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수학을 못 해서 큰일"…대한제국 전시회서 만난 '한탄'

성수영 2026. 7. 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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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9개월 만에 대한제국실 새단장
보물 7점 등 65점…고종어진 7년 만에 공개
총독부 청사에 묻혔던 동판·은판 첫 전시
"미화도 자학도 없이 역사 그 자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학을 못 해서 큰일이다."

1900년 대한제국 학자 이상설(1870~1917)이 펴낸 수학 교과서 '산술신서'는 이런 식의 한탄으로 시작한다. 일본 수학책을 번역해 구구단부터 가르칠 정도로 근대화에 뒤처졌던 나라. 그 나라의 맥을 잇는 오늘날 한국은 이제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승을 다투고, 1인당 국민소득에서 일본을 따라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을 새로 단장해 30일 다시 연 건 대한제국과 한국의 연결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때까지 박물관 상설전시관의 한국사는 사실상 조선왕조까지였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 직전 대한제국 13년의 역사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지리도 못난 선조들이 일제에 나라를 넘겨준 기간으로 치부돼 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병합기념장과 증서.


하지만 이 시기에도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고 근대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이런 역사까지 통째로 지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게 박물관의 판단이다. 유 관장은 "박물관의 역사실은 역사 교과서 못지않은 의미를 지니는 만큼 여러 시대를 빠짐없이 다뤄야 한다"며 "향후 일제강점기 전시실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 공간은 133㎡(약 40평) 규모로 크지 않다. 보물 7점 등 문화유산 65점 중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고종황제어진'을 주목할 만하다. 원본이 대중에 공개되는 건 7년 만이다. 황제의 어새(御璽) 3점과 즉위식 과정을 기록한 '대례의궤'도 걸렸다. 1890년께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태극기 '데니 태극기'도 나왔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


나라가 망해가던 시기인 만큼 시각적으로 화려한 유물은 없다. 박물관은 이런 한계를 영상으로 메웠다. 투명 OLED와 인공지능(AI), 커브형 스크린을 동원한 영상 5편이 벽과 모서리마다 상영된다. 입구에서는 전등이 켜지는 연출과 함께 황실 문양인 오얏꽃이 유리 위로 떠오른다. 조선을 지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신호다. 안쪽에서는 양복을 입은 고종의 모습과 근대 도시로 변해가는 한성의 풍경이 벽면을 채운다.

전시의 문을 닫는 건 조선총독부 청사 건설 당시 일제가 묻었던 동판과 은판이다.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헐 때 나왔다. 대한제국을 미화하는 '정신승리'도, 망할 만한 나라였다는 자학도 아닌 그 사이에서 전시의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역사 그 자체로 바라보자는 의미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정초 은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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