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양자컴 복합 컴퓨팅 자원 제공… AI·데이터 혁신 주도” [이준기의 D사이언스]
복합 컴퓨팅 플랫폼 기관 전환 역량 집중
韓, 제조업·바이오·의료 데이터 ‘독보적’
희귀난치 질환 치료제 개발 잠재력 지녀
‘국가연구데이터법’ 디테일한 작업 중요
법적 규제만 내세운다면 실효성 사라져

이준기의 D사이언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중심으로 과학연구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격변 흐름에서 대규모·고성능 컴퓨팅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고선 미래 연구개발(R&D)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KISTI는 AI를 기반으로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양자컴퓨팅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복합 컴퓨팅 플랫폼 기관’으로 미래를 선도해 나고자 합니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KISTI는 단순한 컴퓨팅 인프라 기관이 아닌 대한민국 AI·데이터 인프라의 핵심 허브로 탈바꿈하기 위한 여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 2024년 11월 취임한 이후 슈퍼컴퓨터과 과학기술정보 서비스 기관에서 벗어나 AI와 데이터, 인프라를 기반으로 R&D 혁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기관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이 원장은 “KISTI는 연구자들이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빌드업을 하고 킬패스를 넣어주는 과학계의 수비수와 미드필더 포지션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연구자들이 빅사이언스, 롱-텀 사이언스에 과감히 도전하고,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혁신적 R&D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슈퍼컴 6호기와 양자컴퓨터를 상호 연동하는 ‘양자-고성능(HPC)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 조성, AI 기반 과학난제 해결 프로젝트인 ‘K-문샷 프로젝트’ 지원, AI 기반 인프라·데이터 플랫폼 구축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미래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든든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담=이준기 IT과학바이오부 부장
◇ 슈퍼컴 6호기 차질없는 구축… 연내 시범 서비스 목표
이식 원장은 하반기 슈퍼컴퓨터 6호기 개통과 양자컴퓨터 구축을 통해 KISTI를 복합 컴퓨팅 플랫폼 기관으로 대전환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슈퍼컴 6호기 ‘한강’은 공식 서비스 개통을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등 시스템 안정화 작업을 포함해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양자컴퓨터는 기계실 공사를 마치는 내달부터 설치 작업에 들어가 올해 안으로 일부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그는 “슈퍼컴 6호기 구축 완료 후에는 일부 연구자들이 먼저 시스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베타 서비스가 제공된다”며 “이 과정을 통해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시스템적 오류를 정식 서비스 전에 모두 해결해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쓸 수 있게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슈퍼컴 6호기는 600페타플롭스(1페타플롭스·1초에 1000조번 연산)급 성능으로, 슈퍼컴 5호기와 달리 그래픽처리장치(GPU) 8496장이 탑재되는 국내 최초의 GPU 기반 슈퍼컴으로 구축되고 있다.
◇ 양자컴퓨터 첫 도입… 신약·소재 등 가시적 성과 낼 것
미국 양자컴퓨터 기업인 아이온큐의 100큐비트 이온트랩 기반 양자컴퓨터 ‘템포’ 구축에도 힘을 싣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위한 데이터센터 공사와 기반시설 구축을 마치고, 8월부터 템포 시스템이 설치된다.
이 원장은 “이온트랩 양자컴퓨터는 고성능 서버 랙을 촘촘히 쌓아 구축하는 슈퍼컴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전자가 아닌 레이저로 연산을 수행하는 초정밀 레이저 장비 덩어리로, 진동에 아주 예민해 기초공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KISTI는 7∼8월 중 바닥 공사가 마무리되면 양자컴퓨터 본체를 들여와 조립과 정밀 튜닝 작업을 거쳐 연내 제한적 시범 서비스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원장은 “KISTI는 오래 전부터 양자소프트웨어 연구를 통해 양자컴 운영과 서비스에 필요한 역량과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신약, 소재 등의 분야에서 양자컴을 활용한 가시적 성과가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슈퍼컴-양자컴 연동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 본격화
KISTI는 슈퍼컴 6호기와 양자컴퓨터를 상호 보완적으로 연동해 각 컴퓨팅 자원의 장점만을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컴퓨팅’ 환경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양자컴퓨터의 기술적 한계는 슈퍼컴 6호기로 보완하고, 슈퍼컴 6호기가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최적화 문제 등은 양자컴으로 처리해 두 개의 고성능 컴퓨팅 자원 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IBM의 양자컴퓨터를 도입해 슈퍼컴 ‘후카쿠’와 연동한 연구과제를 이미 시작했고, 유럽도 이런 모델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양자컴퓨터 분야에 있어 KISTI만의 차별화된 역할을 강조했다.
