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발전소', 농촌은 살아날 수 있을까

yangija 2026. 7. 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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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소득이 되는 시대, 주민이 만드는 에너지 자치
자부담·계통 포화·공동체 갈등…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
ChatGPT(DALL·E)를 활용해 제작한 '햇빛소득마을' 상상도

세 개의 파도, 농촌에 드리운 낯선 기회

기후위기의 심화, 멈출 줄 모르는 인구 소멸, 그리고 인공지능과 첨단 산업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이 세 개의 거대한 파도가 농촌 들녘까지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전국 인구감소지역 69개 군의 최근 5년 인구 감소율은 6.0%에 이르고, 고령화율은 38.8%로 치솟았다. 반면, 수십 테라와트시(TWh)의 전력을 삼키는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산업은 탄소 국경세(CBAM)와 RE100 규제를 피해 새로운 ‘재생에너지 심장’을 애타게 찾고 있다.

농촌 마을들은 이러한 변곡점에서 단순한 식량 생산 기지를 넘어 에너지 생산의 주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십수 년간 농어촌 지역에 수많은 태양광 패널이 깔렸음에도, 정작 그 햇빛으로 만든 전기와 수익은 외부 자본과 대도시로 유출되는 ‘에너지 식민’ 구조에 농민들은 경관 훼손과 마을 공동체 파괴라는 비용만 치러왔다. 이익이 유출되는 기존 개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주민이 직접 참여해 이익을 온전히 마을과 나누는 '햇빛소득마을' 사업을 국가적 과제로 본격화했다.

정부는 2026년 700개의 마을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최대 3,000개의 햇빛소득마을을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들녘과 바닷가 마을 곳곳에서는 햇빛소득이 소멸하는 농어촌을 살릴 생명줄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수억 원의 자부담 압박, 전력 계통 포화, 그리고 이익 배분을 둘러싼 공동체 분열 우려 등 우려도 두텁게 쌓이고 있다.
제6회 국무회의 / 출처 : 청와대
행정안전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도하는 햇빛소득마을의 핵심은 ‘주민 주도성’과 ‘공공성’의 확보다. 마을 주민 10인 이상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주민 70% 이상의 동의와 마을총회 승인을 거쳐 마을 유휴부지에 300kW 이상 1,000kW 이하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성공적 안착을 위해 총설치비용의 최대 85%를 장기·저리 정책자금(변동 이자율 2.0%, 5년거치 10년 분할상환)으로 융자 지원한다. 또 발전소 건설 시 일정 기준을 갖춘 재생에너지 종합서비스 기업((ReSCO) 활용을 의무화해 부실시공과 사기를 차단했다. 저탄소 검증 모듈과 국내 KS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기자재 사용을 조건으로 걸어 국내 산업 생태계에도 기여하도록 설계됐다.

소멸 위기에 놓은 농어촌 마을에서는 이같은 국가적 정책 전환을 단순한 재생에너지 사업이 아닌 마을 생존과 공동체 부활의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햇빛소득마을 선정 공모 공고 발췌

죽정마을과 동현마을의 꿈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군서면의 죽정마을은 192세대, 350명 가량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 1월, 정부의 햇빛소득마을 공모사업에 주민들이 신청서를 냈다. 8백평 규모의 마을 유휴 부지를 마을 태양광발전소로 만드는 것을 야심차게 꿈꾸고 있다. 발전소를 만들 땅은 영암군도 보탰다. 원래 마을 소유의 땅에 인접한 곳에서 영암군이 소유한 군유지를 찾아낸 것이다. 영암군이 마을에 최대 20년간 장기 임대하며 토지 이용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죽정마을 8백평 발전소 부지 구획이 정해졌다. 마침 햇빛소득마을 평가 항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부지를 제공하면 3점의 가점이 부여되기도 했다. 영암군도 짜투리땅을 아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죽정마을 이장 박인기 씨(64살)는 “단순히 정부나 지자체에서 복지 차원으로 지원해주는 예산으로는 공동체를 지탱할 수 없었다”며 햇빛소득마을 신청을 위해 주민들이 의기투합한 과정을 설명했다. 마을발전소에서 나오는 태양광 발전 수익을 마을 공동 기금으로 쓰며, 외로운 어르신들의 식사, 마을 회관의 냉난방비 걱정을 하지 않고 노인 행복 공동체를 완성하고 싶다는 포부다.
햇빛소득마을 1차 공모에 신청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죽정마을 전경 / 사진 : 목포MBC
땅끝 바닷가 마을인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동현마을도 햇빛소득마을에 도전했다. 동현마을 이장 박금령 씨(69세)는 “고령화가 심각해 마을 소득을 대체할 활로를 못찾던 차에 마을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공동기금을 마련할 방법을 찾다 사업을 만나게 됐다”고 반색했다. 바닷가 마을이다 보니 어민들이 쓰는 어구들을 넓게 보관하는 야외 어구보관장 지붕에서 태양광 발전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의 동의를 거쳐 협동조합 설립까지 모두 마쳤다. 햇빛소득으로 기금이 모이면, 가장 먼저 마을이 공동으로 쓸 소형 버스를 사고 싶다는 계획도 세웠다. 박 씨는 “읍내 시장을 가거나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마련해 운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1MW 복지마을이 보여준 기적, 그리고 '마을 돌봄'의 보루

