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성기성형’ 사례 연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

박지하 2026. 7. 30. 14:2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논문 밖 인터뷰] 「의료지식-권력과 여성 주체의 불/가능성」 연구한 박슬기

[연구 소개]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 박슬기는 석사학위논문 「의료지식-권력과 여성 주체의 불/가능성 : ‘여성’ 성기성형 사례를 중심으로」를 썼다. ‘여성 성기성형’을 의료지식 권력, 젠더 규범, 그리고 상업자본의 논리가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장으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 여성 주체들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감각하며 저항의 경로를 구축하는지를 탐구한다.

▲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박슬기는 진료실이 젠더·의료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임을 고민하며, 긴장을 낮추는 소품과 여성·퀴어·인권단체의 굿즈 및 안내문 등 환대의 신호를 하나씩 더해가고 있다. (박슬기 제공 사진)

경계인의 정체성, 권력을 경계하는 의사의 자리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고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활동가 박슬기(활동명 완두)입니다.”

 

- 이 인터뷰가 현재 야간 당직 중에 진행이 되고 있는데요. 병원에서 일한다는 건 사실상 낮밤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기도 한데 여성학 대학원 진학을 어떻게 결심할 수 있었을까요?

“오랫동안 몸은 제 화두였어요. 특히 여성의 몸이요. 그래서 이 직업에 이르렀고요. 몸은 우리의 존재 자체인데, 그 몸에 어떤 권력이 얽혀 작동하는지가 제게는 중요하게 보였어요. 그런 고민을 담아 ‘페미니즘 의학 수다’, ‘생리 콘서트’ 같은 활동을 하는 중에도 계속 고민이 이어졌었죠. 여성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어요. 학위로 뭘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뭐라도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고, 대학원 면접 때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고 얘기했었어요. 절박한 마음이었죠.

항상 경계에 서 있다는 느낌,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어요. 그 ‘경계인’이라는 감각을 오히려 저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분투하는 시간이 꽤 길었어요. 저는 ‘몸을 둘러싼 권력을 누가 갖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누가 말할 때 귀 기울이고 힘이 생기는가’에 대해서 민감했죠. 그러다 보니 의사이면서 그 안에서 의료권력을 비판적으로 감각하고 경계하고, 동시에 활동이라는 영역 안에서 ‘누군가에게 더 힘이 주어지는가’에 대한 민감함도 있었어요. 의사라는 이름 때문에 호명되고 마이크가 주어지는 것처럼요. 권력을 비판하는 동시에 제가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 위태롭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활동 초기에는 의사라는 정체성을 철저히 가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위태로운 감각이야말로 저의 진짜 의제이고, ‘경계인’이라는 위치가 저의 정체성이라는 걸 깨달았죠. 이런 고민 속에서 내 정체성이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몸에 얽힌 권력들을 드러내고 그것을 부수는 무기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낸 것이 〈언니들의 병원놀이〉에요.

그때부터 제 이름과 직업을 숨기지 않고 의사라는 정체성과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통합해 나갔어요. 경계인으로 산다는 건 매 순간 자신의 권력을 성찰하는 부단한 분투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라는 학문도 기존 학계의 권력을 의심하고 전복하려는 것이지만, 진학을 하고 보니 학위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권력적인 위계 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새삼 느껴지고요.”

▲ 2025년 6월 20일, 전북특별자치도 인권옹호자 포럼에서 박슬기 〈언니들의 병원놀이〉 활동가가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 토론에 참여하는 모습. (박슬기 제공 사진)

- 경계를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분투의 과정에서 모순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을 것 같아요.

“매일 매 순간이죠.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의 본질은 모순이에요. 경계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둘 다에 속해 있기도 한 거잖아요. ‘의료권력을 경계하는 의료 전문가’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에요. 의료 전문가는 이미 의료권력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그렇지만 진료실이라는 저의 현장에서도 최대한 나의 위치와 의료권력을 경계하려고 해요. 진료할 때에도, 그래서 현 상황과 선택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결정 과정에 의사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가) 직접 가장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조력자의 역할에 집중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효율과 비용 중심의 시스템에서 외부적인 압박이 많으니까요. 또, 오시는 분들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과정이기 때문에 오히려 되게 혼란스러워 하시기도 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그저 전문가의 솔루션을 요구하죠.

활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의료 전문가로서 정답과 정보를 제공해주길 기대하고 저를 부르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 목표는 오히려 그곳을 혼란과 질문이 생기는 장으로 만드는 거예요.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부터 같이 의심하고, 우리의 몸에 대한 그동안의 관점들부터 뒤흔들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순이죠. 제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것, 제 이야기에 경청해주는 것이 저의 의사라는 직업적 위치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의사 명찰을 떼고 활동했을 때를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저라는 사람도 관점도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어떤 명함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주위의 태도가 달라지는 게 사실이죠.

