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것인지를 먼저 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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