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m 높이 공간에 8m 스크린…대형영상으로 묻는 소통의 의미(종합)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31일 공개…미국수어·고전만화 요소로 표현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강태우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내 '서울박스' 한가운데 천장 쪽으로 휘어진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화면에는 무언가가 충돌하고 폭발하는 듯한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고전만화에서 움직임을 표현하는 선과 형태를 활용한 그래픽이 스크린뿐 아니라 주변 벽면과 바닥까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만화의 시각 요소로 인해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도 나지만, 무겁게 깔리는 사운드가 긴장감을 더하며 복합적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31일부터 서울관에서 LG전자와 함께 선보이는 김 크리스틴 선 작가의 신작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는 지난해 시작한 협력 프로젝트 'MMCA X LG 올레드 시리즈'를 통해 매년 16.6m 높이의 개방형 전시공간인 서울박스를 위한 장소특정적 신작을 제작한다.
올해 참여 작가로 선정된 김 크리스틴 선은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언어와 소통, 접근성을 주제로 드로잉, 설치,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왔다.
평면 드로잉을 공간으로 확장해온 최근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이번 신작은 애니메이션 영상과 작가의 드로잉을 바탕으로 한다. 갈등과 소모적 대립이 지속되고 온라인을 통해 증폭되는 이 시대를 표현했다.
제목은 점차 양극화되는 정치적 담론이나 논쟁이 서로의 이해 없이 반복되는 상황을 풍자하고 은유한다.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 타인이나 우리 자신, 고착된 질서와 규범, 고정된 사고방식과 편견 등을 상징한다.
영문 제목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에 등장하는 여섯 단어는 작품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청각장애를 가진 작가는 미국 수어로 이들 단어를 표현하는 손동작과 고전 만화에서 사용되는 모션 라인을 결합해 새로운 시각 언어로 재구성했다. 모션 라인이란 속도와 방향, 충돌과 긴장 등을 선으로 표현한 것을 뜻한다.
작가의 작업은 수어로 소통하며 살아온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소통과 이해, 공존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된다.

김 크리스틴 선 작가는 30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누가 무엇을 말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며 "오늘날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주도권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논쟁하지만 마치 완고한 바위와 싸우는 듯 아무런 결론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세로 8.4m, 가로 5.1m 곡면 대형 스크린은 55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올레드) 스크린 72대로 구성됐다. 이는 국내 미술관 전시 공간에 설치된 곡면 스크린 가운데 최대 규모다. 화면에는 서울박스 각 벽면과 바닥 등에 새겨진 이미지가 흑백 영상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말로 하는 언어가 우위에 있는 세계에서 수어를 사용하면서 사는 제 작품의 기반에는 공포가 있다"며 "저를 위해 설계된 세계가 아니기에 긴장이 있고 소통 오류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그래서 제가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최대한 명확하게 흑과 백으로 해왔다"며 "다만 이제 작품에 약간의 모호함을 더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색깔도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크리스틴 선은 지난해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현대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에서 34위에 오르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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