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호의 독서경영 스토리] 좋은 책보다 지금 필요한 책을 고르는 조직이 이긴다

김을호 기자 2026. 7. 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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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경영의 성패는 추천도서 목록이 아니라 조직의 질문에서 갈린다
[김을호의 독서경영 스토리] 좋은 책보다 지금 필요한 책을 골라야 한다   사진=생성형 AI 이미지

[한국독서교육신문 김을호 기자]

사내 도서관 서가에는 이름난 경영서가 빠짐없이 꽂혀 있다. 매달 추천도서도 정하고 독서모임도 연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나면 "좋은 내용이었다"는 소감 외에는 별다른 것이 남지 않는다. 회의 방식도, 업무 절차도, 리더의 질문도 전과 같다.

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 조직의 현실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독서경영을 시작하는 조직은 흔히 리더십, 소통, 혁신, 자기계발처럼 큰 주제를 먼저 정한다. 그다음 그 분야에서 유명한 책을 고른다. 책 자체는 훌륭하지만, 구성원들은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직원은 거의 없다. '변화해야 한다'거나 '고객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말도 이미 충분히 들었다. 조직에 필요한 것은 옳은 말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독서가 아니다. 지금 막혀 있는 문제를 정확히 보고, 기존의 판단을 흔들며, 작은 변화라도 시작하게 하는 독서다.

좋은 독서경영은 좋은 책을 많이 소개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 조직은 지금 무엇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책을 고르기 전에 조직의 불편부터 적어야 한다

추천도서 목록을 만들기 전에 회의실과 현장에서 반복되는 불편을 적어볼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회의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가. 모든 결정이 대표나 팀장에게 몰리는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은데 실제 고객을 만나기 전에 시간과 예산을 지나치게 쓰는가. 성과는 내고 있지만 구성원의 피로와 협력사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가.

문제가 구체적일수록 책도 제대로 고를 수 있다.

'리더십을 강화하자'는 목표는 너무 넓다. 리더가 모든 답을 제시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판단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지,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책임만 요구하는 것이 문제인지에 따라 읽어야 할 책이 달라진다.

'소통을 개선하자'는 말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이 말을 하지 않는 것과 서로의 말을 잘못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는 말해도 안전하다는 신뢰가 필요하고, 후자는 사용하는 개념과 업무 기준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독서경영에서 책 선정은 교양 목록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조직의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살펴볼지 결정하는 경영 행위다.

좋은 책은 조직을 칭찬하기보다 불편하게 한다

독서모임에서 반응이 좋은 책만 고르면 대화는 편안해질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낮다.

구성원 모두가 쉽게 동의하는 책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데 그칠 때가 많다. 반대로 기존의 성공 방식과 리더의 믿음에 질문을 던지는 책은 토론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리더가 권한 위임에 관한 책을 읽고도 직원의 부족한 역량만 떠올린다면 책은 지시의 근거가 된다. 조직문화에 관한 책을 읽으며 "우리 직원들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솔직하게 말한 사람이 실제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좋은 추천도서는 직원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 아니다. 경영자와 조직이 당연하게 여겨온 방식을 검토하게 하는 책이다.

책 선정 회의에서는 "직원들이 좋아할까"만 물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우리 조직의 어떤 믿음을 흔들 수 있는가."

"경영진에게 가장 불편한 대목은 무엇일까."

"책의 주장과 우리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독서모임에서 다룰 만한 책이다.

책은 주제가 아니라 조직의 증상에 맞춰 골라야 한다

모든 기업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필독서는 없다. 조직이 처한 상황과 해결하려는 문제에 따라 책의 쓰임도 달라진다.

다음의 책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경영서 목록'이 아니다. 각 조직의 증상에 따라 무엇을 읽고 어떤 질문을 나눌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직원들이 문제를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두려움 없는 조직』, 에이미 에드먼드슨
『두려움 없는 조직』, 에이미 에드먼드슨

회의가 지나치게 조용하고, 실패나 위험 신호가 일이 커진 뒤에야 보고된다면 개인의 소극적인 성격만 탓해서는 안 된다. 말했을 때 생길 불이익을 구성원들이 먼저 계산하고 있을 수 있다.

