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는 학생과 부추기는 선생…내 마음속 민낯을 마주하다
찝찝하기까지 한 서스펜스 작품
최민식 "늦은 밤 몰아봐야 제맛"
선 넘은 학생, 한 가족 관찰에 집착
열등감 빠진 교수 "멈추지 마" 독촉
원작 희곡에 '한국적 스릴러' 덧칠
'활자의 감옥' 같은 세트, 몰입감 높여
요즘 대중을 사로잡는 K드라마의 흥행 공식은 ‘참교육’과 ‘김부장’으로 요약된다. 악인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사이다’ 같은 톡 쏘는 맛에 매료된다. 이 견고한 ‘사이다 흥행 전선’ 사이에 묘한 작품이 하나 있다. 6월 말 공개 첫주 비영어권 8위, 둘째주 5위에 이름을 올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 얘기다. 작품 성격도 정반대 지점에 있다. 말초적 청량감은커녕 찝찝함이 도드라진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기이한 불쾌감이 화면을 채운달까. 쾌감은 돌아서면 휘발되지만 지독한 서스펜스의 잔상은 꽤 오래 뇌리에 남기 마련. 지금 이 작품을 곱씹어봐야 할 이유다.

‘맨 끝줄 소년’은 충무로의 국민배우 최민식의 첫 넷플릭스 출연작이다. 시리즈 공개 직전 서울에서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최민식은 이런 감상 팁을 건넸다. “늦은 밤 한 번에 몰아 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어슬녘 골방에 앉아 스스로를 ‘활자 감옥’에 가둔 채 타인의 삶을 탐닉하는 한 남자의 망상에서 비롯된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작품이라 그렇다. 소음이 잦아든 늦은 밤 홀로 남겨졌을 때, 외면해온 비틀린 욕망이나 모른 척하고 싶던 나의 본성을 오롯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을 찾는다면 이 6부작을 찾아봐야 한다. 반드시, 혼자 볼 것.
서옥(書獄)에 갇힌 선생, 복수의 펜을 긋는 학생

동전의 양면처럼 사람 본성에도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꿈꿔온 삶을 일궈내지 못했다는 열패감, 동경하는 것을 다 가진 타인의 삶을 훔쳐보려는 시선. 누구에게도 드러낼 순 없지만 결핍과 집착이 만든 마음의 민낯 중 하나다. 살리에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관음증, 뒤틀린 피그말리온 효과, 가스라이팅….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이 중 한 가지 씨앗은 품고 사는 게 인간이다. ‘맨 끝줄 소년’은 이런 병폐의 이야기다.
여기 훔쳐보는 학생과 부추기는 선생이 있다. 대학 강단에서 교양 강좌 ‘기초 작문의 이해와 실제’를 가르치는 허문오(최민식 분)가 ‘쓰레기 같은’ 학생들의 과제 속 흥미로운 작문을 발견하며 사건이 시작된다. 과제 주인공은 공대생 이강(최현욱 분). 대학 친구 세윤(이진우 분)의 가족을 관찰하는 글을 썼는데, 문오는 그의 글솜씨에서 대작의 기운을 감지한다. 이강을 따로 불러내 알바비까지 쥐여주며 개인 교습을 한다. 문제는 이강의 글이 위험하다는 것. 자신에겐 부재한 가족(특히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윤 가족에게 접근하고, 관찰을 넘어 관음의 영역까지 선을 넘어버릴 듯한 모습이 드러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한 이강의 글에 문오는 “천박한 가십거리”라며 화를 내고 돌아서지만, 우연찮게 글의 소재인 세윤의 부모가 허문오의 역린을 건드린다. 그 커플(세윤의 부모)은 잘나가는 대학 동창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김수훈(허준호 분)과 첫사랑 후배 안은주(김윤진 분)라는 사실.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진다. 문학의 고결함, 작가의 윤리를 내세우던 그가 “진실의 작은 빈틈을 상상으로 메워야 한다”며 멈추지 말고 글을 쓰라고 독촉하고 마감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문오가 수훈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는 뭘까. 문오는 자신의 삶이 수훈 때문에 망가졌다고 믿는다. 짝사랑하던 은주를 빼앗긴 데다 문학적 성취에서도 줄곧 수훈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첫 번째 소설을 출간한 후 영감을 얻지 못하는 문오와 달리 수훈은 소설을 내는 족족 성공하며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사실 문오가 더는 글을 못 쓰게 된 데는 수훈의 책임도 크다. 오래전 소설을 평가해달라는 문오의 요청에 수훈은 이렇게 말했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지 않아? 그렇게 살아도 괜찮잖아. 무엇보다도, 너 문장 공부부터 다시 해야겠더라.”