많은 방식 중에서 이 주제(여성의 성기 성형 사례)를 논문으로 풀어낸 것도 마찬가지고요. 학계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고, 제도권 학술의 언어로 기록되지 않으면 어떤 실천들은 통째로 ‘공백’으로, ‘없던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선택’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것들

 

- 몸과 권력을 화두로 고민해 왔기에, 논문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말하고 알고 선택할 권리’라는 해방의 언어가 상업화된 의료시장에서 성기 성형이 여성을 소비 주체로 호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자기 담론과 공명하고 있는 현실을 문제적으로 짚어낸 것 같아요.

“‘선택’이라는 말이 사실 굉장히 위험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니들의 병원놀이〉 활동에서 저희 모토가 ‘여성이 내 몸을 알고 말하고 결정할 권리’였어요. 그때도 결정과 선택이 진짜 권리가 되려면 일단 여러 선택지를 다 알고, 이에 대한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선택지들에 대한 접근이 장벽 없이 모두 보장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해 왔어요. 그런 상황에서 하는 것이 진짜 ‘선택’이라고요.

그러던 중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라는 구호를 보았을 때, 퍼뜩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호가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것이 이것을 ‘선택’한 여성 개인의 책임이 되면, 정작 그 선택에 작동하는 진짜 권력들은 더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선택에 내몰리거나 선택할 수도 없는 삶들이 가려지면서 결과적으로 선택지는 더 협소해지게 되니까요. 그런데도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와닿잖아요.

의료에서도, 정말 싫은 말인데 이미 ‘의료 시장, 의료 서비스’라고 하잖아요. 성기 성형뿐 아니라 원하는 것들을 정말 쇼핑하듯 고를 수 있죠. 그렇게 이미 시장화된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한다’는 말은 그것이 무엇에 의한 선택인지, 그 선택을 욕구하는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감춰버려요. 여성의 몸에 대한 정상화된 규범성, 완벽한 몸에 대한 신화,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불건강에 대한 불안과 공포 마케팅들이 계속 작동하면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몰아가는 것을요.

이 논문은 성기 성형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성기 성형은 다만 하나의 예시에요. 여성의 몸에 더 많은 규범성이 작동하고, 더 많은 금기와 공포가 작동하고, 수치심이 강하게 작동함으로써 여성의 몸 자체가 ‘시장화’되고, 그것이 ‘선택’이라는 미명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 2025년 9월 12일 한국과학기술학회 × 한국여성학회 공동포럼에서 박슬기 씨가 「의료지식-권력과 여성 주체의 불/가능성 : ‘여성’ 성기성형 사례를 중심으로」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모습. (박슬기 제공 사진)

- 논문에서 성기 성형을 ‘미용’과 ‘의료’라는 두 가지 층위로 나누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대목이 인상 깊습니다.

“병원들은 ‘이쁜이 수술’과 같은 노골적인 상업적 명칭을 의도적으로 소거하고, 그 자리에 고도의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과잉 공급함으로써, 이를 필수적인 의료적 처치인 것으로 포장해요. 그런데 의료냐, 미용이냐로 분리되는 자체가 사실 그 욕구에 위계를 두는 거잖아요. ‘미용이 아니고 의료니까 해도 돼’라는 말로 위계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전략인 거예요. ‘미용’ 목적의 수술 선택을 문제 삼으면서 내 욕구가 ‘의료’적 필요임을 계속 설명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이게 의료라고 판단해 주는 게 누구냐? 의사잖아요. 의료적 권위에 의해 확인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또 누군가에게 위임하게 되는 거고요.

저는 성기 성형을 하는 게 좋다 나쁘다거나, 이 실천을 한 여성의 필요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이것을 권하는 의사가 나쁜 의사라거나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에요. 다만 ‘선택’이라고 감춰진 이면에는, 여성의 몸에 얽힌 무수한 권력이 공모하는 구조가 있다는 것 자체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로 불리는 2018년 무렵부터 성기 성형에 대한 언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2018년은 한국 사회가 합계출산율 0명대에 진입하며 전통적인 분만 중심의 산부인과 병원들이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한 시기에요. 이와 동시에 국가적인 의료광고 규제 완화 조치가 시행되었고, 같은 시기 여성의 주체성과 성적 자기결정권 담론이 사회 전면에 부상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절묘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거대한 상업적 성기 성형 시장의 생태계를 구축한 거죠. 학회는 마케팅 기법까지 교육하는 커리큘럼을 개설하고 의사들에게 학술적 권위를 부여하며 수술을 표준화했고, 미디어와 시장은 ‘이제 여성들은 성에 대해 당당하잖아, 성적 불만족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성기 성형도 당당하게 하면 되지’라는 메시지를 은근슬쩍 유포해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실천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필요는 그 자체로 절실하고 다양하며, 그에 대해 미용이냐 의료냐의 잣대로 위계를 두는 것 자체가 권력의 작용이라는 점이에요.

그렇기에 논문에서도 행위자 개인들의 선택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 구조적으로 시장화되고 있다는 것, 그 중심에 바로 의료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어요. 동시에, 그럼에도 여성이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라 이 권력을 전복하고 내 몸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고요.”