『두려움 없는 조직』은 구성원이 업무에 관한 의견과 실수, 우려를 말해도 처벌이나 보복을 걱정하지 않는 환경, 즉 심리적 안전감을 다룬다. 이 책은 편안하고 갈등 없는 직장을 만드는 방법보다, 불편한 정보가 조직 안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 조건을 살피는 데 유용하다.

이 책을 읽은 뒤 "직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결론 내리면 곤란하다. 먼저 리더의 반응을 돌아봐야 한다.

"경영진이 듣기 싫어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실수를 일찍 보고한 사람과 끝까지 숨긴 사람을 어떻게 다뤘는가."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냈을 때 리더의 표정과 말투는 어땠는가."

이 책의 독서 결과는 솔직하게 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보고할 수 있는 절차, 리더가 반대 의견을 듣는 방식, 실패의 종류를 구분해 다루는 원칙으로 남아야 한다.

모든 결정이 리더에게 몰려 있다면

『턴어라운드』, L. 데이비드 마르케
『턴어라운드』, L. 데이비드 마르케

리더가 유능할수록 조직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역설이 있다. 직원들은 리더의 빠른 판단에 의존하고, 문제가 생기면 위의 지시부터 기다린다. 리더는 직원들이 판단하지 않는다며 다시 더 많은 결정에 개입한다.

『턴어라운드』는 미 해군 핵잠수함 산타페함에서 기존의 '리더-팔로워' 체계를 '리더-리더' 방식으로 바꾼 과정을 담고 있다.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을 만드는 대신, 현장의 구성원이 정보를 바탕으로 의도를 밝히고 판단하도록 운영 방식을 바꾼 사례다.

이 책을 권한 위임의 성공담으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권한을 주기 전에 구성원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와 역량을 갖췄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우리 조직에서 리더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일은 무엇인가."

"직원에게 책임을 요구하면서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주고 있는가."

"직원이 결정을 내렸을 때 리더는 결과만 평가하는가, 판단 근거도 함께 듣는가."

읽은 뒤에는 결재 단계를 무조건 줄이기보다, 특정 업무에서 누가 어느 범위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를 정해 시험해보는 편이 낫다.

리더가 답부터 말하는 조직이라면

『리더의 질문법』, 에드거 샤인·피터 샤인
『리더의 질문법』, 에드거 샤인·피터 샤인

경험이 많은 리더는 직원의 말을 끝까지 듣기 전에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사례를 설명한다.

문제는 리더가 틀렸는가에만 있지 않다. 리더가 너무 빨리 답하면 직원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리더가 듣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정리할 수도 있다.

『리더의 질문법』은 상대를 이끌기 위한 영리한 질문 기술보다,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다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겸손한 질문'을 다룬다. 복잡한 업무에서는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하기보다 먼저 상황을 이해하는 법을 제안한다.

이 책을 읽은 뒤 질문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 리더가 자신의 설명과 조언을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 현장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내 설명보다 먼저 당신의 생각을 말해달라."

질문은 상대에게서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장치가 아니다. 리더의 해석이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동이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행 전에 비용을 너무 쓴다면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알베르토 사보이아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알베르토 사보이아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시장 규모를 조사하고,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 발표 자료가 정교해질수록 성공에 대한 확신도 커진다.

하지만 잘 만든 계획이 고객의 실제 행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은 의견과 예측만으로 아이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는 방식을 경계한다. 저자는 큰 비용을 투입하기 전에 아이디어의 핵심 가정을 작고 빠르게 시험하는 '프리토타입' 방법을 제시한다.

혁신을 주제로 이 책을 읽는다면 "창의적으로 생각하자"는 결론보다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지만 확인하지 않은 가정은 무엇인가."

"고객이 좋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선택하는 것은 같은가."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전에 어떤 행동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가."