정부는 햇빛소득마을 사업의 공정성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 수익을 마을 공동기금 40%, 에너지취약계층 지원 40%, 유지보수 및 일상관리에 각각 10%씩 배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이같은 이익 공유 방식은 실제 실현되었을 때 농촌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 지 선도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경기도 여주시 구양리 태양광발전소는 햇빛소득마을을 준비 중인 전국의 지자체 마을 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구양리 태양광발전소는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 ‘햇빛두레발전소’에 선정되며 주민 개별 출자금 없이 마을 공동자산과 정책 융자를 결합해 창고 지붕과 주차장, 농지 등 총 3,500평 부지에 총용량 998kW(약 1MW) 규모로 조성된 최초 마을 공동체 발전소이다.

최충기 양평군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은 “개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마을회)가 100% 주인이 되어 이룩한 에너지 자치의 정수”라고 구양리발전소를 평가했다. 20년 고정가격계약을 통해 월 1,000만 원 상당의 발전 수익을 올리고, 구양리는 이 수익을 주민들의 복지에 전액 재투자한다. 마을 사무장을 채용해서 전담 행정체계를 갖췄고, 버스가 오지 않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 구양리 행복버스를 상시 운행한다. 조리장 두명을 채용해 매일 따뜻한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구양리 새마을 식당’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한다. 최 이사장은 “에너지 전환이 무너진 농촌공동체를 어떻게 재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경기 여주시 구양리 마을발전소 전경 / 사진 : 목포MBC
전북 완주군 고산면 서봉마을도 또다른 선도모델로 꼽힌다. 마을 인근 하수처리장 피해보상 지원사업비 20억 원을 마중물 삼아 975kW 규모의 마을 발전소를 건립해 2024년 7월부터 발전을 개시했다. 주민등록상 실제 거주하는 만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연간 60만원에서 최대 120만 원의 ‘장수축하 경로연금’을 지역화폐로 주며 호응을 얻고 있다.

서봉마을 주민협의회는 태양광 발전 수익으로 꾸려진 기금을 공공성과 미래성 등에 초점을 맞춰 사용원칙을 엄격히 두고 있다. 30대 이하, 40대에서 50대, 60대, 70대 이상의 세대별 주민의견을 원탁회의로 수렴한다. 30대 이하는 놀이터, 40~50대는 운동시설, 60대는 마을 식당과 쉼터, 70대 이상은 가로등과 노래교실 등을 원했다. 세대별로 필요로 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민주적으로 수립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가 토론과 소통으로 단단해지는 것이다.
서봉마을 주민 사업 의제 여론수렴 / 사진 : 서봉마을 제공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현재 사업을 준비 중인 후발 마을들에게 단순한 '돈벌이'를 넘어 고령화된 부모 세대를 살릴 '마을 돌봄'의 보루라는 강력한 확신을 주고 있다. 햇빛소득마을을 신청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용전마을 주민들은 구양리 마을발전소와 서봉마을을 모두 견학했다. 용전마을 주민 나성군씨(62세)는 “선도지역에서 마을 돌봄의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했다.

'자부담과 계통 포화'의 덫

뜨거운 햇빛소득마을 열기와 달리 고령의 농어촌 주민들이 행정의 도움이 없다면 현실의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정부 정책과 농어촌 마을간 재정적·기술적 괴리가 존재한다. 사업을 준비 중인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현산면 상구시마을 김이산 이장은 주민설명회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발품을 팔며 열심히 사업을 준비했는데, 정부 금융 지원을 제외한 15%의 자부담 자금을 마을 주민들이 직접 모아야 하는 현실적 벽에 부딪힌 것이다. 300kW~1MW를 지으려면 부지 매입비와 부대비용을 빼고도 수억 원의 자부담 현금이 필요한데, 시골 고령 농가에서 1억, 2억 원을 당장 융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김 이장은 “평생 은행 대출 한 번 크게 받아본 적 없는 농촌 어르신들이 논밭을 담보 잡히고 대출받았다가 발전소가 망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공포심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방송문화진흥회 후원 ‘찾아가는 햇빛교실’ 행사 / 사진 : 목포MBC
더 걱정인 건 기술적인 전력망 부족, 즉 전력계통 포화 문제이다. 햇빛과 바람 자원이 가장 풍부한 곳으로 꼽히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옛 전남지역은 재생에너지 설비가 급증하며 한전의 송배전 선로와 변전소 용량이 이미 포화상태를 초과했다. 옛 전남 전 지역이 전력계통 포화상태로 기껏 주민들이 도을 모아 태양광 발전소를 완공해도 한전 전력망에 전기를 판매할 수가 없어 2031년 12월 말까지 신규 발전사업 허가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이다. 정부가 햇빛소득마을은 계통 우선접속 대상으로 삼아 마을이 발전소를 직접 소유할 경우 전기를 판매할 길을 서둘러 만들어주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아직 의문이다.

