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선물로, 구급 사이렌으로…종의 맹활약 역사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6. 7. 30. 19:3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종 이야기-종소리로 기억하는 인류의 삶- 이재태 지음 /학이사 /2만8000원
왼쪽과 오른쪽 사진 모두 도자기 인형과 황동종이 융합된 1900년 전후 프랑스 탁상종이다. 포도와 포도잎 장식은 오랫동안 기독교 예술의 상징이었다. 학이사 제공


- 세계의 종 1만 개 수집한 저자
- 다양한 문화적 의미 등 소개
- 종소리는 절대 권위·소통 상징
- 산업혁명 후 시민 일상에 편입


두부 장수 종소리. 학교 종소리. 사찰에서 해 질 무렵에 들었던 종소리. 한 해 마지막 날 보신각 타종 소리. 기억나는 ‘종’이나 이야기가 더러 있다.

그런데 이재태의 ‘세계의 종 이야기’를 펼치는 순간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책 속으로 죄다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 같다. 종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이렇게 생긴 종도 있구나 하며 글과 사진을 보느라 눈길도 손길도 바빠진다.

이재태 저자는 경북대학교 의대 명예교수이다. 그리고 종 수집가이다. ‘세계의 종 이야기’는 유명한 종 수집가인 저자가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세계 각국의 종 1만여 개 중 역사·문화적 의미가 깊은 종을 선별해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 이전에는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와 ‘종소리가 좋다’를 펴냈다.

“종은 온 세상에 널리 분포하며, 그곳에는 삶과 문화 종교, 그리고 염원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종소리는 절대 권위와 함께 평화, 사랑 그리고 소통의 소리라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소통’이라 믿는다.” 저자가 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쓴 대목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라는 의미로 저자가 울리는 경쾌한 종소리 같다.

책은 세계의 다양한 종을 소개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은 인류 초기 기록부터 존재했다. 고대 중국, 3000년 전 바빌론 유물, 성경에도 언급된다. 종은 인류의 삶과 문화, 종교,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종을 주조한 장인들은 그 시대 사람들의 역사와 이상을 종에 표현했다. 하나의 종이 탄생하기까지 역사적 철학적 문화적 배경이 존재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종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긴 역사 속에서 울렸던 것일까.

이 책은 종의 가장 흔한 용처는 종교의식이었지만, 산업혁명 이후 시민의 일상에 편입됐다고 설명한다. 초기 구급차와 소방차는 경광등 대신 종을 치며 위급 상황을 알렸다. 제대로 멋을 낸 은제 티벨(tea bell), 하인과 집사를 호출하던 화려한 유럽 탁상종, 절제된 인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도자기 인물종, 한 나라의 상징적 인물과 종교적 내용을 조각한 동종, 유명 도자기·유리 공방들이 명예를 걸고 만든 예술적인 종,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기념종, 전화기, 뮤직박스, 자명종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등장했다.

저자가 그중 가장 정감을 느끼는 것이 탁상종이다. “탁상종을 만든 목적은 누군가를 불러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이 작은 탁상종 속에 깃들어있다. (중략) 전기가 없던 시절, 유럽의 어느 귀족이나 음악가는 깊은 밤에 글이나 곡을 쓰던 중 잠시 크게 숨을 들이쉬며 종을 울렸다.”

마치 소설의 한 대목 같은 설명을 읽으며 1900년 전후 프랑스 탁상종 사진을 보았다. 도자기 인형과 황동종이 융합된 형태이다. 포도와 포도잎 장식은 오랫동안 기독교 예술의 상징이었다. 아름다운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종이다. 주인이 저 종을 울리면 집사나 하인이 재빠르게 달려갔을 것이다.

‘빅토리아 웨딩종’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영국의 전성기를 구가한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하는 부부에게 아름다운 유리종을 선물했다. 이후 영국에는 결혼식 선물로 높이 30㎝ 정도의 화려한 유리종을 선물하는 풍습이 유행했다. 이 유리종을 빅토리아 여왕 웨딩종이라고 불렀다. 유리종의 청아한 소리는 새출발하는 신혼부부를 축하하는 소리였다.

종 이야기를 읽는 동안 실제 종소리는 어떨지 점점 궁금해진다. 어디서, 누가, 왜 종을 울렸을까. 그 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종소리가 들려오는 책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