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하나에 ‘특수절도’…기계적 공권력, 성난 장애인 부모들
업주 선처에도 경찰은 원칙대로 수사
檢 ‘기소유예’ 처분…마음엔 상처남아
경찰 “발달장애인 수사 대응체계 개선”

“메로나(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치려고 발달장애인 두 명이 공모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 가혹하고 억울한 처사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선 발달장애인 가족과 시민단체 회원 등 150여명이 항의의 뜻으로 건물을 향해 아이스크림을 던졌다.
30대 중증 발달장애인 2명이 1500원짜리 막대 아이스크림 1개를 계산하지 않고 나눠 먹었다가 특수절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경찰의 공권력 행사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은 특수절도 구성요건이 충족된 이상 사건을 종결할 재량이 없었다고 설명하면서도 논란이 커지자 발달장애인 사건 대응 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가족들은 경찰의 기계적 수사를 비판하며 헌법소원 청구까지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법 적용 원칙과 국민 법 감정의 간극을 드러낸 사례라고 봤다. 하지만 경찰 재량권 확대는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0배 배상하고 점주 역시 처벌 원하지 않았지만=3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중증 발달장애인인 황모(34) 씨와 최모(33) 씨는 지난달 10일 오후 7시45분께 부산의 한 편의점에서 계산을 하지 않은 채 메로나 아이스크림 1개를 꺼내 나눠 먹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성인 남성 두 명이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을 봤다는 목격자의 제보를 받은 편의점 점주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확인해 두 사람의 신원을 특정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점주를 찾아 사과하고 10만원을 배상했다. 점주 역시 사정을 듣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수사기관인 경찰은 원칙대로 수사를 이어갔다.
형법 제331조는 특수절도를 ‘흉기를 휴대하거나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훔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형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도 해당하지 않고 벌금형도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 수사팀은 두 사람을 불러 아이스크림을 가져가게 된 경위와 두 사람이 서로 공모하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지시한 사실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피의사실은 인정되지만 초범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로 남은 상처…재발 방지 요구한 가족들=기소유예는 전과로 남지는 않지만 수사경력 자료에는 기록돼 향후 동일하거나 유사한 범죄를 저지르면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황씨의 아버지는 “아이는 영유아 수준의 지능과 의사소통 능력을 갖고 있다”며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무력하고 순진한 이들의 목을 죄고 있다”고 호소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의 인지능력과 피해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경찰의 과도한 법 적용을 규탄한다”며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연대는 경찰청에 사건 책임자 문책과 발달장애인 수사체계 개선 등을 담은 ‘발달장애인 대상 공권력 남용 규탄 및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요구안을 제출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가족들은 경찰 조사와 기소유예 처분의 위헌성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다.
▶법 적용 원칙과 국민 법 감정 사이=전문가들은 이번 법 집행이 국민의 법 감정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점에는 입을 모았다. 다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안에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원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죄가 성립하는 이상 사실관계에 따른 법 적용은 원칙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기계적인 법 적용 자체는 불가피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국민 법 감정과 현행 제도의 괴리를 보여준 사례”라며 “경찰에 검찰의 기소유예에 상응하는 제한적인 송치유예 제도를 부여하거나 이와 유사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지만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봉수 전남대 로스쿨 교수는 “이 사건처럼 경찰 단계에서 종결하는 것이 타당해 보이는 사례도 있지만 재량권은 양날의 검”이라며 “특수절도처럼 법률상 수사가 필요한 사건에서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건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남용이나 악용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도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현행법상 불가피한 수사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발달장애인이 피의자인 만큼 조사 과정에서 전문 조력인이 배석하게 하고 부모들에게 수사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점은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적으로 (두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법률에도 없는 재량을 행사하면 오히려 직권남용이 되거나 법 왜곡죄가 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와 함께 조사하고 부모에게도 특수절도가 적용되는 이유를 더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내부적으로 성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경찰청은 29일 발달장애인 관련 사건 대응 체계 개선 계획을 내놨다.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사건은 앞으로 경찰서장 특별관리 사건으로 지정해 수사 전 과정을 관리하기로 했다. 조사 과정에서 발달장애인이 확인되면 전담경찰관이 사건을 맡게 하고, 사안이 경미하다면 경미범죄심사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도윤 기자·김서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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