장승찬 한국에너지공단 광주전남지역본부장은 “낮시간대의 잉여 전력을 일단 저장했다가 밤에 송전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필수로 연계 설치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 역시 마을당 최소 1억 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부가 계통 부족지역에 한해 ESS 설치비의 최대 90%를 지원하는 정책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이미 자부담 마련에 전전긍긍하는 영세 농촌마을에 ESS 설치는 또다른 짐이 될 수 밖에 없다.

형평성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동신대학교 전기공학과 이순형 교수는 “전력계통에 여유가 있는 경기도 지역은 ESS 없이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반면, 계통에 여유가 없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은 추가 자부담을 내면서 햇빛소득마을 사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사업인만큼, 정부가 ESS를 설치하며 지역별로 공평한 부담으로 사업이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열의 씨앗인가, 복지의 마중물인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금정면 주민들이 내 건 고압송전선로 반대 현수막 / 사진 : 목포MBC
농어촌에서 태양광 발전은 여전히 갈등의 기억이 두텁다. 외지 자본이 와서 발전소를 짓고 전기는 수도권으로 보내고, 이익은 다른 곳으로 돌아갔던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태양광발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과 신뢰의 훼손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주민들이 내 건 태양광발전 추진 반대 현수막 / 사진 : 목포MBC
태양광 수익 배분이 본격화되면 평생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순식간에 이권 싸움의 아수라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해남 용전마을 주민 나성군 씨는 "수익이 생겨 어르신 복지가 좋아지는 장점 이면에, 사업 준비를 위해 수년간 행정 서류를 만들고 발품을 팔며 희생했던 개척자 주민들의 노고는 완전히 잊히고, 정작 배당금이 나오자 무임승차하려는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는 씁쓸한 현상을 실제 선도 마을 곳곳에서 관찰했다“고 말한다.

완주 서봉마을의 엄성복 사무국장 역시 "하수처리장 주민협의회 회원 자격을 '실제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며 반대 투쟁에 직접 참여했던 실제 세대주'로 명확히 제한하여 편법 분배를 막았지만, 현행법상 마을회의 법적 성격이 모호해 분쟁을 예방하기가 행정적으로 매우 까다롭다"고 토로했다.

여주 구양리 전주영 이장은 ”햇빛소득마을 사업이 마을회의 사업인지, 부설 협동조합의 사업인지 지분관계와 정관을 표준화하여 이권 갈등의 틈새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흔히 마을 공동체 사업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이 생겼을 때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인 '마을회'의 법적 성격이 그저 친목 도모 목적의 '비법인사단'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자등록을 하거나 법인 통장을 개설하고 투명하게 자산을 관리하는 데 있어 심각한 한계에 부딪힌다. 마을회를 공적 단체로 법에 명확하게 규정하고, 자금관리와 임원의 임기, 의사결정 방식을 규격화한 자치규약을 의무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들녘의 햇빛으로 복원되는 농어촌

햇빛과 바람이 돈이 되는 에너지 자치 시대에 이익금이 대기업이나 외지 투기 자본이 아니라 평생 고향땅을 지켜온 농촌 주민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기후 대책이나 신재생에너지 보급정책이 아니다.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분배 정의의 문제이며, AI 시대에 농촌을 살릴 한국형 기본소득의 가장 유력한 처방이다.

햇빛소득마을 1차 공모에 전국 129개 마을이 신청을 했다. 두달 동안의 짧은 공모 기간에도 11개 시도, 61개 시군의 참여가 있었다. 이 중 산업지형이 농어업 으로 꾸려져 소멸위기지역이 득실한 전남이 30곳으로 가장 많았다.

과연 햇빛소득마을 사업이 작디작은 192세대 죽정마을 회관의 따뜻한 공동 식탁, 땅끝 어촌 동현마을의 어르신 행복 버스, 그리고 용전마을 주민들이 꿈꾸는 정든 마을에서의 존엄한 임종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들녘의 무한한 햇빛이 농민의 든든한 연금 통장으로 환원될 때, 소멸해 가던 대한민국의 농촌은 마침내 가장 뜨겁고 건강하게 다시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다.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진짜 성공 방정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양현승 기자(stormyhs@mokpombc.co.kr)

이 기사는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연구소 <기후위기-에너지전환 펠로십 기획취재>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