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와 사업가 사이…버린 물건에 생명 불어넣는 씨킴의 예술 세계

아르떼 2026. 7. 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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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마친 '씨킴'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19번째 전시
사업가에서 컬렉터, 미술가로 사는 삶
지난 3월 청주시립미술관서 3개월간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호평 받아

씨킴의 열정을 의심하던 이들이여, 이제는 그를 미술가로 존중해야 한다. 사업가, 수집가, 미술가로 알려진 씨킴(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19번째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이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관객을 만났다.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은 미술가 씨킴(CI KIM)이 국공립 미술관에서 여는 첫 전시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씨킴은 지난 30여년간 미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사업가·수집가로서의 그림자에 가려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전시가 꾸준히 이어지며, 미술가로서 재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작품 판매를 하지 않는 철칙을 고수함으로써, 미술가로서 자부심을 강조하고 있다.

“국공립미술관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시민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씨킴의 전시는 예술과 시장, 제도와 창작이 만나는 현대 미술의 흥미로운 부분을 살펴보는 기회이지요. 그의 작품은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술의 의미와 작가의 역할에 대해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청주시립미술관 박원규 관장은 2026년 첫 전시로 씨킴의 전시를 열게 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전시 제목 <그것만이 내 세상>은 작가가 즐겨 부르는 그룹 들국화의 노래 제목이며, 그가 평생 해온 고민에서 출발했다.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그는 사업, 작품 수집, 창작의 시간을 거치며 자신의 감각과 선택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전시를 통해 우리에게 그동안의 작품 세계를 집대성해서 보여주고자 했다.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로비.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그것만이 내 세상

“바다에 등대가 있잖아요. 배들이 그 빛을 보고 가듯이, 나에게 ‘꿈’이라는 것은 인생의 등대와 같습니다. 하지만 누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꿈이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는 ‘꿈’이다. 이제는 씨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낱말 말이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층 왼쪽 전시장에는 네온 연작들이 가득하다. 삶과 예술에 대한 그의 고백은 네온 글자 작품이 되었고, 역시 ‘꿈’이라는 글자가 유독 눈에 띈다. 그가 말하는 꿈은 현실이 아닌 유토피아일 수도 있고, 언젠가 이루고 싶은 세속적 목표일 수도 있다. 모든 목표를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씨킴은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1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1층 오른쪽 전시장의 주제는 ‘삶과 죽음의 여정’이다. 잡념을 버리고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20여년간 제주에 머물고 있는 그의 삶 속에서 작품이 만들어져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다. 바닷가에 떠내려온 버려진 물건이 마치 외로운 자신과 같다고 느껴져, 이를 작품으로 만들어왔다. 낡은 나무배는 미술관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작품이 되었고, 배 위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자라고 있다. 바닷가에서 주워온 냉장고는 장화를 신고 조각이 되었고, 둥둥 떠내려온 스티로폼 부표는 무거운 브론즈 조형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그가 부표, 마네킹, 나무와 같은 레디메이드를 이용해 만든 조각을, 다시 청동 조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변하지 않는 청동은 그에게 사물을 죽지 않게 만드는 묘약과 같다. 그렇게 그는 폐기물에 새로운 생명을 선사한다. 삶과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씨킴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내밀한 공간이다.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1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1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그는 언제부터 미술가가 되려고 생각했을까? 사업가와 컬렉터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99년,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 전날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불현듯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미술대학을 나온 직원에게 캔버스와 물감을 부탁했다. 그리고 3년 동안 매일 동그라미만 그렸다고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계획한 것도 아닌데, 동그라미만 그리고 싶었다고... 그리고 나서야 그림, 조각, 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손으로 만지는 오감이 내가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그간 레스토랑, 카페, 극장, 고속버스터미널과 같은 여러 사업을 해왔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어떤 재료와 색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지 고민하던 시간들이, 작업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오감 훈련을 했던 것이지요.”

혹독한 인생 수업이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내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매점에서 시작해 천안고속버스터미널을 새롭게 건축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기에, 건설 현장에서 매일 사용했던 시멘트, 목공본드와 같은 산업 재료를 작품에 자유롭게 쓰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스스로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상상이 끊임없이 작품 활동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1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입니다. 충동적으로 어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실험을 해봅니다. 무아지경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작업실에 카메라를 설치했어요. 나중에 그 작품을 어떤 제작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경우도 있어서, 카메라를 되돌려 확인합니다.”

때로는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색이나 형태가 그를 매료시킬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 콕 박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실에 돌아와 실험하는 것. 그래서 그는 작품에 물감은 물론이고 토마토, 커피, 들기름, 블루베리도 사용한다. 작품 표면에 흘러가는 시간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여러 물질을 실험하고 있다.

무제 Untitled, 2020, 캔버스에 들기름, 커피 Perilla oil, coffee on canvas, 250x200cm. / 제공. 아라리오뮤지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씨킴이 데이미언 허스트의 빅 컬렉터라는 것을 아는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에서 인산인해를 이뤘던 영국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형 조각 두 점을,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앞 조각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이미 20여년 전에 설치한 6미터 높이의 ‘찬가’, 7미터의 대형 조각 ‘채러티’는 그가 얼마나 안목이 탁월한 컬렉터인지 실감하게 한다. 조각공원에는 데이미언 허스트 외에도 키스 해링, 코헤이 나와, 아르망 등 총 26점의 작품이 있어, 천안 시민은 매일 명작을 감상할 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요즘은 구하기 어려운 엄청난 작품들이다.

씨킴의 청주시립미술관 전시는 이렇듯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온 그의 경력이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미술관 2, 3층에서는 회화와 조각을 중심으로 한 그의 대표 연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누가 봐도 씨킴을 닮은 작품들이다. 그는 오랫동안 신문과 잡지와 같이 인쇄된 이미지에 안경을 씌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간결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그를 닮았는지 놀라울 정도다. 안경을 통해 그의 자화상과 관람객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최근에는 오일 파스텔과 아크릴 물감으로 소년을 그리고 있는데, 안경을 쓰진 않았지만 작가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씨킴은 그간 자화상에서 귀를 그리지 않았었다. 워낙 그의 특별한 행보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아예 귀를 닫아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한 개의 귀가 크게 그려있어서 눈길이 간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마음도 단단해졌으니 이제 세상의 목소리를 한쪽 귀로나마 듣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3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3층의 하이라이트는 <보그><GQ>와 같은 잡지와 일상 용품을 결합한 114점의 연작이다. 그가 매일 아침에 일기를 쓰듯 드로잉한 사랑스러운 작품들이다. 잡지와 신문, 광고와 우편물, 치약과 핸드크림 등의 생활용품들이 감각적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침마다 콜라주 드로잉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 산뜻한 컬러 조합과 위트 있는 콜라주는 보는 사람도 마음이 경쾌해진다. 작품마다 사인 대신 그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은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씨킴 개인전 <그것만이 내 세상> 3층 전시 전경. / 제공. 청주시립미술관

어린 시절부터 예민했던 그이기에, 사업가로서 경험한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 미술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로서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인의 괴로움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의 개인전은 6월 21일까지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이소영 프리랜서 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