독서 후에는 아이디어 발표회를 열기보다, 하나의 가정을 작은 규모로 시험하고 그 결과를 함께 읽는 편이 낫다. 혁신은 아이디어의 화려함보다 틀릴 가능성을 일찍 확인하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성과와 가치가 자주 충돌한다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기업의 결정에는 늘 가격과 비용이 따라붙는다. 효율과 수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경영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의 논리를 모든 영역에 적용해도 되는지는 다른 문제다.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시장이 교육과 환경, 건강, 정치와 같은 삶의 영역으로 확장될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묻는다. 기업 윤리를 정답처럼 가르치기보다, 가격을 매기는 행위가 대상의 의미와 관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지속 가능 경영이나 윤리경영을 고민하는 조직이라면 선언문을 만들기 전에 이 책으로 판단 기준을 점검해볼 수 있다.

"우리의 비용 절감은 누구에게 비용을 넘기는 방식인가."

"인센티브가 구성원의 행동과 관계를 예상과 다르게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조직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결정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곧바로 실행 지침을 찾기는 어렵다. 대신 숫자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를 회의 안으로 가져오는 데 가치가 있다.

한 권을 모두에게 읽히는 방식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 직원이 같은 책을 읽으면 조직의 공통 언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주제에 같은 방식이 적합한 것은 아니다.

직급과 부서에 따라 마주하는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권한 위임을 다룬 책을 읽을 때 경영진은 통제권을 얼마나 내려놓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간관리자는 책임과 권한이 위아래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볼 수 있다. 실무자는 판단에 필요한 정보와 기준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질문은 달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공통으로 짧은 글이나 책의 한 장을 읽고, 부서별로 다른 보조도서를 선택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고객을 직접 만나는 부서는 소비자의 삶을 보여주는 르포를 읽고, 상품기획 부서는 아이디어 검증을 다룬 책을 읽을 수 있다. 이후 각자가 무엇을 다르게 보게 됐는지 함께 나누는 것이다.

독서경영은 전 직원을 같은 독서목록에 맞추는 행사가 아니다. 서로 다른 업무에서 발견한 지식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추천도서는 '거울·창문·도구'가 고르게 있어야 한다

독서경영의 책은 세 가지 역할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조직의 현재 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책이 필요하다. 구성원들이 반복해온 행동과 관행을 알아차리게 하는 책이다. 『두려움 없는 조직』이나 『턴어라운드』처럼 조직의 운영 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세계를 보여주는 창문 같은 책이다. 경영서뿐 아니라 소설, 역사, 르포와 인문서가 필요하다. 조직이 고객과 직원, 협력사를 기능과 숫자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준다.

마지막으로 바로 시험해볼 방법을 제시하는 도구 같은 책이 있다.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처럼 업무 현장에서 작은 실험으로 옮길 수 있는 책이다.

도구 같은 책만 읽으면 조직은 방법론에 쫓기기 쉽다. 창문 같은 책만 읽으면 좋은 대화는 남지만 실행이 약해질 수 있다. 거울 같은 책만 계속 읽으면 조직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지칠 수 있다.

세 역할이 균형을 이룰 때 독서는 성찰과 시야 확장, 실행으로 이어진다.

좋은 추천도서 목록에는 책보다 질문이 많이 적혀 있어야 한다

독서경영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은 긴 필독서 목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책마다 왜 지금 읽는지, 어떤 질문을 나눌지, 읽은 뒤 무엇을 시험할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추천도서 안내문에는 책 소개보다 다음 내용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 책을 선정한 조직의 문제는 무엇인가.'

'책을 읽으며 확인할 가정은 무엇인가.'

'누구의 관점이 토론에서 빠지기 쉬운가.'

'읽은 뒤 바꿔볼 행동은 무엇인가.'

'어떤 결과가 나타나면 변화가 있었다고 볼 것인가.'

이 질문이 없다면 유명한 책도 조직 안에서는 평범한 교양서로 끝날 수 있다.

모든 책이 당장 업무 성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개인의 교양도 존중해야 한다. 다만 독서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이 시간과 자원을 투입한다면, 독서가 어떤 질문과 판단을 남겼는지는 확인해야 한다.

독서경영의 성패는 좋은 책을 골랐다는 만족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읽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를 발견했는가. 리더와 구성원이 자신의 판단을 다시 살펴봤는가. 오래된 업무 방식 하나라도 실제로 바꿔봤는가.

기업이 읽어야 할 책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지금 우리 조직이 피하고 있는 질문을 꺼내고, 익숙한 판단에 균열을 내며, 다음 행동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이 지금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독서교육신문 김을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