표준연, ETRI, KIST 등이 양자컴 하드웨어 자체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반면 KISTI는 양자컴퓨터를 연구자들이 실제 쓸 수 있도록 윗단의 미들웨어와 알고리즘,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초고속 연구망을 통해 클라우드로 서비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원장은 “KISTI는 이미 수년 전부터 슈퍼컴퓨터에서 돌아가는 ‘양자 에뮬레이터’를 개발해 연구자들이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연구개발(R&D) 사업을 통해 양자컴 운영과 활용 역량도 확보하고 있다.
그는 “양자컴 분야에서 축적해 온 KISTI만의 차별화된 역할과 역량을 바탕으로 연구자를 대상으로 컨설팅과 교육을 제공하고, 기업과 협력해 실질적 성과를 최대한 빨리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 韓, 제조·의료바이오 데이터 ‘독보적’… 피지컬 AI, 성장 잠재력 커
정부가 내세운 ‘대체불가한 대한민국’은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피지컬 인공지능(AI)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 원장은 “미국·중국이라는 AI 강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인프라, 기술 측면에서 격차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들과 철저하게 차별화된 양질의 데이터 확보를 통해 우리만의 독보적인 AI와 데이터 주권을 구축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핵심 분야로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제조업 데이터와 바이오·의료 데이터를 꼽았다.
그는 “해외에서 탐 낼 만큼 우리나라는 정밀한 건강보험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 확보에 앞서가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의료분야 특화 AI,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는 독보적인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조 인프라와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대한민국은 피지컬 AI 테스트 베드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들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한 오픈AI, 앤트로픽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한국을 방문해 현대자동차, LG전자, 두산 등 국내 기업 수장들과 만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피지컬 AI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글로벌 빅테크들의 단순한 하청기지나 소비 시장이 아니라 첨단 AI 기술을 통해 로보틱스, 자율주행, 반도체 등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는 막강한 파트너 국가이자 전략적 레버리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연구데이터, 규제 되지 않도록 세부규정에 담아야
지난달 7일 국회를 통과한 ‘국가연구데이터법’의 성공적 시행을 위해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을 디테일하게 만드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 원장은 주장했다.
국가연구데이터법은 국가 R&D에서 생산되는 연구데이터를 의무적으로 공개해 AI와 연구·산업 혁신에 폭넓게 활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제정됐으며,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원장은 “과학계에서 농담처럼 ‘연구자들은 남의 데이터를 보고 싶어하면서 자기 데이터는 보여주기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큰 틀의 법안이 통과된 만큼 이를 구체화할 시행령 등 후속 법적 근거를 얼마나 정교하게 마련하느냐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만약 단순한 행정적 의무나 법적 규제만 내세운다면 연구자들은 시늉만 낼 뿐 양질의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아 실효성 없는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데이터 공개 의무로 인한 연구자의 과도한 행정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확실한 보상(Benefit) 마련을 통해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별도의 정책과 규정에 데이터 제공자들에게 돌아갈 보상 방안을 담았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 PBS 폐지, 출연연 역할 강화… “국민 체감성과로 보답해야”
그는 출연연의 오랜 숙원였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는 기존 연구 생태계 패러다임을 완전하게 바꾸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PBS 폐지로 출연연의 역할은 분명해졌다. 대학·기업이 하지 못하는 출연연만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며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5년·10년을 내다보는 빅 사이언스, 롱-텀 사이언스로 연구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PBS 폐지 이후 실질적인 성과로 국가와 국민에 보답해야 하는 책임감과 사명감은 한층 무거워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PBS 폐지로 출연연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며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인건비뿐 아니라 연구비가 지원되는 만큼 국가와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야 하는 책임은 더욱 막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KISTI는 AI 대전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팅 자원과 양질의 연구데이터, 과학기술정보 서비스 등을 통해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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