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만 참으면’…늘어난 가정폭력 무대응, 구조적 문제 개선해야

고나린 기자 2026. 7. 30. 12: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가정폭력상담소 간의 공동대응체계 점검을 위한 화상회의를 갖고 일선 상담소의 애로사항과 정책 개선방안을 청취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 제공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게 폭력 피해를 경험한 이들 중 별다른 대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응답이 지난해 6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45.6%, 2022년 53.3%에서 지난해 68.5%로 3년새 15%포인트(p)나 늘었다. 경찰의 가정폭력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병원· 회사 등 사회 전반에서 가정폭력 피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성평등가족부는 30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90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4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배우자·파트너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일상생활을 감시했다’, ‘카카오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못하게 하거나 허락받도록 했다’ 등 기술매개형 스토킹과 디지털 강압적 통제에 해당하는 문항이 신설됐다.

지난 1년간 가정폭력 피해는 3년 전보다 소폭 줄었다. 다만 변화하는 폭력 양상을 실태조사 문항이 충분히 담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1년간 신체적·성적·경제적·정서적 폭력 중 하나라도 경험한 비율은 5.9%(여성 7.6%, 남성 4.1%)로 2022년(7.6%)보다 1.7%p 줄었다. 조사를 진행한 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계열 유지를 위해 22개의 측정 문항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 추가된 온라인 위치 추적, 온라인 활동 감시 외에 평판 훼손, 지인을 이용한 2차적 괴롭힘 등 새로운 폭력 유형들은 조사 항목에 담지 못했다”며 “내년에 진행될 여성폭력 통합 실태조사에는 항목을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별 전후 폭력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별거·동거 종료 경험자의 절반(50.0%)이 이별 전후로 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이는 평생 동안의 폭력 피해율(14.4%)의 3배 이상에 달한다. 특히 여성의 피해가 컸다. 여성의 이별 전후 폭력 피해율은 3년 전 54.5%에서 59.6%로 늘었고, 남성은 47.4%에서 40.0%로 줄었다. 이별 전후로 스토킹 피해를 겪은 여성의 38.2%는 6개 이상의 폭력 피해를 중첩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피해를 입고 대응하지 않는 문제도 컸다. 대응하지 않은 이유로는 ‘그 순간만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36.3%),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34.0%), ‘창피하고 자존심 상해서’(31.4%) 등이 주요 응답으로 나타났다. 대응을 한 경우에도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2.7%로 낮게 나타났고, 상대방에게 맞대응하거나 자리를 피했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다. 폭력 경험 후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는 응답은 여성 84.3%, 남성 74.5%로 나타났다.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인식은 일부 강화됐다. ‘왜 피해자가 배우자 곁을 떠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43.8%), ‘가정폭력은 가정 안에서 해결해야 할 개인적 문제다’(23.2%)의 응답이 2022년보다 각각 2.6%p, 2.7%p 늘었다. 이웃의 아동학대나 부부간 폭력에 대한 신고 의향도 3년 전보다 각각 1.5%p, 5.7%p 줄어든 43.6%, 27.6%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대응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 대응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현재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적 조항을 가지고 있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반의사 불벌 등 여러 독소조항들이 있다. 기존의 법과 제도가 피해자가 폭력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의료인들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고, 직장에서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조치를 마련할 유인을 만드는 등 피해자를 파악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는 게 필요하다”며 “수사기관 역량 강화 역시 담당 인력을 더 배치하고 경찰학교에서부터 내실 있게 교육하는 등 전문성을 높일 교육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