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그린 그림, 인간 닮은 가구…두 거장이 향한 끝은, 삶의 본질
게오르크 바젤리츠
"뒤집어야 보인다"
거친 붓질·색채 등
회화 자체에 집중
샤를로트 페리앙
"디자인으로 삶 개선"
인체 곡선따라 설계
철 파이프 파격 소재
45일간의 '사랑(Liebe)'.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지난 17일 개막했다. 음악의 선율이 구시가지를 물들이는 여름밤, 축제를 찾는 이들이 놓치는 매력이 하나 있다면 미술관 투어다. 가파른 암벽 위 묀히스베르크 현대미술관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미술의 정점이 기다리고 있다. 토스카니니 호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초 만에 다다르는 곳. 그곳엔 중세 도시 풍경 대신 백색 대리석으로 지은 현대적 건물이 우리를 맞이한다. 올해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은 예술계 이목을 집중시키는 두 전시를 동시에 선보인다. 얼마 전 타계한 현대미술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회고전, 오스트리아 최초로 열리는 프랑스 디자인 개척자 샤를로트 페리앙(1903~1999)의 회고전이다.
#1. 거꾸로 선 세계, BASELITZ JETZT

독일이 낳은 세계적 화가이자 조각가인 바젤리츠는 잘츠부르크를 제2 고향으로 삼아 말년을 보냈다. 88세 탄생일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가 한창 열리던 4월 3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이 전시의 의미가 더욱 뜻깊다. 미술관이 예술가와 생전 함께 기획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다. 그 대신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치열한 예술적 집념이 말년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스페트베르크’(Spätwerk·노년기 Spät와 예술적 성과 Werk의 합성어)에 초점을 맞춘다.
바젤리츠를 세계 미술사 반열에 올린 건 1960년대 시작된 ‘거꾸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대상을 거꾸로 뒤집음으로써 관객이 그림 내용(재현) 대신 회화 그 자체의 색채와 형태, 거친 붓 자국에 집중하게 했다. 이번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2022년작 ‘Weißes Bett, weiß(하얀 침대, 하얗게)’다. 화면 전체를 거대한 남성 형상이 차지하고 그 위로 흰 천이 덮여 있다.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는 요양원 병상일 수도, 영원한 휴식 공간일 수도 있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타계와 맞물려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나이 듦과 상실, 인간의 필멸성에 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얇아진 황금빛 표면의 초기 작품들이 거칠고 두꺼운 물감 덩어리로 세상과 불화했다면 이번 전시에 소개된 최근 ‘황금빛 그림’들은 전혀 다른 질감을 보여준다. 인도 신화 신에게서 영감을 얻은 형상은 캔버스에서 훨씬 더 얇고 투명하게 또 가볍게 부유한다. 과거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노거장의 시선이 점차 내면과 초월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의 회화 24점이 걸린 묀히스베르크 본관 전시는 10월 18일까지 열린다. 구시가지 루페르티눔 분관에선 1960년대 작가가 발표한 4개월 예술 선언문을 바탕으로 한 초기 판화와 드로잉 전시를 10월 4일까지 선보인다.
#2. 공간을 해방시킨 여성, 샤를로트 페리앙
바젤리츠의 거친 붓 자국을 감상했다면 옆 전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프랑스의 전설적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페리앙의 대규모 회고전이 반긴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최초로 열리는 이번 페리앙 회고전은 990㎡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을 가구, 드로잉, 사진, 실물 크기의 건축 재현물로 가득 채웠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스튜디오에서 인테리어와 가구 혁명을 이끈 수석디자이너가 24세 여성 페리앙이었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페리앙은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장네레와 협업하며 가구 역사에 빛나는 수많은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명확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 삶을 개선하는 수단이다.”
그는 강철 파이프, 알루미늄 등 당시에는 가구에 쓰이지 않던 파격적인 산업용 소재를 과감히 도입하면서도 인체 곡선을 완벽하게 받쳐주는 실용적이고 편안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933년의 산장: 레퓌주 비부아크(Refuge Bivouac)’다. 페리앙이 설계한 조립식 알루미늄 산장을 독일 뮌헨공대 건축학과 학생들과 잘츠부르크응용과학대 그린빌딩학과 학생들이 협력해 전시장에 복원했다. 척박한 알프스산 한가운데에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한 미니멀한 모듈러 주택은 자연을 사랑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던 페리앙의 혜안을 보여준다. 완벽하게 복원해낸 1929년 아파트 인테리어 구조물 역시 관객이 현대 디자인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입체적 경험을 선사한다. 100년 전 디자인이라고 믿기지 않는 주방과 거실, 인체공학적 설계로 완성한 가구 디자인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일본 장인에게서 영감받은 디자인부터 지금은 흔한 모듈형 수납장의 시초까지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동시대 화두로 끌어온 두 거장의 진면목이 올여름 잘츠부르크에 살아 있다.
잘츠부르크=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전닉스 레버리지, 자연사시켜야"…'ETF 아버지'의 경고
- "148만원? 470만원?"…SK하이닉스 깜짝 전망에 '술렁' [종목+]
- "한국은 치고 나가는데"…'꼴찌 전락 위기' 日 초비상 [최만수의 재팬 인사이트]
- SK하닉 '억대 성과급' 그냥 주는 거 아니었네…취준생 '발칵'
- "또 품절될라"…다이소, 5000원 '초가성비 가전' 내놨다 [권 기자의 장바구니]
- "또 일본 갈 줄 알았는데"…5월 황금연휴 1위 여행지 어디?
- CIS, 첨단 정밀 장비로 日 배터리 업체도 홀렸다
- "한국에 최우선 공급하겠다"…중동 6개국 '깜짝 선언'
- "호텔서 커피 마셨더니…" 조회수 '300만' 대박 영상의 비밀 [현장+]
- "32만전자 간다"…삼성전자, 역대급 잭팟 예고에 주가 '들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