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의 좀비보다 무서운 건 내 안의 고독

구정근 기자(koo.junggeun@mk.co.kr) 2026. 7. 30.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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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뮤지컬 '더 라스트 맨'
스스로 문 잠근 생존자의 110분
청년의 불안·자발적 고립 그려
'더 라스트 맨' 생존자 역인 홍나현이 반려 인형 '존버'를 끌어안고 있다. 네오프로덕션

"하나, 둘. 하나, 둘. 이곳은 B-103 방공호입니다. 생존자 있습니까?"

1인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은 무전기 너머로 던지는 절박한 구조 신호와 함께 막이 오른다. 황급히 방공호의 문을 닫아거는 주인공을 보며 관객은 여느 좀비물이나 재난 공포영화의 익숙한 문법을 떠올리게 된다. 좀비들의 위협을 피해 신림동 고시원에 몸을 숨긴 주인공이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 믿으며 치료제 개발 의지를 다지는 사이, 문밖에서는 좀비들이 으르렁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의 사투는 좀비가 아니라 고독을 향한다. 좀비와 맞서 싸우러 나가는 대신 홀로 초를 불며 생일파티를 열고, '존버'라는 이름을 붙여준 인형과 끝말잇기를 하는 일상이 이어진다. 부러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쉴 새 없이 혼잣말을 이어가고, 때로는 객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움츠러든 어깨에서 깊은 외로움이 비친다.

관객은 점차 좀비의 위협이 주인공이 스스로를 사회와 단절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재난 좀비물의 탈을 쓴 이 작품이 실제로 다루는 것은 상처받은 청년 세대의 불안과 자발적 고립이다. 반전이 밝혀지자 객석 곳곳에서 주인공을 향한 애잔함 때문인지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다.

작품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웹뮤지컬 형식으로 처음 제작됐다. 팬데믹 격리 생활 속 모두가 느꼈을 고독감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무대로 옮겨져 호응을 얻으며 삼연까지 이어졌다. 뉴욕과 도쿄 리딩 공연, 상하이 진출을 거쳐 지난 5월에는 영국 런던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에서 개막해 한 달여간 현지 관객과 만났다.

1인극인 만큼 배우 개인 역량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맡는 배우마다 주인공의 설정과 전사가 조금씩 달라지는 점도 이 작품의 특징으로, 반려 인형 '존버'조차 배우들이 각자 직접 디자인해 회차마다 다른 모습을 보인다. 29일 공연에서 홍나현은 고3 자립 청소년의 고독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관객의 몰입을 이끌었다. 봐줄 사람이 없는데도 휴대폰을 켜고 혼자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듯 영상을 찍고, 리센느의 파라파라 댄스 같은 유행 밈으로 극의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킨다. 생존 의지를 다지다가도 이내 절망으로 무너지는 감정의 낙차 사이사이에 침대에 누워 발끝을 까딱이고 의자에 양반다리로 앉아 과자를 먹는 등의 연기 디테일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작품은 110분 동안 인터미션 없이 이어진다. 좌석이 편치 않은 소극장 뮤지컬이 허용하는 최대치에 가깝다. 뚜렷한 장면 전환 없이 고시원이라는 단일 공간에서 진행되는 구성도 극의 무게를 더한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관객이 느낄 답답함은 역설적으로 작품이 전하려는 청년의 고립감과 공명한다. 공연은 8월 9일까지 서울 대학로 링크더스페이스 1관.

[구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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