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기부 문화, 예술이 사회를 바꾸는 힘

클래식 음악은 오랫동안 예술적 감동과 정신적 풍요를 전달해 왔다. 서양에서 음악은 단순한 공연예술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공재로 인식되며, 기부와 나눔이 그 중심에 있다.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과 시카고 심포니는 개인·기업 후원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복지와 청소년 교육을 펼치고,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역시 민간 기부를 통해 소외계층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주요 책무로 여긴다.
이러한 공공적 활동의 동력은 두터운 기부 문화다. 미국 오케스트라 연맹 통계에 따르면 예산의 약 40%는 민간 기부금이며 정부 지원금은 3%대에 불과하다. 기부금의 절대다수가 ‘개인 기부자’에게서 나온다. 소액 정기 후원부터 거액 유산 기부까지 기부 층이 탄탄하며, 이사회는 ‘Give or Get(직접 기부하거나 자금을 끌어오거나)’ 원칙으로 모금 최전선에서 재정을 책임진다.
우리나라 클래식계 역시 최근 배리어프리 공연 등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훌륭히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속 가능하게 뒷받침할 재원 구조는 아쉬움이 남는다. 민간 공연단체는 정부·지자체 지원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기부금마저 대기업 사회공헌(메세나)에 편중되어 있다. 공공 지원금 획득에 생존이 결정되다 보니, 장기적인 비전보다 지원금 심사 기준에 맞춘 일회성 프로젝트 위주로 기획이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작은 단체’를 향한 관심과 후원 문화다. 미국은 동네의 작은 실내악단이나 갓 시작한 예술 팀도 기부금을 모으고 세제 혜택을 주는 게 자연스럽다. 그 이면에는 ‘우리 동네’ 중심의 풀뿌리 기부 문화가 있다. 미국인에게 기부는 불우이웃 돕기를 넘어 “내가 사는 동네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투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녀가 참여하는 동네 합창단, 소규모 청소년 실내악단 등에 기꺼이 정기 후원하며 ‘우리 커뮤니티의 예술은 내가 지킨다’는 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제도적 장벽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비영리 면세 조항으로 단체 설립과 세제 혜택 진입 장벽이 낮다. 반면 한국은 공익법인 승인 절차를 매우 엄격하게 통제한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신생·소규모 단체들은 초기 펀드레이징부터 큰 난관에 부딪힌다. 기업에 법인세 절감 혜택을 제공하고 싶어도 기부금 영수증 발행조차 어려워 유인책이 작동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클래식 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고 성장하려면 근본적인 재원 구조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언제 삭감될지 모르는 공공 지원금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서구권처럼 동네 곳곳의 작은 예술 단체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단체의 철학에 공감하는 ‘개인 정기 후원자’를 적극 육성할 수 있도록 중간 지원 체계를 활성화하고 제도적 문턱을 낮추는 고민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예술은 사회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작은 후원이 동네 곳곳의 문화예술 지평을 넓히고 음악이 지역사회를 감동시킬 때, 한국 클래식계도 단순한 감상을 넘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튼튼한 생태계로 자리 잡을 것이다.
/박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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