수훈이 심드렁하게 말한 순간 문오는 모차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리가 된다. 과거를 잊은 척 살고 있는 문오에게 이강이 가져온 작문 과제는 ‘수훈을 발가벗길 기회’가 된 셈이다. 물론 이건 전부 문오의 생각. 수훈은 딱히 문오를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오에 대한 수훈의 기억은 “그냥 과묵하고…늘 맨 끝줄에 앉았던 대학 동창” 정도가 전부다.
원작 희곡, 오종의 ‘인 더 하우스’와 다른 점
‘맨 끝줄 소년’의 오리지널 이야기는 따로 있다.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쓴 희곡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ultima fila)>이 출발점이다. 10여 년 전 국내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엔 프랑스 예술영화 감독 프랑수아 오종이 영화 ‘인 더 하우스’로 제작했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답습하면 모방에 머물고 벗어나면 배신이 되는 리메이크의 숙명을 고려하면 ‘맨 끝줄 소년’ 제작은 처음부터 리스크가 꽤 큰 모험이었다. 원작 소설 <맨 끝줄 소년>을 읽어보면 이 지점에서 각각 드라마 연출과 각색을 책임진 김규태 감독과 장명우 작가의 고민이 드러난다. 밑그림은 같지만 칠해진 색채와 질감은 다르기 때문이다. 최민식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원작이 관음과 예술의 경계에 주안점을 뒀다면 ‘맨 끝줄 소년’은 한국적 스릴러와 서스펜스 요소, 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6부작인 이 작품은 3회쯤부터 원작을 완전히 떠나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 희곡 <맨 끝줄 소년>이 고등학교 문학 수업을 배경으로 교사 헤르만이 제자 클라우디오가 친구 라파의 집을 훔쳐보는 이야기에 만족을 느끼고 예술적 집착을 부리는 과정을 마치 미로처럼 모호하게 늘어놓았다면, 드라마는 수훈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작문 과제로 추적하고 조립하는 서스펜스 장르로 치닫는다. 이강의 펜 끝이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관찰하는 망원경에서 나아가 문오가 평생 외면하고 싶던 과거의 열패감과 억눌린 치부를 날것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런 전개에서 특히 인상 깊은 대목은 긴장감 넘치는 메타픽션 구조를 보다 실감 나게 구성했다는 점이다. 메타픽션은 등장인물이 작품 속 세계가 허구(픽션)임을 인지하거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다. 드라마에서 문오는 이강의 작문이 ‘소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읽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화라고 여긴다. ‘다음에 계속…’으로 과제를 끝맺을 때마다 이강에게 전화해 다음 이야기를 내놓으라고 독촉하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자신이 필자가 돼 밤새 글을 써 내려간다. 여기서 반전. 사실 이강은 문오를 향한 자신의 복수극을 완성하기 위해 그동안 명백한 허구의 이야기를 썼다. 이때부터 시청자도 문오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
원작에 비해 인물의 심리적 붕괴와 추락을 훨씬 더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납득시키는 도구 중 하나는 세트다. 문오가 이강의 글을 읽는 서재는 사방이 숨 막힐 정도로 빽빽한 책장에 둘러싸여 감옥처럼 보이고 조명은 무겁게 깔린다. 평생 쌓아 올린 문학적 자존심의 성벽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가둔 거대한 활자 감옥이 바로 그곳 아니었을까.
드라마를 완주했다면 원작 희곡의 일독도 추천한다. ‘맨 끝줄 소년’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학생 라파와 교사 헤르만은 작문의 제목을 두고 각각 ‘허수’와 ‘맨 끝줄 소년’을 제시한다. 라파에 따르면 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걸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개념. 헤르만에 따르면 맨 끝줄은 아무도 못 보지만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다.
이강이 쓰고 문오가 마침표를 찍어 완성한 그들의 소설 <맨 끝줄 소년>에 대입해보면 깨닫는다. 드라마 속 이강에겐 허구의 이야기지만 문오를 파멸시킬 수 있는 허수였고, 맨 끝줄에 앉아 모두를 조망한다고 믿은 문오는 그저 가련한 관찰 대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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