 

‘정상적인 몸’은 없다, 몸을 끌어안는다는 것

 

- 구조적 공모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무력해지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논문에서 ‘몸 끌어안기’라는 인식론적 전환이 저항의 경로가 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몸 끌어안기’는 그동안 제가 〈언니들의 병원놀이〉로 활동해 온 저항적 실천에 이름을 붙인 것인데요. 필연적으로 ‘몸 말하기’와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내가 느끼고 감각하는 몸, 매일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물질로서의 진짜 내 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정상적인 몸, 완벽한 몸에 대한 지향이 허구임을 알고, 스스로 결핍으로 비정상으로 규정했던 것에 대해서 ‘정말 그런가’ 반문할 수 있다면, 바로 그 인식론적 전환이 일상과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활동을 통해 경험해 왔어요.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규범으로부터 나를 ‘완벽하게’ 분리한다던가, ‘내 몸은 모두 옳으니 아무 치료도 수술도 안 할 거야’ 같은 의미가 결코 아니라는 건데요. 때로 모순된 욕구도 미워하지 않되 직시하고, 내가 살아온 삶을 통해 변화하는 몸의 시간성을 인정하자는 것이죠. ‘완벽하게 정상인 삶’이 없듯이 그런 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결국 ‘몸 끌어안기’라는 건 한편으로는 내 삶의 경험을 끌어안는 것이기도 해요. 거기에 다다를 수 있는 ‘말하기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희가 지향해 온 활동이었고요.”

▲ 언니들의 병원놀이에서 수행한 재생산권·성소수자 인권 관련 연구보고서. 「전북여성 영역별 심층 인터뷰를 통한 재생산권 연구 : 장애, 청소년, 이주여성을 중심으로」(2020), 「전북지역 성소수자 차별·혐오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결과보고서」(2021) (박슬기 제공 사진)

- 이 연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시스젠더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 참여자의 경험을 하나의 분석 틀 안에서 교차시키는 건데요. 기존에 보지 못했던 방식입니다.

“트랜스 여성의 성별 확정 수술에서 ‘질을 만들지 않는 수술법도 있다’는 것에서 저도 영감을 받았어요. 또 시스 여성과 트랜스 여성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성기의 모양과 기준이 다르다는 예만 보더라도 그렇죠. ‘완벽한 여성의 몸’이라는, ‘정상 여성’의 단일한 기준이 실재한다면 거기로 욕망이 모두 수렴해야 하는데,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수술을 원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이 연구에서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정상적인 몸’이라는 관념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여성 성기=질=삽입’이라는 이성애 중심적 기능주의도 깨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소위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누구도 정확한 의학적 기준을 제시할 수 없음에도 집요하게 주장되는 그 범주에 대해 그게 뭔데? ‘정상 여성의 성기’가 뭔데? 라고 반문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성 연구’인데, 암묵적으로 시스 여성 중심이고 트랜스 여성은 ‘퀴어 연구’로 따로 여겨지는 것이 오히려 저는 이상했던 것 같아요.”

 

- 진료실이 아닌 연구의 장에서 참여자들을 만난 경험은 본인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참여자 분들이 기꺼이 꺼내주신 삶의 경험으로 쓸 수 있었던 논문이잖아요. 그렇게 연구에 참여하셨던 바람들이 선명한데, 이게 그저 나의 학위 논문으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있죠.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가 더 확산되고 깊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저 또한 이처럼 산업화된 의료현실을 무방비로 경험하면서 겪었던 트라우마랄까, 복무자로서 겪은 죄책감이 오랫동안 깊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버텨낸 시간들이 내부자의 눈으로 이 현실을 볼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이나마 오랜 빚을 갚는 마음이기도 해요.”

 

-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고서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네요. 경계인으로 산다는 것이 외롭지는 않나요?

“제 스스로가 가파른 경계에 서 있었기에, 반복되는 고립과 소진을 겪었지만 그만큼 또 다른 무수한 경계들을 잘 읽어내고 감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앞으로도 경계인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살겠다는 결의이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건 제가 지금까지의 활동과 특히 실천여성학 과정을 통해서 만난 그 모든 연결들이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내 생각이 뚝 떨어진 혼자가 아니라 무수한 이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배웠고, 함께 좌절하고 북돋우며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나는 여전히 경계에 서 있겠지만, 더 이상 혼자라는 고립감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페미니즘을 지향하며 더 좋은 세계를 꿈꾸는 우리들 각자는 마치 섬처럼 보이지만, 바다 더 깊은 곳에서는 결국 모두 다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필자 소개] 박지하는 석사를 하면 명쾌하고 선명한 정답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나름 큰돈을 써서 대학원 진학했다. 페미니스트들의 둥지 성공회대 실천여성학과에 와서 질문과 갈등, 불편함을 계속해서 옆에 둔 채 뒤죽박죽 부딪히고 불화하면서도 살피며 살아가는 태도가 여성학을 하는 이유라는 것을 배웠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은 못 되었지만 후회는 없다.

Copyright © 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