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빈의 스몰데이터] 럭셔리 브랜드는 왜 K팝 아이돌 스타를 고용할까
스타의 이름값이 아니라 ‘K팝의 팬덤이라는 입장권’을 구매하는 브랜드들
주요 타깃은 ‘젊은 아시아’…뜨거운 관심은 ‘포화’ 서울 아닌 자카르타·하노이
(시사저널=김하빈 한양대 연구조교수)

'앰버서더(Ambassador).' 본래 국가를 대표해 타국에 파견되는 대사를 뜻하는 이 단어는, 오늘날 패션 산업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얼굴'이자 '대변인'을 의미한다.
이 우아한 대변인의 역사는 19세기 파리의 왕실 귀족들로부터 시작해 20세기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로 넘어갔다.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 제인 버킨과 에르메스처럼 스타의 취향과 브랜드의 정체성이 교감하던 시절, 이들은 매출을 견인하는 도구라기보다 디자이너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뮤즈'에 가까웠다. 럭셔리 브랜드가 스타를 철저한 투자 대비 수익과 매출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거대 자본이 럭셔리 하우스를 인수합병하며 산업을 글로벌 기업화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앰버서더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이자,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3년 그 철저한 계산 끝에 브랜드들이 가장 앞세운 얼굴은 한국의 K팝 스타들이었다. 겐조(Kenzo)가 창립 이래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글로벌 앰버서더를 지명했을 때 그 자리에 앉은 이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버논이었다. 프레드가 사상 첫 글로벌 앰버서더를, 보테가 베네타가 첫 셀러브리티 앰버서더를 세웠을 때의 얼굴 역시 각각 방탄소년단의 진과 RM이었다. 2016년 지드래곤이 샤넬의 한국인 최초 앰버서더가 된 해에 발탁은 단 한 건뿐이었으나, 2023년에는 34건으로 늘어났다. 열흘에 한 번꼴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아시아를 향한 치밀한 설계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K컬처의 높아진 위상 이면에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설계한 치밀하고 정교한 전략의 뼈대가 숨어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48개 럭셔리 하우스가 공식 발표한 앰버서더 576건의 국적을 집계했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종착지는 한 곳이었다. 셀린느의 앰버서더는 전원 아시아인이며 서구권 스타는 한 명도 없었다. 쇼메·토즈·지미추 역시 서구 앰버서더가 전무했고, 펜디 90%, 프라다 86%, 구찌 81%가 아시아인의 얼굴로 채워졌다.
이들을 기용하는 방식에도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배우 발탁의 19.6%가 중장년층 고소득 고객을 겨냥한 시계 부문에 몰려 아이돌(3.7%)의 5배를 넘는다. 대신 아이돌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의류·주얼리 부문에 집중된다. 발탁된 K팝 스타의 연령 중앙값은 27세다. 이는 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Bain & Company)가 럭셔리 산업 보고서에서 '최상위 고객(매출)'과 'Z세대 유입(미래 성장)'을 별개의 영역으로 관리하는 전략과 정확히 포개진다. 요컨대 럭셔리 브랜드는 K팝을 통해 처음부터 '젊은 아시아 시장'이라는 명확한 과녁을 겨눴다.

포화된 서울과 뜨겁게 반응하는 자카르타
그렇다면 이 설계는 실제로 작동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한국 K팝 스타 앰버서더 발표 직후 일주일간 구글 검색어 트렌드(Google Trends) 지표가 평소 대비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국가별로 대조했다.
국가별 반응은 뚜렷하게 갈렸다. 발탁 직후 검색량 상승 중앙값을 살펴보면 인도네시아는 +6.4%, 베트남은 +5.0%였으나, 럭셔리의 본산인 파리(-0.8%)나 정작 스타들의 고향인 서울(-0.2%)은 미동조차 없었다. 우연의 범위를 넘어 검색량이 유의미하게 뛴 경우의 비율 역시 인도네시아(11.0%)와 베트남(13.4%)은 통계적 기준선(5%)의 2~3배에 달했지만, 파리(6.8%)와 서울(2.8%)은 기준선 부근에 그쳤다.
동일한 분석을 위키피디아에서도 진행했다. 평소와 달리 조회수가 급격히 뛴 비율이 인도네시아 29%, 베트남 26%에 달한 반면, 파리는 6%, 서울은 10%에 불과했다. 반면 동일한 브랜드가 서구권 스타를 앰버서더로 발탁한 122건을 대조해 본 결과, 인도네시아에서 유의미한 반응이 나타난 경우는 단 2.5%(122건 중 3건)에 불과했다. 자카르타는 같은 브랜드를 서구 스타가 입었을 때는 침묵했던 것이다.
왜 럭셔리 소비 세계 1위인 한국은 조용하고, 자카르타는 열광했을까. 사회학자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은 유행을 "동경하는 세계와의 거리를 좁히는 몸짓"이라 정의했다. 수시로 앰버서더가 발표되는 한국은 럭셔리와의 거리가 이미 좁혀진 '포화' 상태다. 반면, 이제 막 럭셔리 문화에 눈을 뜬 동남아시아 신흥 시장에서 K팝 스타는 낯선 명품의 세계로 안내하는 강력한 손잡이다. K팝이 시장과 럭셔리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단숨에 좁혀준 것이다.
스타의 이름값이 아니라 K팝 팬덤이라는 '입장권'
이 지점에서 브랜드가 지불하는 막대한 자본의 진짜 목적이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효과의 원천이 특정 스타 개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한국 연예인이라도 '배우'를 내세우면 폭발적 반응은 잦아들었고, 강한 반응은 오직 '아이돌'일 때, 그리고 K팝 열기가 뜨거운 인도네시아·베트남 같은 시장에서만 나타났다. 개별 스타 한 명의 명성보다 K팝이라는 범주 그 자체가 반응을 이끈 것이다.
요컨대 브랜드가 노린 것은 스타 개인의 이름값이 아니라, 그 시장이 K팝이라는 범주에 보내는 강력한 선호와 팬덤의 확산력이다. 어떤 아이돌을 세우든, K팝 팬덤은 "누가 어느 브랜드를 입었다"는 소식을 집단적으로 실어 나른다. 브랜드가 사들인 것은 특정 얼굴이 아니라, 이 거대하고 충성도 높은 네트워크에 자기 이름을 올릴 '입장권'인 셈이다.
다만 뜨거운 관심과 실제 매출은 구분해야 한다. 한때 회자된 '디올 매출 484% 증가'는 브랜드 전체 매출이 아니라 한 리셀(재판매) 플랫폼의 거래 증가율이었고, 애초에 LVMH·케링 같은 지주사는 개별 하우스의 국가별 매출을 공시하지 않기에, 앰버서더가 장기적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그 관심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지는 이 데이터로 답할 수 없는 영역이다. 결국 연일 쏟아지는 K팝 스타들의 앰버서더 발탁 소식은, 글로벌 자본이 아직 럭셔리 소비에 길들지 않은 아시아 신흥 시장의 젊은 세대를 선점하려 던진 정교하고 실용적인 승부수다. 적어도 관심이라는 첫 관문에서만큼은, 데이터가 보여주듯 K팝이 이 거대한 아시아 시장을 여는 가장 강력한 열쇠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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