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보이콧에 그래미, “슬프지만 존중”...K팝 팬덤은 ‘그래미 차단’ 운동
30일 그래미 CEO “슬프지만 존중...K팝 심사 배제는 아니야”
K팝 팬덤은 ‘그래미 계정 구독 취소’ 확산
과거 라틴 팝 비교 사례도 주목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내년 개최되는 ‘2027 그래미 어워즈’에 최신 앨범 ‘아리랑’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K팝 팬덤 사이 그래미의 소셜미디어 구독 및 게시물 차단 운동이 번지고 있다. BTS의 불참이 사실상 그래미의 K팝 심사 기준이 공평하지 않다는 뜻의 보이콧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다. 그래미 측이 “우리는 특정 장르에 배타적이지 않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놓았음에도 글로벌 팬들 사이에선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30일(이하 한국시간) 오전 그래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 하비 메이슨 주니어 CEO는 전날 BTS의 그래미 불참 선언에 대한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하비는 “BTS가 올해 그래미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슬프지만, 음악 창작자로서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서도 “(아시안 팝 카테고리는) 분열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1만5000명의 그래미 투표자들이 인정하는 음악인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아시안 팝, 재즈, 컨트리와 같은 장르 범주에 음악을 제출한다고 해서 아티스트가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제너럴 필즈에 출품하고, 심사받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아시안 팝처럼) 장르 범주에서의 인정과 제너럴 필즈의 인정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예술가는 둘 다 확실히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BTS는 29일 멤버들의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들을 통해 내년 그래미 불참을 선언했다.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설명이 지난 6월 그래미가 K팝 심사 기준을 ‘음악’과 ‘지역’ 중심으로 설정한 아시안 팝 전용 부문(최우수 아시안 팝 퍼포먼스)을 신설한 데 대한 보이콧으로 풀이됐다. 그래미는 이 부문에서 ‘K팝’ ‘J팝’(일본 팝) ‘C팝’(중화권 팝) 등을 한데 묶고,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작품”을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K팝 팬덤에선 “아시아 음악을 서구권 중심 시각으로만 해석한다” “BTS와 K팝을 이 부문에만 가둬두고 주요 상을 주지 않기 위한 명분과 유리 천장을 만든 것”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그래미의 해명에도 팬들 사이에선 ‘그래미 차단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미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 구독을 해지하거나, 이들의 게시물이 노출되는 걸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30일 그래미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BTS의 공연 영상을 삭제했다는 의혹이 확산된 점도 이 같은 움직임에 더욱 불을 붙였다. 이날 해외 대중음악 전문 온라인 매체 팝 코어(Pop Core), 팝 엠파이어(Pop Empire) 등은 “그래미가 BTS 영상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미 공식 홈페이지에서 BTS가 2021년·2022년 각각 시상식에서 히트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버터’(Butter)를 부른 영상이 검색되지 않는 이미지를 게시했다. 뒤늦게 “다른 연도, BTS 이외 가수들도 마찬가지인데 오해 아니냐”는 반대 제보가 등장했지만, 팬들 사이에선 여전히 “그래미가 BTS 보이콧에 대한 치졸한 복수를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미 해명에도 K팝 팬덤은 왜 싸늘할까...“전례 있어 더 우려”
그래미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K팝 팬덤에선 “비겁한 변명”이란 눈초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미가 이미 BTS 이전에도 여러 차례 ‘비영어권과 유색 인종 가수에겐 박하다’는 의혹을 겪어온 점이 아시안 팝 부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다. 그래미는 오랫동안 위켄드, 프랭크 오션, 드레이크 등 다수의 유명 흑인 가수가 시상식 불참을 선언하거나 ‘심사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가하면서 ‘백인 팝 가수에게만 후하다’는 뜻의 ‘화이트 그래미(White Grammy)’란 불명예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그래미의 최고 영예로 꼽히는 본상(제너럴 필즈) 6개 부문의 트로피가 유독 백인 음악인에게 편중된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올해 결국 그래미의 대상 격인 ‘올해의 앨범’을 거머쥐긴 했지만, 오랜 기간 그래미에서 라틴 장르 부문에만 올랐던 가수 배드 버니도 대표적인 비교 사례로 꼽힌다. 배드 버니는 이미 2020년부터 미국 주요 차트를 휩쓸었고, 당해 앨범 ‘엘 울티모 투어 델 문도(El Último Tour del Mundo)’는 스페인어 앨범 최초의 빌보드200 1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2022년에야 그래미 후보에 올랐고, 라틴 얼바나 음악 전용 부문인 ‘베스트 뮤지카 얼바나 앨범’(Best Musica Urbana Album) 부문에만 이름을 올렸다.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라틴 전용 그래미상이 있는 건 그래미 시상식에서 라틴계 아티스트를 후보로 올리지 않기 위한 꼼수 같다”는 X(트위터) 반응들을 집중 보도했다.

그래미의 장르 구분이 지나치게 “인종적 분류표처럼 보인다”는 비판도 있었다. 앨범 ‘이고르’(IGOR)로 2020년 그래미 최우수 랩 앨범상을 받은 미국 흑인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래미가 모든 흑인 음악을 랩이나, 어번(urban)으로만 구분한다”고 비판했다. 소울·펑크·신스팝 등 다양한 요소가 섞인 자신의 앨범처럼 흑인 가수들이 아무리 다양한 팝 음악을 해도 전부 ‘어번’의 테두리에만 가둔다는 취지였다.
일각에선 “이제 K팝이 굳이 미국 로컬 시상식에 연연할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임희윤 평론가는 “BTS 정도의 위치가 아니라면 사실 이런 용기 있는 보이콧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과거에는 K팝을 비롯한 아시아 뮤지션들이 전부 그래미에 가는 걸 목표로 경쟁했지만, 이젠 각자의 월드투어 수익과 관객 수만 해도 그래미의 파급력에 결코 뒤지지 않게 된 상황을 이번 사태의 배경과 맥락으로 함께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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